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은 시민운동가

2006.05.30 | 미분류

▲ 심재봉화백  

요즘에 빼먹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황사 때문에 생긴 습관으로 자기 전에 다시 양치질하는 것과 드라마 ‘연애시대’ 보기.

세련된 카메라기법과 똑 떨어지는 대사, 능숙하다 못해 능청스러운 연기만이 연애시대를 장식하는 건 아니다. 픽션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는, ‘있을 법한’ 이야기가 보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

연애시대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우리네 사람들이다. 직장 다니고, 결혼해서 애 키우고, 연애하는,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들. 그래서 이들의 울고 웃는 이야기가 가벼이 들리지 않는다.

어느 날 동진(극중 남자주인공)은 말한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라고.’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야기가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도 모르게 서글퍼졌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이 없다는 이야기가 당연하게 들린다는 사실이 슬퍼진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직업이 생긴다는 것이 장래희망으로 인식되어 왔다. ‘무엇’이 되는 것이 장래희망이었던 어린 시절을 거치고 나서 ‘무엇’이 되어버리면, 이제 꿈은 없어지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 운동선수와 같은 명사형 장래희망이란 존재는, 그런 직업을 갖게 되는 20~30대가 되어버리면 어린시절만의 꿈으로 남아버린다.

그러나 이 세상엔 형용사형 장래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 되는 것이 장래희망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장래희망인 사람들. 나는 그들을 ‘시민운동가’라고 명칭하고 싶다. 단순하게 시민단체에 관여하고 상근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올바른 변화를 꿈꾸고 그 변화를 위해 평생 노력하는 이들, 그들이 바로 시민운동가다.

전남 영광에 사는 용국 아저씨는 오늘도 꿈을 꾼다. 날이 갈수록 머리가 빠져 고민이라는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을철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방앗간 주인장이다. 올해 깻잎농사가 잘 되길 바라는 소박한 바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평생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그 꿈을 위해 노력하면서, 간혹 다른 이가 들릴 듯 말 듯 읊조린다. 나 죽기 전에 핵발전소가 없어지길 바란다고.

좋았던 사람들의 관계마저 망쳐놓고, 언제 사고가 날지 몰라 마음 졸여야하고, 지역공동체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아픔을 가져온 핵발전소가 이 세상 어디에도 없길 소망하고 있다. 그렇게 반핵운동을 20여년쯤 해오다보니, 이제는 에너지전문가가 되어버렸다. 에너지시스템의 불평등한 구조와 핵산업의 독선적인 위치에 대해 폭넓은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사회적 형평성 회복을 위해 오늘도 뛰고 있기 때문이다.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부인으로 유명한, 설치미술가 오노 요코도 꿈을 꾼다. 그러나 그녀는 꿈을 함께 나누라고 말한다. ‘홀로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고,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노 요코의 말처럼,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행복한 사회를 위해, 건강한 지구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평생 꿈꾸는 이들의 장래희망이 ‘시민운동가’였으면 좋겠다.

위 글은  시민의신문 에서  ‘에너지’ 를 주제로, 기획연재 되고있는  ‘이버들의  에너지, 에코리듬 타다’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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