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싸움에 애꿎은 국토만 망가뜨려서야

2006.09.05 | 미분류

최승국(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수년째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들이다. 그리고 경기활성화를 위해 갖은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경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국민들의 삶의 질은 더 나빠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기활성화라는 명분으로 환경보전과 사회안전망 등 우리사회가 수십년의 노력 끝에 이루어 낸 소중한 성과들을 백지로 돌리려는 정치권의 얕은 술책에 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고려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이해관계를 위해 모든 것을 내주고 양심과 영혼마저 팔아버리려는 듯한 광기어린 모습에 사회 전체가 얼어붙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았듯이 마치 경제발전을 이야기하지 않는 모든 가치는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받는 세상이 된 듯하다.

이러한 상황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른바 ‘대수도론’이라는 유령을 등에 업고 등장한 수도권 규제철폐 주장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인구과밀을 막고 난개발 등으로 인한 삶의 질이 더 이상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 합의에 의해 수도권 정비계획을 세우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몇 가지 규제조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약간의 부침이 있긴 했지만 수십년동안 우리 사회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여겨왔고 수도권의 황폐화를 막고 국가의 균형발전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안전망마저 차기 대선 전략을 포함한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규제완화 문제는 단순히 수도권의 환경문제나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삶의 질의 문제만이 아니다. 당장 ‘대수도론’이 불거져 나오자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이에 대한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을 바라는 비수도권 주민들은 수도권 규제완화로 인해 수도권에 인구와 투자의 집중이 심화되면 지역과 지역민들은 더욱 어려운 처지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도권의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는 구호로 시작한 규제완화 시도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대립의 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로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요구를 하나, 하나 들어주게 되고, 이는 이미 풀릴 대로 풀려버린 수도권의 환경규제를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 것이고, 지역의 개발욕구를 들어주기 위해 막개발을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논리로 시행된 각종 정책에 의해 국토 전체가 부동산 투기장으로 변한 것을 잘 알고 있다. 국토 구석구석의 땅값이 급등하고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의 질은 더 나빠지고 있으며, 전 국토가 개발의 광풍에 몰려 파헤쳐지고 있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논리는 분명 올바른 것이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시행된 정책은 부작용만 키운 것이다. 더구나 강남의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는 취지로 수도권 곳곳에 대규모 개발을 허용하면서 수도권 인구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고 이는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국토균형발전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된 것이다.

대수도론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흐름은 이러한 국토 난개발과 수도권 인구 과밀화를 급격히 부추길 것이고(경기도와 경기도내 기초단체의 계획을 종합하면 경기도의 인구가 10여년 후에 1800만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하며, 수도권에 3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몰릴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은 대기오염의 악화, 도심녹지의 축소, 교통난의 증가 등으로 삶의 질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인구의 감소, 자립기반의 파괴, 노령화의 심화, 경쟁력의 약화 등으로 점점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수도권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그간 공들여 쌓은 각종 안전장치를 풀게 되면 한국사회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국민들의 삶의 질의 악화를 초래하는 것 이상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나는 정치권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국민 전체의 삶을 담보로 한 무모한 도박을 계속한다면 이들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얽매어 국토를 더 이상 난도질 하는 것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무엇이 올바른 가치이고 진정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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