아직 오지 않은 숲

2005.11.17 | 미분류

소나무 재선충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관계당국은 방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연일 재선충 확산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재선충 확산 방지”와 “소나무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재선충 확산을 방지하는데 힘써야 하겠지만, 이제 차분히 재선충 문제를 과연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일본이나 대만에서 재선충 방재를 포기해 전멸하는 상황이라는데 왜 그런지? 재선충을 어떠한 눈으로 봐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아래 글은 ‘작은것이 아릅답다’ 4월호에 실린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윤여창교수님의 글입니다. 소나무 재선충을 어떻게 봐야할지 고민을 던지는 글입니다.  함께 읽어보시고 고민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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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숲

                                                                         글 : 윤여창

숲의 역사
우주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아는 한 우주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지구가 생겨나고 그 위에 생명현상이 있은 뒤 지금으로부터 약 4억 년 전에 처음 숲이 생겨났다고 한다. 인류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숲이 지구상에 나타났다. 그 숲은 계속 변하여 왔으며, 최근 사람의 수가 크게 늘면서 숲의 모습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약 100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엔 약 60억 헥타르의 숲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가운데 1/3 넘는 숲이 사라졌다. 사람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사람의 먹을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숲이 농경지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도 수출주도형 경제 개발이 있기 전에는 개간과 화전경작, 그리고 과중한 땔감 채취로 인해 숲이 많이 헐벗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국토녹화정책으로 오늘날에는 헐벗은 산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나 공산주의 체제하의 자립경제를 추구하던 북한은 식량 에너지 부족으로 산림이 황폐해지고 있다. 남한이 1960년대까지 경험했던 산림황폐화가 오늘날 북한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 우리나라 숲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숲의 질은 떨어지게 되었다. 숲의 질을 평가하는 잣대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물질 생산력과 생물다양성이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생물다양성은 그 숲의 천이가 절정을 이루는 곳에서 가장 높다. 물질 생산능력은 숲의 기반인 토양의 비옥도와 기후조건에 따라 달라지는데, 기후조건이 같을 땐 비옥도가 높아질수록 물질 생산력이 큰 숲이 형성된다.
숲의 지나친 이용은 산림 토양의 비옥도를 낮추었고, 그로 인하여 척박한 곳에 잘 견디는 숲이 발달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40년 전까지만 해도 남한의 거의 모든 곳에서 척박한 토양 위에 소나무 순림이 형성되었다. 여기에는 목재이용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것과 조선시대의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영향 받은 중송정책(소나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산림정책)이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소나무 중시 정책은 ‘십장생’과 ‘독야청청’ 같은 상징화를 통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와 함께 있는 숲
우리나라에는 약 650만 헥타르의 숲이 있다. 이는 국토의 약 2/3에 해당하는 것으로, 수치로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숲이 잘 보전된 나라이다. 그 까닭은 숲이 주로 산에 있어서 그 땅을 이용하기 쉽지 않은 덕분이다.
잘 보호되면 숲은 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숲은 천연림의 모습을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과거 40년 동안 소나무를 중심으로 한 침엽수림은 20퍼센트나 줄어들었는가 하면 원래 숲의 모습에 가까운 참나무가 많은 활엽수림의 비중은 그 만큼 늘어났다. 이렇게 침엽수림이 줄어들고 활엽수림이 늘어나는 데는 자연의 힘이 컸다. 자연생태계에는 그 구성원간의 경쟁과정을 통하여 균형점을 향해 움직이는 구심력이 있다. 여기서 생물체의 분화와 확산, 그리고 균형으로 이어지는 생태계 변화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숲도 예외는 아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나라의 숲은 생물다양성이 늘어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 종류의 나무로 만들어진 순림은 그 숲을 공격하는 생물, 천재지변, 불에 약하다. 최근에 소나무 순림을 공격하는 솔나방, 솔잎혹파리, 소나무깍지벌레 그리고 소나무재선충 같은 해충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것은 단순림의 취약성 때문이다. 소나무 숲이 곤충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을 자연생태계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소나무 숲은 일제 강점기에 파종조림으로 조성한 몇 몇 곳을 빼면 거의 다 천연갱신에 의해 조성된 자연림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반세기 동안 위에서 열거한 소나무를 공격하는 곤충의 피해를 염려하여 소나무를 심지 못했던 것이다.
소나무 대신에 리기다소나무(미국원산), 잣나무, 일본잎갈나무(일본원산) 같은 침엽수를 많이 심었다. 지난 40년 동안 장기수(오랫동안 자라는 나무) 조림의 80퍼센트 이상을 침엽수로 심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숲의 침엽수가 줄고 활엽수가 늘어나는 것은 왜일까? 이는 자연의 힘이 인간의 힘을 능가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숲이 왜 소나무를 버리고 참나무를 키우는 것일까. 그 까닭은 1970년대부터 ‘절대 녹화’를 위해 ‘입산금지’를 위시한 산림보호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산림에서 구하던 에너지를 땅속에서 화석연료와 수력과 원자력에너지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산에서 지나치게 연료를 채취하지 않으면서 산림토양이 비옥해지고, 비옥해진 토양에서 잘 자라는 참나무가 소나무를 제치고 숲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산림토양은 소나무에 치명적인 곤충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해서 나무는 곤충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숲을 그린다
우리는 앞을 내다보는 예지가 부족하다. 과거의 일은 기억하지만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은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오지 않은 숲을 미리 내다보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후손에게 바람직한 숲은 어떤 숲이 여야 하는 지를 그려볼 수는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바람직한 숲은 풍요로운 물질을 주는 숲이고,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해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그런 숲일 것이다. 나는 이른 봄에 피어나는 파란 새잎을 보고 가슴 설레게 하는 그런 숲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혹은 항상 짙푸른 색을 띄어 우리 눈을 시원하게 하고, 변하지 않는 강직한 심성을 길러주는 소나무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풍요로운 물질을 주는 숲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건축용재와 종이재료용 펄프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숲, 이른 봄에 봄 숲의 정기를 마실 수 있게 하는 고로쇠나무가 많은 숲, 향기로운 송이버섯을 자라게 하는 소나무 숲, 산삼이나 더덕 같은 생약재나 산채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숲, 깨끗한 식용수를 많이 저장할 수 있는 숲,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탄소고정기능이 뛰어난 숲, 열매나 수지를 많이 생산해 주는 숲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숲이 우리에게 주는 물질의 풍요를 재는 것은 임산물의 가격과 생산가능성에 의해 달라진다. 다시말해 사람들의 소비 풍조내지 기호, 그리고 이러한 수요와 숲을 이용하는 임업의 생산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 임산물의 유통비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숲의 생태적, 입지적 조건과 시장의 조건에 따라 숲에서 어떤 물질을 생산하는 것이 더 많은 경제적 가치 보장할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숲은 소나무로 인공조림 된 침엽수림, 천연의 활엽림과 혼효림 등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의 숲 가운데는 침엽수림이 가장 많아 전체의 약 45퍼센트에 이른다. 숲의 자원적 가치로 보면 거의 모든 곳에서 활엽수림이 침엽수림에 비해 더 크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목재가치로 보면 활엽수가 침엽수에 비해 전망이 밝다. 현재 국제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할 때 활엽수 목재 가격이 침엽수보다 두배 넘게 비싼 값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향후 30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기후변화협약 이행 당사자로서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온실가스 감축 의무국가의 지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되는데, 이렇게 될 경우 온실가스 흡수 능력이 침엽수에 비해 1.5배 넘게 큰 활엽수림을 중시하는 산림관리를 통해 산업부분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부담을 덜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잣나무와 리기다소나무 같은 침엽수림은 가을부터 봄까지 계속 증발산 하는데 비해 낙엽 활엽수림은 가을부터 봄까지 잎을 떨어뜨려 발산해서 숲의 수원함양기능이 상대적으로 크다.
넷째, 활엽수림은 생물다양성이 풍부하여 각종 야생화와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하고 식료품등 각종 목재이외의 임산물의 생산기능이 뛰어나다.
다섯째, 활엽수림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색깔을 달리하며 강산을 수놓아 생태 관광자원으로서 가치가 높아 지역 관광 산업의 발전에 기여 할 수 있다.
사회환경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숲이 우리에게 더 값어치 있는 숲일지는 확실하게 말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숲의 경제 가치는 항상 우리들의 마음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건강한 숲을 가꾸면 우리가 더 많은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우리의 숲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우리는 자연에 의지 하면서 살아가야 하므로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숲에서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단, 숲이 계속해서 그 균형을 이루면서 지속적으로 우리와 함께 그곳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숲과 공존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의 숲은 어찌될 것인가? 소나무가 지배하는 숲보다는 참나무를 위시한 활엽수가 주인이 되는 숲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소나무의 해충구제에 너무 급급하기 보다는 미래에 올 숲의 주인을 맞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산림관리전략이 요구된다.

* 윤여창 님은 산림경제학을 전공하는 산림학자이다. 풍물패 상쇠를 하기도 하고, 집에서나 신년하례 때 한복을 즐겨입는 그는 옛것에 관심이 많다. 몇 해 전 청계서당에서 사서를 배운 뒤, 지난 해 친구들과 모여 장자를 읽었고 요즘은 당시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한다.

‘작은것이아름답다’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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