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행복과 나누는 행복

2007.04.24 | 미분류

이번 달부터 적용하는 고급아파트 공용시설 전기요금 누진제 시행을 앞두고 알려진 고급아파트 전기료가 한달에 최고 100만원에 이르렀다는 것은 충격스런 이야기다. 한사람의 최저임금보다 많은 액수이다.
평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상류층의 호화스런 주택으로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주상복합단지가 그들만이 누리는 폐쇄공간을 넘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우주는 다름 아닌 집이라는 뜻이다. 집은 우주의 삼라만상이 상호 조화로운 관계로 기대어 살아가는 정주공간이다. 개인이 사는 집이 어울려 도시를 이루고, 도시들이 만나 지구를 구성한다. 이처럼 도시와 지구는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갈 공동의 집이다. 그런데 개인이 초호화 고층아파트에서 누리는 쾌적과 편리가 커질수록 우리 공동의 집인 도시와 지구의 생존은 위태로워지고 있다.

보통 가정에서 사용하는 월 평균 전기요금은 3-4만 원대이다. 반면 타워팰리스와 같은 주상복합단지의 50평형 한 가정이 한여름에 내는 전기요금은 보통 60만 원대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자연 통풍과 같은 자연 순환을 차단하고 있으니 방마다 에어컨을 돌려 냉방을 해야 하고 공기청정기를 돌려 공기를 순환시켜야 한다. 하늘 높이 치솟은 고층을 오르내리기 위해 승강기가 작동되어야 한다. 공용시설인 헬스장, 골프장 등의 시설 이용과 건물 유지관리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야말로 기계와 에너지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호화주택이 늘어갈수록 도시는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고,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자원고갈 등으로 도시는 더 이상 우리의 공동의 집이 되기 어렵게 된다. 그렇게 되면 초고층 거대단지들은 더욱 기계와 에너지에 의존하고 외부환경과의 담을 두텁게 쌓아갈지 모른다.

이들 단지의 공용시설에 누진요금을 적용하자 해당 아파트 주민들이 반발하며 진정을 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호화 사치재의 사용과 과소비를 누리는 대가를 당연히 지불해야 한다. 그동안 호화 주상복합단지가 공동의 필수시설이 아닌 호화스런 골프연습장, 사우나 등 시설에 드는 전기를 공동전기요금으로 싸게 내 왔던 것을 바로 잡아 일반 가정 요금처럼 누진 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는 당연한 이치이다.

사회양극화와 이로 인한 사회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우리 현실은 생계형 빛과 열조차 누리지 못하고 단전을 당해야 하는 가난한 이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고, 공공의 이익과 이웃의 환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초호화 사치재와 부를 누리는 계층이 많아지고 있다.
높이 솟는 아파트처럼 부를 통한 신분상승이 마치 행복인양 그 행복을 쫒고 있다.

69층 고층 아파트에서 무더운 날 전기가 나간 상상을 해 보자. 더워도 창문을 열 수 없고 숨쉬기도 곤란한, 1층에서부터 양동이를 이고 걸어서 하늘 꼭대기로 물을 길어 날라야 하는, 인위의 에너지가 아닌 자연의 힘으로 그 무엇도 해 볼 도리가 없는 그 불편과 비참함을 느껴도 행복한가.
물질의 안락과 과소비에 진정한 우리의 행복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흙 내음 같은 자연이 주는 행복, 에너지를 적게 쓰고도 쾌적하고 아름다운 공동의 집인 도시를 가꾸며 이웃과 나누는 행복이야말로 참 좋은 것이다.  

지금도 지자체는 신도시마다 우뚝 솟은 초고층 주상복합을 짓느라 분주하다. 서로 어느 지역이 더 높이 올라가는가를 경쟁하고 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리지 못한 참으로 멋없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도시행정의 전형이다.
호화주택에 사는 개인문제 이전에 주상복합단지와 같은 에너지 낭비를 부추기는 도시계획과 주택정책을 펼치는 정부정책과 건설회사의 욕망을 부추기는 이윤행위도 우리의 행복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4.23 서울신문 칼럼 ‘녹색공간’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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