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재해 ‘황사’

2006.03.21 | 미분류

▲ 심재봉 화백  

‘천하 만민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봄이 찾아왔다. 개구리 단잠 깨우는 경칩도, 새로운 친구들 사귀느라 여념 없는 신학기도 시작됐다. 특히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21일)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겨울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때를 의미한다.

역시 계절은 순리를 따른다. 그동안 때 아닌 추위로 봄이 길을 잃어버렸나 걱정했지만, 노파심이었음을 증명하듯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불교에서는 춘분 전후 일주일간을 ‘봄의 피안(彼岸)’이라 하여 극락왕생의 시기로 본다.

하지만 사람이 죽어서 다른 세상에 태어난다는 극락왕생으로의 행로는 장애물이 많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봄의 피안(彼岸)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애물은 바로 ‘황사’다.

황사는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인 중국과 몽골의 사막지역, 황하 중류의 황토고원, 내몽골고원에서, 다량의 먼지가 공중으로 떠올라 바람을 타고 이동하면서, 지표에 천천히 낙하하는 현상을 말한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발행한 우리말사전에도 ‘흙비’라고 명칭, ‘바람에 높이 날려 비처럼 떨어지는 모래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같은 먼지현상은 사막 같이 건조한 곳에서 잘 발생하며, 한랭전선의 후면에서 부는 강한 바람을 타고 중국 등지에서 봄철마다 날아오는 불청객이다.

황사는 오랜 기간 지속된 자연현상이다. 황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 아달라왕 때(서기 174년) ‘우토(雨土)’라고 지칭한 것이다. 당시에는 하늘의 신이 화가 나서 비나 눈이 아닌 흙가루를 땅에 뿌린 것으로 믿어, 황사가 발생하면 몹시 두려워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한양에 흙비가 내렸다. 전라도의 전주와 남원에는 비가 내린 뒤에 연기 같은 안개가 사방에 꽉 끼었으며, 쓸면 먼지가 되고 흔들면 날아 흩어졌다. 25일까지 쾌청하지 못했다.(명종 5년 3월 22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상과 자연현상에 대한 선조들의 깊은 관심을 이처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박씨 물어다주던 제비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게 되면서, 봄의 소식을 알려오는 것은 황사가 유일해졌다. 강수량이 적고 식물의 뿌리가 견고하지 않은 봄철이 모래먼지가 발생할 수 있는 최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벌채와 산업화로 중국 사막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 곳곳의 사막화가 진전되면서 봄철 맑은 하늘은 점차 구경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공업화가 심화되고 있는 중국대륙의 중금속 물질들이 황사를 타고 날아오면서, 각종 병원균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알루미늄, 칼륨, 납 등의 중금속 물질들을 호흡할 가능성이 커졌고, 평소보다 4~5배 많아진 미세먼지는 여과장치 없이 폐 속에 흡착되어 기침, 가래, 염증 등을 유발시키고 있다. 피부질환이나 천식, 눈병, 꽃가루나 먼지 알레르기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봄철 건강관리가 더욱 요구되고 있다.

2002년 3월 20일에 발생한 대황사 이후 황사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올해는 라니냐 영향으로 쉽게 물러갈 것 같지만, 지구환경이 점차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황사의 짓궂음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특히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고비사막이나 몽골 황토고원에서 발원한 황사가 우리에게 주로 영향을 주었지만, 2000년부터는 이 지역보다 훨씬 동쪽에 위치한 내몽골고원과 만주 부근에서 발생한 황사까지도 날아오고 있다. 실제로 서울지역의 황사관측일수는 80년대 평균 3.9일에서 90년대 7.7일로 증가했고 2000년 이후에는 12일로 그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제비 대신 날아오는 봄소식 황사는 이제 자연현상이 아닌, 기상재해다.  

위 글은  시민의신문 에서  ‘에너지’ 를 주제로,  기획연재  되고있는  ‘이버들의  에너지, 에코리듬 타다’  칼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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