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는 ‘새로운 제국주의’다

2007.12.14 | 미분류

“기후 변화는 ‘새로운 제국주의’다”  
  [발리는 지금] 주목받는 ‘기후 불평등’  

  지난 12월 3일부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1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고 있다. 192개국에서 정부 대표자, 과학자, 국제기구 관계자, NGO활동가, 기업인 등 약 1만 명이 참가한 이 회의에서는 2013년부터 기후 변화를 막고자 전 세계가 어떤 대응을 할지를 놓고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격론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은 환경재단과 공동으로 회의 기간 동안 발리 현지 기고를 통해 생생한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환경정의 이진우 초록사회국장이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둘러싼 현지의 논란을 보내왔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탓에 이번 총회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기후 변화로 고통 받고 있는 제3세계 주민의 목소리가 부각되고 있다. <편집자>
  
  지구 온난화와 불평등
  
  기후 변화는 단순히 생태계 파괴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구 온난화로 이미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빈곤이 더 심해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기후 변화로 문화 자체가 붕괴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리고 있는 제1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도 ‘기후 불평등(Climate Injustice)’ 문제가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총회와 함께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시민사회포럼(Civil Social Forum)의 주제로 ‘기후 정의(Climate Justice)’가 선정됐다. 12월 8일 전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기후 변화 대응 국제 행동의 날’ 행사 역시 지구 온난화로 고통 받는 제3세계의 원주민, 여성, 아동의 권리를 요구하는 내용을 중심 이슈로 채택했다.
  
  총회가 열리고 있는 발리에서는 약 2000명의 현지인과 NGO 활동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발리 섬의 수도인 덴파사(Denpasar)에서 약 1시간 동안 거리 행진을 진행했다. 날씨는 더웠지만 열기는 예전보다 더 뜨거웠다. 인도네시아의 지구 온난화 피해가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곳이어서 현지 주민의 호응은 더욱 컸다.
  
  원주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프로그램을 벌이고 있는 ‘Gerak Rawan’이라는 현지 단체는 기후 변화가 “새로운 제국주의(Neocolonialism-Imperialism)”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며 생태적, 사회적 정의를 위해 일반 주민의 문화와 생존의 권리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Gerak Rawan은 행진 내내 지치지도 않고 “사회가 변하면 기후도 변한다(Social Change, Climate Change)”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런 간절한 외침은 지구 온난화의 문제가 이미 어떤 사람에게는 생존의 권리와 직결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식물 연료는 지구 온난화의 대안인가?
  
  거리 행진에서 만난 ‘군도 토착민 연합(Indigenous People’s Alliance of the Archipelago)’의 활동가인 미나 수사나 세트라(Mina Susana Setra) 씨는 대표적인 기후 불평등의 예로 현재 선진국에서 지구 온난화를 막고자 대체 수송 연료로 각광을 받고 있는 식물 연료를 꼽았다. 인도네시아에는 현재 20만㏊가 식물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앞으로도 19만㏊를 더 승인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정부 차원에서 식물 연료 경작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얼핏 보면 넓은 경작지에서 생산하는 식물 연료로 지구 온난화도 막고, 지역 주민 역시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트라 씨는 그런 혜택이 정작 식물 연료 작물을 농사짓는 농부에게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식물 연료를 생산하고자 농장을 지으면 지역 토착민의 문화를 파괴하는 인권 문제가 발생한다. 게다가 값싼 임금에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고, 정부가 대형 기업을 통해 대량 생산을 하기 때문에 원주민은 시장 접근을 하지 못해 경제적 이득도 얻을 수 없다. 이걸 지구 온난화의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 선진국이 자신이 저지른 지구 온난화를 막고자 우리에게 더 많은 고통을 요구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사진 Mina)”
  
  세트라 씨는 칼리만탄, 바쿠아 등 인도네시아 거의 모든 곳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원주민의 인권과 환경 파괴 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금번 총회가 원주민의 상황을 이해하고, 의견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국가처럼 식물 연료 탓에 피해를 받는 국가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거리 행진에 직접 참여한 농민들은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기후 변화로 자신은 갈 곳이 없다”는 피켓 하나 앞에 둔 채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를 지친 몸으로 받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기후 정의’는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책임이 거의 없는 제3세계 국가들이 더 많은 피해를 받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더 많은 책임 의식을 가지고 기후 변화 대응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진국의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이 70%를 훨씬 상회하고, 그 나머지 30% 역시 현재의 다배출 국가들이 대부분 배출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3세계 국가에게는 정말로 불평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기상 이변으로 인한 피해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에게 밀집되고 있다는 점은 몇 번이고 곱씹어봐야 할 문제다.
  
  총회장 내에서도 ‘기후 정의’와 관련한 전시물이나 퍼포먼스가 많이 펼쳐지고 있다. 각종 홍보 부스가 밀집해있는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기후 정의에 관한 전시물 하나가 참가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수백만 개의 얼굴, 하나의 메시지. 기후 정의(Million Faces, One Message, Climate Justice)”이란 문구와 함께 다양한 인종의 얼굴 사진을 모자이크해놓은 현수막이었다.

  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현수막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놓기에 충분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2012년 이후 기간에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줄일 것인가, 그것이 자국의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을 입힐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는 동안 ‘기후 빈곤(Climate Poverty)’이란 말은 회의장 내에서 서서히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후 불평등의 문제를 해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진국들은 자신의 책임에는 아랑곳없이 경제적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경제 원조와 기술 이전 등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제3세계 국가 원주민의 처참한 삶에는 관심이 없다.
  
  다행히 산림을 다른 경작지로 바꾸는 ‘산림 전용’을 막기 위해 열대우림 국가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원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는 이 상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이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모든 인류의 기후정의를 위해서는 각국 협상대표단이 전향적으로 정치적 결단을 내릴 시기가 됐다.
  
  거리 행진이 진행된 날 저녁에는 투발루 국민 1만 명의 메시지가 발표됐다. 그들에게는 지구 온난화가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 세계인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현실’은 곧 ‘우리 모두의 미래’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발리=이진우/환경정의 초록사회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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