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지 않은 감사의 인사가 되길 바라며

2006.05.09 | 미분류

내가 녹색운동가로 일할 수 있는 힘

최승국(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내가 15년간 녹색연합에서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를 해야 한다면 단연 첫 번째는 내 가족일 것이다. 어려운 경제사정과 잦은 출장에도 아무 불평 없이 지지해주고 마음을 나누어 준 그 고마움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가족 못지않게, 이 분들이 없었다면 내가 오늘 녹색운동가로 살아가기 어려웠을 분들이 계시기에 지면을 빌려 그 고마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다.
아마 98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직 IMF 경제위기를 채 벗어나지 못한 시기였고 그러다보니 시민단체의 형편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 녹색연합의 살림살이는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처지였고, 때문에 당시 모든 활동가들에게 월 30만원씩 밖에 활동비(월급)를 지급할 수 없었다.

이러한 때 한 중앙일간지에서 우리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소개하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제목은 “모자란 생활비 사랑으로 채우죠!”였고 당시 네 살짜리 아이와 함께 세 가족의 사진이 큼직하게 박힌 기사가 나갔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녹색연합 사무실은 업무가 완전히 마비되었다. 하루 종일 회원가입을 희망하는 전화가 폭주하였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전화를 걸어 하시는 첫 마다가 “월 1만원을 내는 회원이 되려면 어떻게 하죠?”였다. 기사의 끝 무렵에 “월 1만원씩 내는 회원 1만명만 있으면 아무 걱정 없이 환경을 지키는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내 인터뷰 기사와 함께 전화번호가 안내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과 그 다음날, 이틀 동안 무려 400명이 넘는 분들이 새로 녹색연합 회원이 되었다. 녹색연합 역사상 처음이자 다시없는 회원가입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지금도 회원활동을 하고 계시고 자원활동을 하시는 분도 계시다. 이러한 회원들이 있었기에 녹색연합은 IMF의 터널을 큰 상처 없이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 녹색연합에 또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창립이후 최대의 고비였고 단체의 존폐문제가 거론되었다. 실무진들은 회원들의 동요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녹색연합 회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무실에 찾아와 힘들어하는 활동가들에게 저녁을 사주며 위로해주고, 전화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시기 회원 탈퇴율은 특별히 증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신규 회원가입이 어려울 거라며 자청하여 회비를 올려주기까지 하셨다. 이러한 회원들의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곧 문을 닫을 것 같았던 녹색연합이 그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 환경기자클럽에서 주는 ‘올해의 환경인 상’을 받았고 이어서 ‘교보환경 대상’도 수상하였다.

녹색연합에는 이렇게 묵묵히 회비를 내시는 분들이 본부에 4천여명, 전국에 약 1만여명이 있다. 그리고 수백명의 회원들이 자원활동과 회원모임활동을 하고 있다. 이 분들이 녹색의 힘이며 내가 운동을 할 수 있는 버팀목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회원들께 제대로 된 감사의 말도 하지 못하고 지내왔다. 신문에 난 기사 하나만 보고 아무 조건 없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신 많은 분들, 어려울 때마다 녹색연합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신 분들이 바로 회원들이었지만 충분히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늘 부담만 지워드렸던 것 같다.

녹색연합의 이름으로 늘 많은 것을 부탁드렸다. 때로는 재정이 어렵다고 특별회비를, 때로는 회원배가운동을 한다고 회원가입을,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받기만을 원했다.

많이 늦은 감이 있고, 또 너무나 부족하지만 이렇게나마 우선, 녹색을 든든하게 지켜가시는 회원님께 온 마음으로 엎드려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그간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위로를 드리고 싶다.

이제 녹색연합은 창립 15주년을 맞이하고 있으며, 조직이 그 어느 때보다 안정되어 보이고 안팎으로 녹색연합에 거는 기대도 한층 높아져 있다.
그런데 오히려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느 날 문득, 녹색연합 사무실을 찾는 회원들의 발걸음이 예전보다 뜸하고 각각의 운동에 함께하는 회원들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만나는 회원 수는 IMF때보다, 2000년보다 적은 것이 현실이다. 사무실이 조금 멀어졌고 내 역할이 바뀐 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회원님의 마음에서 멀어진 조직이 일반 시민들의 마음을 열 수 없다. 회원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녹색연합만이 진정한 녹색세상을 그려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

98년 내가 그토록 바라던 정회원 1만명을 갖는 녹색연합의 꿈은 아직 멀기만 하고 회비에 의한 재정자립도 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개발의 바람은 갈수록 거세지만 녹색의 힘은 아직 너무 작아 보인다. 새만금에서도 그렇듯이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에 감사와 죄송스러운 마음을 표하면서도 다시금 회원님께 어깨를 기대고 싶다.

본부를 기준으로 금년에 정회원 5천명, 2010년엔 꼭 1만명 회원의 꿈을 이루고 싶다. 1만 회원들이 뜻을 모은다면 못할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길게는 15년간 녹색의 든든한 지기로 계신 회원님, 그리고 지금 막 녹색연합에 가입하신 회원님까지, 나의 이런 마음이 너무 늦지 않은 감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회원님과 함께 더 나은 녹색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희망한다.

올해 연말에는 ‘5천 녹색가족’께 감사의 편지를 드릴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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