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정부 온실가스 감축 사실상 포기

2008.03.27 | 미분류

[왜냐면] 정부 온실가스 감축 사실상 포기 / 이유진

“2012년까지 2005년 수준 현상 유지”
환경부의 대책없는 방침이 놀랍기만
각국 강도높은 감축 진행중인데
손놓고 있으면 결국 우리 경제 위기

환경부가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으로 ‘현상유지’ 한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최근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세가 둔화되는 점을 감안하면 배출량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환경부의 방침은 기후변화 대책을 세우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기후변화에 대한 환경부의 인식수준과 대범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기후변화는 전지구적인 이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기후변화협약을 유엔의 당면과제로 선정하고 한국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른바 ‘환경영웅’이라는 이명박 대통령과 전 유엔 기후변화 특사였던 한승수 총리가 있는 정부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사실상 포기한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발표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유류세 인하,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전기요금 인하 등 에너지 절약과 효율개선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을 발표하면서 오히려 기후변화 대응에서 후퇴하고 있다.

올해부터 36개 선진국은 교토의정서에 따라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기준년도가 1990년이다. 기준년도 1990년과 2005년은 하늘과 땅 차이다. 1990년에서 2005년 사이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억9750만톤에서 5억9110만톤으로 98.7%로 갑절 가까이 늘었다. 만약 우리가 선진국처럼 온실가스 의무감축 국가라면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여야 하는 셈이다.

영국은 2050년까지 ‘90년 대비 80% 감축’을, 독일은 2020년까지 ‘90년 대비 40% 감축’을, 노르웨이는 2050년까지 배출량 0, 즉 탄소중립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각국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강도 높은 온실가스 감축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온실가스 전체배출량 6위, 배출 증가율 1위인 한국이 2005년 배출량 유지를 목표로 내걸 경우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치게 될 것이다. 특히 국제사회 기후변화 대응을 주도하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정치적 리더십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심지어 환경부는 비산업부문은 20% 감축을 제시하면서 산업부문 감축 목표는 언급조차 없었다. 산업부문은 우리나라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분야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에너지 다소비업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개편함과 동시에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한다. 물론 온실가스 감축이 산업계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환경부가 강도 높은 감축목표를 제시하면 지식경제부가 반발하면서 조정하기 마련인데, 지금의 목표치는 환경부의 존립근거부터 의심하게 만든다. 환경부가 육성하겠다는 1조 규모의 탄소시장은 온실가스 의무감축이라는 명확한 목표와 동기부여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다.

‘발리 로드맵’에 따라 우리나라도 2013년부터 감축 대상국 편입이 불가피하다. 국민소득 4만달러를 목표로 하는 개도국은 없다. 유럽 기후행동네트워크(CAN)는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수준을 평가대상 56개 국가 중 48위로 평가하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 산업체의 86.4%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조차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의 개구리는 자기 몸이 익어가는 줄도 모른다. 언제까지 손놓고 있을 것인가?

2013년부터 강도 높은 포스트 교토 체제가 시작되면 우리 경제는 무방비 상태로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국제사회의 비난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유가를 비롯한 에너지가격도 심상치 않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현상유지’가 아닌 의미 있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유진/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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