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가 바꾼 우리 가족의 생활

2007.02.01 | 미분류

그저 단순하고 편리한 일상에 젖었던 나의 가치관을 바꾼 계기는 작은 아이의 아토피였다. 어른들 말대로 땅만 밟으면 낫는다는 말이 이제 달라진 환경에서는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다. 이 단순한 깨달음은 그저 남이 하는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를 위해서 뭔가를 결정하고 바꾸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수반했다.

스테로이드 연고로 새하얗게 예쁜 얼굴을 드러내는 아이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없지만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의 삶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어릴 때부터 만들어진 사람의 습관은 무서워서 먹을거니나 생활패턴, 환경 등을 바꾸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족 간의 트러불도 장난이 아니었따. 남편도 수십 년 습관을 바꾸자니 힘든 점이 많았겠지만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를 생각하며 그럭저럭 견뎌냈다고 하니 오히러 아들의 아토피가 우리에게는 고마운 존재가 된 셈이다.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온 후 아이의 온 몸은 그야말로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진물덩어리가 되었다. 나도 서울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아토피까지 지닌 아이야 오죽했을까. 몇 달 동안 아이의 고통이 별 차도가 없어 마음을 다잡고 어려운 길을 택하기로 했다. 새벽밥을 해먹고 매일 아침마다 7살 아이의 손을 잡고 근처 북한산에 올랐다. 하루 2시간 정도의 산행으로 특별히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약수에 아이의 몸을 닦으면서 나을 것이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정말 이때는 그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팔각정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문득 작고 앙증맞은 소나무 세 그루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동안 무수히 지나면서도 눈에 띄지 않았던 소나무를 보고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이 산을 오르내리면서도 우리 이외에는 어느 것에도 관심도, 눈길도 주지 않았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날의 경험은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 외의 생명의 존재에 눈 뜬 순간이다.

정말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명을 본 후 산행은 즐거워졌고 우리 가족의 변화가 더 이상 아이의 아토피만이 아니라 가족의 건강과 환경을 살린다는 마음도 생겨 더 이상 힘들지 않았다.

그 경험을 계기로 내 발길은 넓어졌다. 가정의 틀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환경을 위한 일에 참여하면서 남들에게게는 피곤해 보이겠지만 내게는 한없이 의미가 있고 즐거운 삶이 생겼다. 친환경적인 생활에 적응하는 기간이 짧지는 않았지만 전에는 향이 좋다고 느껴졌던 치약 냄새에 구역질이 날 정도가 되었으니 친환경 주부로서의 초보 딱지는 떼도 될 정도가 아닌가 싶다.

알고 보면 녹색생활은 편하다. 집안에 필요한 물건만 있으니 청소하기 쉽고, 간단한 조리법만으로 가능한 식사준비, 간식은 껍질째 먹는 과일이나 찐 감자, 고구마 등 거의 손갈 일이 없다.

요즘 반찬가게가 성황이란다.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싸고 편해서 많이들 이용한다. 하지만 돈이나 편리함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사는 건 아닐까. 음식 만들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가치관은 어디에 중요성을 두느냐에 따라 참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그런 생활태고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결과를 줄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려서 습관은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좌우한다. 그래서 가정에서 주부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좋은 먹을거이와 생활습관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만 있다면 성장해서도 항상 그 틀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아이들이 살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해진다. 몇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희망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막연히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좋은 기업에 들어가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빠진 환경에 노출될 생각을 하면 숨이 막힌다.

호사다마라고 했나. 오히려 우리 가족은 아이의 아토피로 인해 많은 깨달음과 변화를 얻게 되었다. 온갖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며 편하게 살려고만 했던 습성은 오히려 우리에게 환경의 재난으로 되돌아왔다. 때론 마트에서 내용물보다 쓰레기가 더 나올 물건을 가득 실은 카트를 보고 경악한다. 다름 사람이 그렇게 살 자유도 인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 특히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자유를 박탈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우리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자연환경을 빌려 쓰는 입장에서 그걸 최대한 덜 손상시켜 돌려줘야 한다. 또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은 우리가 맘대로 다룰 대상이 아니라 끝까지 같이 할 삶의 터전이라는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은 생각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친환경적인 생활습관을 생활화하면 저절로 얻을 수 있다. 다만 부모인 우리가 먼저 보여줘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있다.  

곽진경 / 녹색연합 옛사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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