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면

2007.10.19 | 미분류

물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이젠 그칠 때도 됐는데. 이런, 녀석이 샤워하면서 또 물 느끼기 장난을 치는군. “씻기는 시작도 않고, 물을 그렇게 계속 틀어 놓고 있으면 어떻게 해!” 물을 아껴 써야지. 전 세계적으로 11억 명이 안전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잖아. 세상에서 다섯 명 중 한 명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고, 매년 500만 명이 오염된 물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 가고 있어. 하루에도 9.11 사건 사망자 다섯 배의 사람들이 오로지 물 때문에 죽어 가고 있단 얘기지. 2025년이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져서 20년마다 물 문제로 사망하는 사람들 수가 두 배로 늘어난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5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데, 미국에서는 하루에 1인당 500리터 이상의 물을 쓰고 있고, 소말리아에서는 1인당 9리터를 쓰고 있지. 그곳의 여성과 아이들은 수십 킬로미터씩 걸어서 물을 길으러 다녀야 하고.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니까?” 사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야. 예전에 정부에서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라고 한참 홍보하고 다녔지만, 사실 그건 물 부족으로 용수 공급을 위해 댐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가 필요했던 건설교통부가 유엔 국제인구행동연구소 분류 방식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야. 국제인구행동연구소는 1년 강수량을 총 인구수로 나누어서 1인당 사용 가능한 물의 양을 산출하는 방식을 썼거든. 그래서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는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소말리아, 레바논 등과 함께 물 압박(stress) 국가로 분류된 거야. 우리나라는 1인당 물 사용량이 300리터가 넘어. 그런데 1인당 9리터를 사용하는 소말리아와 같이 물 부족 국가라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얼마 전부터 건설교통부는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을 슬그머니 안 쓰고 있어. 토목 공사 대부분을 관장하는 정부 부처인 건교부는 물이 부족하다며 우리 물길을 바꾸고 마을을 수몰시키고, 지역 주민들을 오랜 고향에서 내몰고, 생태계를 파괴시키면서 댐을 지어 왔지. 결국 홍수가 나면 마을과 도로가 잠기고 둑이 무너지는데, 사실, 물에 잠긴 곳들은 본래 그 곳이 물이 흐르던 길이었대. 원래 흐르던 자기 길을 찾아간다는 얘기지. 우리가 물 부족을 느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시장 개방으로 농축산물 수입이 늘면서 농업용수를 절약하게 된 거야. 농업용수 쓰임이 국내에서 연간 사용하는 수자원의 50%가 넘거든. 곡물과 축산물을 수입하면서 물도 함께 수입되는 거라고 볼 수 있어. 그래도 물은 아껴 써야 해.

“지구의 70%가 물인데, 왜 지구상에는 물이 부족한 거야?” 대부분의 물이 바닷물이기 때문이지. 담수는 2.5%뿐인데, 그것도 남극, 북극, 그린란드, 고산지대 빙하의 얼음으로 있고, 나머지 대부분의 담수도 지하수로 있지. 결국 호수나 하천, 빗물같이 인간이 쉽게 쓰는 물은 지구 전체가 갖고 있는 물의 0.01%밖에 되지 않는데, 사실 적어 보이는 이 정도 양은 21세기 세계 인구가 사용하기에 충분한 양이란다. 문제는 물을 이용하는 방식이지. 여태까지 지구 생물들은 물이 만드는 기후에 적응하면서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왔거든. 열대우림에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생물들이 살고, 사막에는 아침이슬만 먹어도 충분한 생물들이 살았지. 동물들도 필요 이상으로 물을 낭비하지 않았고. 인간만이 문제지. 지난 70년 동안 세계 인구는 3배 이상 늘었는데, 물 수요는 6배가 증가했고. 세계 인구가 미국 사람들처럼 물을 쓰게 되면 이용 가능한 90%의 담수가 소비되어 버린대.

뭐, 이런 이야기들을 그 녀석도 잘 알 거다. 내 잔소리를 여러 번 들었으니. 그런데도 목욕하는 내내 물소리가 그치지 않는 걸 보면, 틀어 놓은 물과 노는 재미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 난 이렇게 호소한다. “엄마가 그래도 환경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좀 봐 주라.” 구차한 태도나 잔소리, 지루한 강의 형식이 아닌 좀 다른 방식으로 아이에게 환경 의식을 갖게 할 방법은 없을까? 환경의 범주가 넓듯이, 환경 문제와 환경 운동의 범주도 아주 넓다. 숲 지키기, 야생 동물 보호하기, 하천과 강, 바다 살리기, 깨끗한 물 공급 받기, 오염된 토양과 대기를 건강하게 회복시키기, 쓰레기 줄이기, 유해 화학 물질 규제하기, 아토피 등 환경 질환으로부터 탈출하기, 환경을 생각하는 농업과 먹거리 공급하기. 아! 지구 온난화, 에너지 위기, 원자력과 핵의 위험, 전쟁으로 인한 생명과 생태계 파괴 방지하기 등……. 환경의 범주가 넓은 만큼 환경 책의 범주도 꽤 넓다.

몇 해 전부터 ‘환경 책 잔치’라는 것을 매년 열면서 100권의 환경 책 일반, 미래를 위한 환경 책, 어린이를 위한 환경 책 10권 등을 선정한다. 대단히 우수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사실, 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사건이나 현상을 아이와 대화로 풀어가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들을 어른의 논리 전개 방식과 다르게 구사해서 아이를 납득시켜 내는 방식을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아주 설명이 짧거나, 지루해서 아이가 이내 집중하지 못하고 마는데, 그럴 때 좋은 것이 역시 책인 것 같다. 예전에 아이 책을 고르며 『슬픈 거짓말』이나 『뚝딱뚝딱 인권짓기』를 참 감사하게 읽었다. 장애우 차별, 성적 소수자 문제, 소외받는 노인 문제, 호주제 폐지, 6월 항쟁, 광주 항쟁, 전태일 이야기 등등, 아이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아이가 꼭 알아야 할 사회 문제와 역사 사실들을 쉽게 설명해 주는 책들을 볼 때, 감사했다. 그럼 환경 책들도 그런 것들이 있을까? 난, 모름지기 책은 정보나, 감동, 혹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린이 환경사전』은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 열대우림 파괴, 생물종 멸종, 물과 땅 오염, 소음, 쓰레기와 재활용 등 분야별로 의미와 해설, 위기 징후들을 사전답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도 소개하고 있다. 주요 환경 사건, 기념일까지 챙기면서 어린이 정보지답게 구성되어 있다. 『환경보고서 땅』은 어린이들이 이 책을 다 섭렵한다면 어른들이 참 민망해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보와 철학의 깊이가 대단하다. 물론 어린이들이 읽기 적합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책들은 ‘정보’ 중심이다. 감동이나 재미는 덜하지 싶은데.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어린이 들살림, 갯살림, 산살림 책들처럼 자연을 살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주는 책들도 있다. 이런 책들은 논리적 설득 전에 태생적으로 체득되어야 할 자연의 의미와 소중함에 대해 접근하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는 속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본래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속도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자연’ 그 자체임을 긍정하게 해 주는 책이다. 인간이 자본과 결탁하여 형성한 사회 질서는 사실 생태계 파괴뿐만 아니라 자연의 질서와 그 본성을 줄기차게 부정하고 있으며, 그 양태가 속도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도 사실 아이에게 평균 속도나 그 이상을 강조하고, 그것에 미달되면 발달 장애라는 누명을 씌우곤 한다. 막내 황조롱이, 그만이 갖는 자기 속도를 인정해 주면서 그 느림에 대해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책들은? 역시 동화적 상상력이 큰 이야기들일 게다. 이야기, 서사를 갖고 있는 환경 책들은 많이 찾을 수 없다. 환경 책 잔치에서 소개된 책들도 상상력과 서사를 충족시켜 주는 책들은 많지 않았는데, 『생명이 들려준 이야기』는 재밌게 보았다. 우리가 더 이상 도깨비를 볼 수 없는 이유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간의 대단한 발명품 중 하나인 플라스틱이 생태계에 던진 파문 역시 대단한 것이었는데, 이 문제를 간단한 동화적 서사로 풀어 내고 있다. 요즘 도깨비를 볼 수 없는 이유가 땅속에서 잠자던 도깨비가 잠을 깨 땅 위로 나오려 해도 썩지 않은 채 땅을 두껍게 덮고 있는 비닐을 뚫을 수 없기 때문이라나.

어릴 적부터 시위 참석을 종용(?)하는 책도 있다. 천 년 된 삼나무 숲이 벌목 위기에 처하자 ‘줄리아 버터플라이’가 2년 간 55미터 삼나무 위에 작은 둥지를 틀고 지냈듯, 인천의 마지막 숲 계양산의 11미터 소나무 위로 우리 활동가들이 올라갔듯, 나무 위로 올라간 용감한 아이들이 있다. 『나무 위의 아이들』은 라틴아메리카 숲을 개간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숲을 지켜 낸 이야기이다. 소작농의 아이와 지주의 아이가 나무를 매개로 친구가 되면서 숲을 불태우려는 움직임에 저항하며 함께 나무 위로 오른다. 그리고 나무를 태우려면 우리들도 태워야 한다고 외친다.

십 년 전쯤, 내 머릿속엔 성 차별, 장애 차별, 인종 차별, 아동 학대, 국가 간·계급 간 착취 등 인간 평등이란 시야에서의 평등 개념만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종의 평등’ ‘종 사이의 평등’이란 말을 들으면서 크게 충격을 받고서 환경 운동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한 대 얻어맞는 느낌, 그 느낌이 좋아서 우린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인간에 의한 다른 종 수탈 구조는 염두에 두지 않는 사회에서 사고 방식과 가치 기준을 달리하며 시야를 넓혀 주는 환경 책들을 많이 보고 싶다.

■ 글 : 임성희 <월간 ‘열린어린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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