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던 날, 기상이변을 보다

2006.02.14 | 미분류

▲ 심재봉화백

‘로맨틱’ 이야기에 눈이 빠지지 않는다. 영화 ‘러브스토리’에서는 백혈병 여주인공의 아픔과 사랑을, ‘러브레터’에서는 첫사랑의 추억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눈이 등장한다. 앙상한 겨울나무에 옷을 입혀주는 것도 눈이요, 아이들과 강아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도 눈이다. 하지만 그런 눈이 지겹다 못해 무섭다는 반응들이다. 폭설 때문이다. 특히 호남지역은 피해액 3천640억원, 복구비용 7천212억원이 소요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최근 한반도에서는 이상현상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따뜻한 날씨로 인해 전례 없이 한겨울에 일본뇌염환자가 발생하는가 하면, 지난 2004년에는 겨울 내내 따뜻하다가 3월초에 폭설이 내려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10여일 추웠다가 보름정도 따뜻해졌다가 다시 추워지는 등 들쭉날쭉한 겨울날씨 때문에, 농산물 생산·판매, 관광행사, 스키장 개장 등 관련 업종이 울상이다. 한반도 겨울날씨의 대표적 특징인 삼한사온(三寒四溫)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버린 듯 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상현상의 원인을 조심스레 ‘지구온난화’로 점쳐보면서, 기후변화의 한 현상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태도가 조심스러운 이유는 ‘기후’라는 개념이 지구나이 46억년을 관통할 정도의 오랜 기간동안 변화된 기상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단편적인 기상현상을 기후변화로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한반도가 겪고 있는 이상 기상현상이 기후변화라고 확신할 수는 없으며 더 오랜 기간의 조사와 연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국지성 강우 심화는 일정부분 예견된다. 최근 20년 동안 강수변화를 1920년대와 비교했을 때, 강수량이 7% 증가하고 강수강도가 18% 증가한데 반해 강수일수는 14%나 감소했다. 이는 비나 눈의 많은 양이 짧은 기간동안 무서운 속도로 쏟아져 내린다는 것이며, 강수량의 지역적 편차가 커진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같은 하늘 아래에 있지만 서울 은평구에서는 폭설이 내릴 때, 옆 동네인 서대문구나 종로구에서는 눈 구경을 할 수 없는 일들이 곧잘 벌어진다. 또한 홍수나 폭설이 발생했을 때, 예전의 10일치 강수량이 최근의 3일치에 해당될 정도로 단기간에 많은 양이 쏟아져 내리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점차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따라서 최근의 폭설피해와 같은 막대한 기상이변 피해를 우리는 더욱더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이제라도 이 같은 기상이변에 대비하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입으로만 준비하고 있다. 국회에 거창한 비상설특별위원회를 만들었지만, 1년 동안 5번 회의하고 매달 540만원의 혈세만 축냈다. 정부도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3개년 계획과 21조의 예산을 마련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각 부처별로 진행 중이던 사업을 ‘기후변화’라는 이름으로 묶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핵융합, 원자력수소사업 등 현실성과 경제적 타당성이 고려되지 않은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퍼붓겠다는 것이 정부의 현 계획이다. 올해 정부는 국가연구개발(R·D) 8조9천억원 중 3%인 2천600억원을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연구개발예산으로 책정해놓았다. 이 예산이 헛되게 쓰이지 않도록 시민들의 꼼꼼한 눈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상을 하얀 빛으로 바꾸는 눈이 눈앞을 하얗게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은 시민의신문에서 ‘에너지’를 주제로 기획연재 되고 있는  ‘이버들의 에너지, 에코리듬 타다’ 칼럼입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