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자

2008.04.02 | 미분류

모 방송국 프로그램이 서울 강남대로에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했더니 지구 평균인 380ppm 보다 월등히 높은 520ppm이 나왔다. 고층건물과 자동차가 뿜어낸 이산화탄소가 도시의 대기를 2050년 지구평균과 비슷한 수준으로 만든 것이다. 충격적이다. 도시는 지구 표면적의 불과 2%를 차지하면서 전체 에너지의 75%를 소비하고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0%를 배출하고 있다. 도시와 지역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1993년 세계지자체환경협의회(ICLEI) 지도자들은 뉴욕 UN본부에 모여 지방자치단체와 도시가 기후보호도시(CCP, Cities for Climate Protection) 운동을 추진할 것을 선언하였다. 기후보호도시 운동은 지방정부가 나서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정책을 펼치며, 대기 질을 개선하고, 삶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활동이다.

<ICLEI 기후보호도시 캠페인 5단계 지침>

1단계,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 목록을 작성한다.
2단계,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설정한다.
3단계, 지방정부가 온실가스저감 계획을 상세히 작성하고 시의회와 시민사회의 동의를 구한다.
4단계, 계획한 정책을 효율적으로 실행한다.
5단계, 온실가스 저감 활동을 평가ㆍ검증한다.

현재 전 세계 650여 개 지방정부가 기후보호도시를 선언하고 기후변화 완화를 정책 목표로 실천하고 있다. 이 지자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배출량의 15퍼센트에 달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지자체들의 기후보호도시 활동은 그리 활발하기 않다. 광역자치단체 16곳 가운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본계획과 추진체계를 갖춘 곳은 7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9곳은 대응책 자체가 없다. 희망적인 소식은 기후변화가 지구적인 과제가 되고 있기에 이제 우리지자체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경기도와 서울시는 온실가스 배출 목록을 작성해 기후변화 대책 수립에 나섰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5%감축한다는 목표를 발표하고 “친환경에너지 선언”을 하기도 했다. 안산시, 제천시, 수원시도 기후보호도시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의 삶이 바뀌어야 도시가 바뀐다>  

모 일간지에서 벌이는 ‘지구를 구하고 우리의 미래를 구하자’라는 캠페인이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기사 중에는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이 “서울은 매일 축제 하나요?”라고 물었다는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서울의 밤거리가 너무나 휘황찬란하고 밝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에도 아파트에서 반팔 옷을 입고 지내는 가정비율이 30%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기후변화 대응은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도록,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과천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개인배출권 할당제를 진행하고 있다. 모두 500가구가 신청을 했고, 시에서는 우선 전력사용량을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각 가구별로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과천시는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201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5% 줄이게 된다. 일본 교토부는 조례에 ‘에코(환경) 마이스타’ 제도를 만들었다. 전기제품이나 자동차를 팔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잘 설명해 주는 사람에게는 달인이란 의미의 마이스타 호칭을 부여하도록 했다. 시민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만 보지 않고 적극적인 참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과천시에서도 개인배출권할당제에 적극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기후변화 대응의 달인’으로 명칭을 부여하고 다른 시민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볼 수도 있다.  

<배출량 계산이 가지는 의미>
– 지자체별 CO₂배출특성에 따른 기후보호대책 마련

기후보호도시 운동을 할 때 제일 먼저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왜 온실가스배출 목록이 중요한 걸까? 녹색연합은 지난해 11월 서울 25개 자치구의 전력, 도시가스, 석유 등 에너지 사용량을 바탕으로 자치구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산정했다. 조사 결과,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강남구가 446만 톤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서초구 299만 톤, 강서구 296만 톤 순이었다. 전력사용량을 보면 강남구가 강북구보다 5배 많았고, 대학이 몰려있는 관악구, 서대문구, 성북구에서는 교육용 전기사용량이 높게 나왔다. 이렇게 연료별, 부문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조사하면 어디서 어떻게 감축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같은 서울시에 속하지만 25개 자치구마다 에너지사용 형태와 이로 인한 CO₂배출량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구가 비슷해도 강남구는 관악구보다 2.8배나 많은 CO₂를 배출한다. 비단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의 도시들은 인구형태, 산업구조 등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당연히 에너지사용 특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초지자체별로 CO₂배출량을 산정하고, 이를 통해 감축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한다면 지역의 특성에 맞는 효과적인 기후보호계획을 세울 수 있다.

<기후보호대책을 반영한 지역에너지계획 세우기>

지방자치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에너지정책에 관한 권한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기에 지방정부가 기후변화대응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이 벅차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헤르만 셰어는 <에너지 주권>에서 “도시는 정부만큼 ‘정치-에너지업계 연합체’의 결속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재생가능에너지 확산을 시작할 수 있다”라고 오히려 지방정부가 가진 장점을 역설한다.
우리나라도 1995년부터 전국 16개 특별시, 광역시, 도 단위 지방자치단체는 5년 주기로 지역에너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앞으로 지방정부는 지역에너지 계획에 지후보호 대책을 반영, 보다 정성들여 작성해야 한다. 연구원에 용역을 주는 방식 보다는 계획을 수립 단계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지역 대학, 주민이 참여해 지역의 에너지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전문성이 문제라면 스웨덴의 사례를 참고하자. 1970년대 말, 스웨덴은 중앙정부에서 보수를 지급하는 에너지 자문관을 지역으로 보내 각 시가 에너지 계획을 세우는 일을 지원했다. 자문관들은 다른 지역과 협력해 에너지 절감 방안을 찾아내고 지방의 산업체와 전력 회사들과 함께 에너지 절감 방안을 수행할 수 있게 지원했다. 그 결과 에너지 소비도 줄고 더불어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어들었다. 지역에너지 계획에서도 지역 특색을 살린 멋진 ‘발명품’이 나와야 한다.

<지역에너지 조례가 갖는 창조성>

지방자치단체의 기후보호 활동을 위해 조례를 적극 활용해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가 2002년 1월 에너지기본조례를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11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에너지 조례를 만들었다. 우리의 조례는 에너지 절약, 효율 향상, 에너지 전담 부서 설치 등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외국 사례를 보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상당히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일 아헨에서 시작된 ‘태양광 전기 의무 매입 제도’ 조례는 훗날 ‘발전차액지원제도’로 확대되었고 결국 지금의 독일이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시의회는 2000년 8월부터 태양에너지 조례를 시행했다. 조례의 목적이 구체적이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온수를 생산하는 시설을 각 건물에 보급하는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에너지 조례는 파격적이다. 2004년 5월 11일, 샌프란시스코 카운티 의회는 하루 전력 수요의 절반인 360메가와트를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대체하기 위한 ‘에너지 독립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냥 에너지 조례가 아니고 ‘독립 조례’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전기 공급자는 시가 투자하는 전기 회사다. 시 소유의 전기 회사가 360메가와트의 청청에너지를 생산해 샌프란시스코 에너지의 50퍼센트를 공급한다는 획기적인 계획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1980년대 중반에 자체 전력 회사를 설립했다. 필요한 전력의 대부분을 외부 발전소에서 사오지만 피크타임의 전력은 지역에서 생산하기 위해서다. 지역에너지 조례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창조적이다. 그런 조례를 통과시키고 실천하기까지는 시민들의 지지와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시의회와 공무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자체 건물과 공무원들이 먼저 실천해야 >
 
교토부는 청사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20%까지 줄인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시민들에게 기후보호도시를 만들자고 이야기하기 전에 지자체가 갖고 있는 건물을 대상으로 공무원들이 먼저 실천에 옮긴다는 것이다. 지자체 공무원들이 세계의 기후보호도시를 보고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공무원들만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시민들과 공무원이 해외의 선진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함께 배우고 토론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환경부는 제주특별자치도, 과천시, 창원시, 부산시와 연달아 기후변화 대응 시범도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후변화 제4차 종합대책에 ‘지자체 기후변화협의체’를 설치·운영한다는 내용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앞으로 정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지방정부의 기후보호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이제 기후변화를 이야기 하지 않고 도시와 지방정부의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지자체가 기후변화대응에 발 벗고 나서자. 지방의 명품 ‘특산물’ 처럼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명품 ‘기후보호도시’를 만들자.  

이유진/ 녹색연합 에너지 기후변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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