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비는 지구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

2007.02.27 | 미분류

내복을 입고 목도리까지 두르고 집밖을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어, 봄 날씨네. 집에 들어가서 내복을 벗어야 하나?” 겨울날씨, 삼한사온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석유값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다가 올 겨울에는 유럽 사람들이 난방용 기름을 많이 쓰질 않아 값이 내려가고 있다고 한다.  눈 구경을 못한 러시아 모스코바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프랑스에서는 한겨울에 사람들이 해변에서 수영을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왜 이렇게 겨울이 따뜻해지는 걸까? 우리가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면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지구 대기권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우리가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더 두꺼운 이불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이런 지구온난화 효과로 1906년부터 2006년까지 100년간 지구 표면의 온도가 섭씨 0.74도 상승했다.  

0.74도 정도야 별 것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난리가 났다. 지구의 온도 상승은 기후를 결정짓는 해수의 흐름과 증발량을 바꿔 기상이변을 낳았다. 해마다 이상기후로 인한 엄청난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강도를 더해가는 폭우, 폭설, 가뭄, 태풍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남태평양의 투발로와 같은 작은 섬나라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어 국민 전체가 이민을 가야하는 상황이다.

북극에서는 이누이트 족이 빙하가 녹기시작하면서 익사해서 사망하는 사람이 늘어나는가 하면 북극곰도 100년 내에 멸종한다는 경고도 들린다. 북극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 적도에 위치한 만년설로 인해 ‘신비의 산’으로 알려진 킬리만자로(해발 8,895미터).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2020년이면 사라진다고 한다.

한반도의 기후변화 속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빨리 진행되고 있다. 동해안에서 한대성 어종인 명태가 사라지고 열대어가 출몰하고 있다. 키위와 같은 열대성과일을 재배할 수 있으며, 대구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농가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 숲의 소나무도 빠른 속도로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침염수의 남방한계선이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언론을 통해서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징후들은 수없이 보도되지만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작아진다. “도대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거지?” 답은 간단하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다. 과도한 화석연료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므로, 석유와 석탄 사용을 줄이면 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산화탄소를 수없이 배출한다. 주유소에서 석유를 주유해서 자동차를 달릴 때에도, 도시가스로 난방을 할 때도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그렇게 보면 공장에서 생산한 물건을 흥청망청 소비하는 일도 지구온난화와 관련 있다. 볼펜 한 자루 공책 한권을 만드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또 어떤가? 슈퍼에 가면 미국산 오렌지와 필리핀산 바나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게 먼 곳에서 우리 장바구니에 담기기까지 이 과일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여행해 왔을까? 분명 항공유나 벙커씨유를 원료로 한 비행기나 배에 실려 왔을 것이다. 결국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모든 행위가 지구의 온도를 올리는데 기여하는 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소비’는 생활이다. 먹고, 자고, 일하고, 움직이는 모든 일이 무엇인가를 소비하는 일의 연속이다. 도시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시장이나 슈퍼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면된다. 힘들여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을 다 하지 않아도 된다. 쓰레기도 그냥 종량제봉투에 담아 집 앞에 두면 다음날 아침 쓰레기 매립장으로 운반된다. 편리한 도시생활에는 분업이 잘 이뤄져 있어서 내가 소비하는 모든 것을 생산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만들어 내는 쓰레기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는 대신 우리는 돈을 지불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에 자연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가치가 온전히 다 담겨 있는 것일까?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지불하는 비용에 지구온난화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는 가난한 섬나라 사람들과 멸종될지도 모르는 북극곰에 대한 비용을 치르는 것일까.

우리의 과도한 소비가 일으키는 재앙은 지구온난화만이 아니다. 소비는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린다. 한국인이 매년 소비하는 목재를 강원도에서 생산한다면 강원도 숲은 2년, 한반도 전체의 숲은 15년이 채 되지 않아 모두 사라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브라질 아마존의 숲과 인도네시아 열대밀림에서 엄청난 양의 목재를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목재’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하지만 그 돈이 사라지는 숲과 그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보상이 되지는 못한다.

2005년 말 통계에 따르면 한국사람 3천813만명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2001년 국내에서 소비된 휴대전화 약 1500만대. 이 가운데 60%인 9천여만대는 신형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일부 재활용된 것을 빼면 820만대는 폐기처분됐다. 액수로는 1조 5천억 원에 이른다. 사실 휴대전화 과소비로 버려지는 엄청난 돈의 액수보다 더 기막힌 일은 아프리카에서 벌어진다. 휴대전화의 핵심 부품으로 쓰이는 “탄탈 커패시터”의 원료인 ‘콜탄’을 캐내느라 아프리카의 숲이 뽑혀나가고, 강바닥 곳곳에 구멍이 뚫린다. 전세계적인 휴대전화 수요 폭등이로 콜탄값이 10배나 뛰면서 콩고·르완다·앙골라 등 내전 국가의 군벌들이 서로 콜탄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1990년대 콜탄 광산의 이권다툼 소용돌이 속에서 무려 500만 명의 주민들이 사망했다. 세계 콜탄 매장량의 80%가 묻혀 있는 콩고는 고릴라의 지구상 마지막 서식지이기도 하다. 콜탄 채굴 열풍이 불면서 고릴라 수가 지난 5년 동안 80-90% 줄어들었고, 코끼리를 포함해 야생동물 90%가 사라졌다. 우리가 멀쩡한 휴대전화 하나를 폐기하는 순간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의 생명들은 ‘비명’을 지르게 된다.

중국 광둥성 기유마을은 최첨단 제품 폐기물로 수난을 겪고 있다. 대형 컴퓨터에서 휴대전화까지 이른바 ‘e-쓰레기’는 유독성 때문에 지난 1989년 ‘바젤협약’(Basel Convention)을 통해 국제간 이동이 금지됐다. 그러나 e-쓰레기 최대 방출국인 미국은 협약 비준을 유보한 채 엄청난 양의 e-쓰레기를 아시아 특히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곳에서 1년 동안 받아들이는 컴퓨터 쓰레기를 차곡차곡 쌓으면 자유여신상 두 배 높이로 기유마을 전체를 덮게 된다. 부서진 채 방치된 모니터에서 나온 납과 수은으로 오염된 지하수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3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트럭으로 물을 실어다 마시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이곳 주민들은 하루 1.5달러를 벌려고 마스크 한 장 얼굴에 걸치지 못한 채 쪼그리고 앉아 플라스틱을 태우고, 모니터 유리를 깨고, 부품에 있는 금·구리·철·팔라듐을 분리하고 있다. 이 위험한 작업에 어린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주민 대부분은 산화연·수은·납·카드뮴·비소·크롬과 같은 독성 물질에 노출돼 있다. 유엔환경계획 (UNEP)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들이 유해한 전자폐기물을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에 버리고 있으며, 매년 그 양이 5 천만 톤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콩고와 중국 기유마을,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계인의 대다수는 모르는 채 살아간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남단에 위치한 세계적 유산인 부킷 바리산 셀라탄 국립공원에 커피 재배를 위한 경지 조성이 증가하면서 각종 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에 따르면 이 가난한 지역에서는 수출을 통한 소득 증대를 위해 연간 1만9천600t의 커피가 불법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이 국립공원은 멸종위기에 처한 수마트라 호랑이, 코끼리와 코뿔소가 서식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보호지역중 하나이다. 커피 재배를 위한 불법개간이 중단되지 않을 경우 코뿔소와 호랑이는 10년도 되지 않아 모두 멸종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마신 커피 한잔에 어떤 아픈 사연들이 숨겨져 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지구 환경위기를 막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에너지를 비롯한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소비하고서는 지구의 위기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사치와, 명품, 소핑중독증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자연자원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는 것뿐만 아니라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릴 곳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호주에서 1년 남짓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배낭하나에 필요한 옷가지와 책, 세면도구, 수건만을 넣고 살아도 사는 데는 아무 불편이 없었다. 막상 집으로 돌아와 사방을 둘러보면 서 이렇게 많은 물건들 속에 둘러싸여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놀란 적이 있었다. 집안은 일년에 한번 사용할까 말까 한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당장 집안의 냉장고를 열어보라. 먹지 않은 음식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냉장고는 1년 365일 전기를 필요로 한다. 내용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덜 먹고, 덜 쓰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 내가 1kW의 전기를 덜 쓰면 그 전기를 정말 에너지가 필요한 누군가가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자동차를 타는 대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는 것으로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생활을 바꾸지 않으면 누구도 지구온난화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소비를 줄이는 것만 아니라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기업들의 물건을 사지 않아야 하며, 거대 석유회사와 정부가 지구온난화에 대해 더욱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출 것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미 세계에서 9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방출하는 나라이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모두 녹기까지 남아있는 시간은 13년. 어떻게 보면 앞으로 10여 년 동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가에 따라 지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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