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를 떠도는 유령, GMO?

2006.12.19 | 미분류

지난 10월 국정브리핑은 ‘한미FTA를 떠도는 유령들’ 중 하나로 유전자조작식품(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한미FTA 협상에서 GMO는 논의 대상도 아닌데, FTA 반대 측이 황당한 주장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미국의 GMO 논쟁은 한미 FTA와 아무 상관없는 것일까?

GMO는 병해충에 잘 견디거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시켜 생산한 농산물을 말한다. GMO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이다. 미래 식량위기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GMO식품을 장기간 섭취했을 때 인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이다. 예기치 못한 변종 발생, 생물다양성 훼손 같은 잠재 위험도 있다.

미국은 대표적인 GMO 옹호 국가이다. 세계최대의 GMO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2005년 말 미국에서 재배된 콩, 옥수수, 목화의 87%, 52%, 79%가 유전자변형작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EU와 일본은 GMO가 안전하다는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 상업화해서는 안 되며, GMO 식품은 일반농산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GMO의 위험성을 ‘프랑켄슈타인 식품’에 빗대기도 한다.


▲ 유전자 재조합으로 생산된 과일과 채소들

전세계 곡물 수확량의 19%가 유전자변형 농산물일 정도로 GMO는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 수박, 토마토, 고추는 물론 장미, 담배까지 다양화될 전망이다. 이에 국제사회는 2001년 1월 GMO를 포함한 유전자변형생물체(Living Modified Organisms ; LMOs)의 부작용을 견제하기 위해 ‘바이오안전성에 관한 카르타헤나 의정서(바이오안전성 의정서)’를 체결하였다. 바이오안전성 의정서는 2003년 9월 11일부터 발효되었고, 사전예방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유전자변형생물체를 국가간에 이동에 대한 규범을 설정하였다.

우리 정부는 국제적인 규범에 맞춰 신속하게 준비했다. 2001년에 바이오안전성 의정서 국내 이행을 위한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이동 등에 관한 법률(LMOs법률)’을 제정했다. 법률이 정의한 유전자변형생물체에는 백혈구 증진 흑염소나 빈혈치료제생산 돼지 같은 유용물질생산 동 물, 환경정화용 미생물, 공업용 효소, 슈퍼미꾸라지, 유전자변형작물 등이다.

유전자변형생물체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수출업자나 수출국이 위해성 평가와 심사를 받아야 하고,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는 수입을 금지할 수도 있다. 유통할 때도 포장용기에 제품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산됐다는 사실과 특성, 취급방법을 명시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 놓은 법을 5년이 지나도록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오안전성 의정서의 국내 이행을 위한 LMOs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에, 정부가 유엔 사무국에 비준서를 기탁만하면 90일후 의정서 발효되고 LMOs 법률이 시행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농산물 수급을 위한 준비가 미흡하다고 변명하고 있다.

사료용 옥수수와 콩, 식용유용 콩과 면화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LMOs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환경위해성 심사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만약에 준비 없이 LMOs법률을 실행하면 사료용, 가공용 농산물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 수입· 유통되던 주요 LMOs 식용· 사료용 농산물에 대한 위해성 심사는 거의 완료된 상태이다.


▲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와 유전자조작식품(GMO)반대 생명운동연대는 지난 5일 배재학술지원센터에서
‘한미FTA, 예방원칙과 실질적 동등성‘이란 주제의 심포지움을 열었다.(사진 -참세상)

지난해 8월 열린 ‘제8차 바이오안전성전문가간담회’에 따르면 정부는 바이오안전성 의정서 비준과 LMOs법률 발효시기를 2005년 12월 또는 2006년 1월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무리해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비준 추진 논의는 사라져 버렸다.

시점이 묘하게 겹친다. 2005년 하반기는 한미 양국 정부가 한미 FTA 추진을 위한 4대 선결조건을 비밀리에 협의하고 있던 시점이다. 미국 정부가 LMOs에 대한 위해성 평가와 심사 절차를 무역장벽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정부의 비준 추진 중단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의 ‘2006년 무역장벽 보고서’는 “한국의 유전자조작 라벨링이 미국의 유전자조작 식품 수입에 걸림돌이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현재 한국정부에서 미약하게나마 실행중인 GMO 표시제조차 못마땅해 하는데, 한국 정부의 LMOs법률 시행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정부가 4대 선결조건을 내주는 마당에 LMOs법률 비준 유보 정도야 큰 양보도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3차 SPS협상에서 미국은 동물검역 및 생명공학 분야의 전문기술가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바 있다.

한국 정부는 우리가 농산물 수입국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현재 주요 농산물 수입국으로 바이오안정성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최근 6년간 우리나라에 들어온 GMO 농산물은 545만3,214톤, 140만7,729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국내 콩 수입량 중 GMO 표시 콩은 전체 수입량의 77%를 차지했다. GMO 표시제가 실시되고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도 미국산 옥수수에서 미승인 LMOs(bt10)가 검출되고, 중국산 유전자변형 쌀 검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국민들의 안전한 밥상을 위해 GMO 안전대책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한미FTA 협상이 아니라면 바이오안전성 의정서 비준과 LMOs법 실행을 늦출 이유가 없다. 이 주장도 정부가 보기엔 ‘한미FTA를 떠도는 유령들’ 중에 하나인가? 국민의 건강과 식품안전을 고려하는 기본을 갖춘 정부라면 한미FTA와 상관없이 비준 일정과 실행계획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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