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2003년

2008.05.08 | 미분류

  <세계 식량위기, 쌀값 폭등,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류독감, 식용 GMO 옥수수. 우리의 먹거리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5년전 저는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라는 글을 시사저널 727호(2003년 10월 2일자)에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쓴 글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되며, 조만간 2008년 이야기로 다시 써서 회원님들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국적 곡물 메이저 ‘파이브 브라더스’

“미국 농민들과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농민이 생산한 옥수수 4달러 어치로 팝콘을 만들어 팔면 소비자가 사먹는 값은 1백40달러입니다. 그럼 남은 돈 1백36달러는 누가 가져갑니까? 곡물 메이저, 가공업자, 초국적 기업들 몫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정치권과 짜고 농산물 수입국들에게 압력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총장님의 견해를 밝혀주십시오.”

2003년 9월 중순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담에서 자결한 농민운동가 이경해 씨가 생전에 수파차이 파닛팍디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에게 보낸 항의 서한의 일부이다. 한국의 한 농부가 목숨을 걸고 맞선 이들, 즉 농업 협상의 숨은 실력자란 전 세계 곡물 교역량의 80%를 차지하는 세계 5대 곡물 메이저를 말한다. ‘파이브 브라더스’라 불리는 이들은 미국의 카킬과 아처 다니엘스(ADM)가 교역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프랑스의 드레퓌스(12%), 아르헨티나의 붕게(7%), 스위스의 앙드레(5%) 순이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세계 농산물 생산지와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곡물을 사들이고, 이를 각국 정부와 기업에 판매해 엄청난 이윤을 거두어들이는 농업 분야의 공룡들이다. 이들 메이저가 손대는 것은 밀, 보리, 옥수수 같은 곡물만이 아니다. 씨앗에서부터 농약렌貳姸┠가공식품렌燻恣幣極?이르기까지 식량과 관련된 분야 전체는 물론 선박 회사나 저장 시설까지 두고 있다. 다른 운송 회사나 물류업체는 곡물 거래에 파고들 여지조차 없다.

이들 회사 중 세계 최대인 미국계 카길은 1998년 말 당시 세계 랭킹 2위였던 곡물 메이저 콘티넨털까지 인수해 세계 곡물 시장의 명실상부한 패자로 군림했다. 세계 60개국에 공장을 천 개가 넘게 두고 세계 각국 노동자 10만 명을 부리고 있는 카길은 전 세계 100여 나라와 거래를 트고 있는, 말 그대로 ‘글로벌 기업’이다. 2004년 현재 총 자산 4백억 달러로 웬만한 개발도상국의 1년 수출액과 맞먹는다. 카길은 한국도 단골 손님으로 두고 있다. 한국 수입 곡물 시장에서 카길은 점유율 60%를 자랑한다. 식량 자급률이 30% 이하인 나라에서 전체 수입 곡물의 60%를 단 하나의 곡물 기업이 공급하고 있으니, 한국인의 먹는 문제는 사실상 카길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기업인 카길은 기업자산의 85%를 창업주인 카길가와 맥밀란가가 소유하고 있는 닫힌 기업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카길의 독주요인은 엄청난 자산을 바탕으로 한 인수 합병으로 1986년에서 1998년까지 총 100여 건의 인수합병을 통해 농산물 기업은 물론 생명공학, 철강, 무역, 심지어 금융회사까지도 장악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로 인한 이득을 보고 있으며, 철저히 미국 정부와 대외 경제 정책을 공조하면서 성장해 왔다.

2003년 2월, 미국 부시 대통령은 카길 최고경영자 워렌 스탤리를 대통령 직속 수출자문위원회(PEC) 위원으로 임명했다. 워렌 스탤리는 “위원회 구성원으로서 미국 식품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며, 미국 상품을 위해 해외 시장을 개방하는데 기여하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카길의 영향력과 위상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인도의 환경사상가인 반다나 시바는 “WTO 농업 협상은 ‘카길 협상’으로 고쳐 불러야 마땅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때 카길의 당시 부회장 댄 암스투츠가 미국을 대표해 협상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반다나 시바는 “남반구 시장을 개방하고 ‘농민 농업’을 ‘기업 농업’으로 바꾸는 것이 카길과 농업 협정의 주요 목표다”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암스투츠는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직후 부시 대통령에 의해 농업재건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공정 무역’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옥스팜의 캐빈 왓킨스 정책국장은 당시 “댄 암스투츠에게 이라크 농업 재건 책임을 맡긴 것은 마치 사담 후세인을 인권위원회 의장에 임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며, 이같은 조처를 비난했다. 그가 보기에, 암스투츠는 이라크 농업재건국장의 지위를 이용해 미국산 곡물을 이라크 시장에 덤핑으로 공급해 이라크를 미국 곡물 회사의 안방으로 만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멕시코 WTO 각료회의 때 모인 세계 농민들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자국 농민들에게 지급하는 1천9백억 달러에 달하는 농업보조금 문제를 집중 성토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의 농업 보조금 인상 정책으로 아르헨티나는 곡물 가격이 폭락해 외환 위기에 ‘혹’을 붙였다. 베트남과 태국 또한 쌀농사에서 큰 손실을 보았다. 2003년 국제시민단체연합 사회감시(Social Watch)가 배포한 ‘빈곤과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이 소 한 마리당 2.2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세계 인구의 절반은 하루 2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간다며 제3세계 빈국에서 태어나는 것보다 유럽의 소로 태어나는 것이 낫다고 빗대었다.

유럽과 미국의 소농의 운명도 다른 나라의 농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에서는 1999년에만 농부 20만 명이 농토를 갈아엎었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에만 농장 23만5천 개가 문을 닫았고, 1996년과 1999년 사이 농가 소득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자살하는 농부가 늘었다. 영국에서는 전체 농장의 20%가 국가 보조금의 80%를, 미국에서도 전체의 10%에 지나지 않은 대농장이 정부 보조금의 66%를 독점했다는 조사 보고도 있다. ‘푸드 퍼스트(Food First)’의 피터 로셋은 바로 이 때문에 “정부의 농업보조금이 고스란히 초국적 기업들에게 이전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반다나 시바는 ‘자살의 씨앗(Seed of Suicide)’라는 책을 통해 인도 농민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1998년부터 인도의 안드라 프라데쉬 지역에서 시작된 농부들의 자살은 2001년까지 모두 2만 명이나 된다.   무역자유화 여파로 프라데쉬의 전통농업은 지난 30년 사이에 가격 경쟁력이 높은 목화로 완전히 재편되었는데, 1997년과 98년 사이에 기상이변과 병충해로 수확량이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병충해를 막기 위해 과도하게 사용한 농약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단일재배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또한 종자회사로부터 높은 가격에 씨앗과 농약을 구입해야 하는 농부들의 부채는 늘어만 갔다. 농부들이 빚을 갚기 위해 신장을 팔고 급기야는 농약을 마시고 자살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카길과 몬산토의 만남 – 레네젠

1998년 1월 카길은 다국적 화학 회사인 몬산토와 손잡고 바이오 농산물 회사 ‘레네젠’을 설립했다. 레네젠은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 조작 곡물과 사료를 개발하고 있다. 유전자변형 농산물이란 생산량 증대 또는 유통-가공 편의를 위해 유전공학기술을 이용, 기존의 증식방법으로 나타날 수 없는 형질이나 유전자를 지니도록 개발된 농산물로 정의할 수 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이 환경단체나 소비자 단체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6년 미국 몬산토사가 개발한 ‘라운드업 레디 콩’과 스위스의 노바티스사가 개발한 병충해에 내성을 갖도록 개발된 ‘Bt Maize 옥수수’가 상품화되면서부터다.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악명 높은’ 몬산토는 세계 50여 개국에 공장을 두고 유전자 조작 곡물 종자의 90%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총수입의 대부분은 농약 판매를 통해 벌어들인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콩은 자사 제초제인 라운드업에 내성을 지니도록 유전공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모든 잡초를 죽일 수 있는 라운드업 제초제를 개발하고, 이어서 그 제초제에 견딜 수 있는 콩 종자를 개발해 몬산토는 두 제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종자가 다음 해에는 싹이 트지 않도록 유전자 조작을 하는 ‘터미네이터 기술’을 통해 농부들이 아예 종자를 재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기술도 있다.(소비자들의 반발로 상용화 포기). 이처럼 유전자조작은 ‘전 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기업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있다. 그래서 인도 농민들은 유전자조작 목화밭에 불을 지르고 몬산토를 인도에서 몰아내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고, 필리핀에서도 농민들이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뽑아내고 몬산토 보이콧 운동을 시작했다. ‘세계를 먹여 살린다’라고 큰 소리 치는 몬산토와 카길에 대해 가난한 농민들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국가 국민들이 이처럼 극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기업이 유전자조작 작물을 온 세계에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몬산토가 의도적으로 전세계 곡물에 유전자 조작 작물을 섞어 오염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환경단체를 통해 제기되고 있다. 멕시코 옥수수에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의도적으로 섞어 수출했고, 인도에서도 면화를 오염시켜 놓았다. 한국에서 대해서도 2001년 1월 카길이 유전자 변형 품종인 사료용 옥수수 ‘스타링크’를 ‘식용’으로 수출했음이 밝혀졌다. 카길은 통관 검사 과정에서 스타링크 옥수수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증명서까지 첨부했다. 또한 강력한 특허권을 주장하고 있다. 농민들은 해마다 종자를 새로 구입해야 하며, 그때마다 특허에 따른 비용을 추가 지불해야 한다. 전 세계 농민의 대부분이 일부회사의 종자와 농약만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유전자 조작식품의 66%를 생산하는 미국(2002년 통계)에서도 몬산토는 테네시의 농부 켐 랄프를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콩 종자를 보관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했고, 랄프는 8개월 실형을 선고 받았다. 몬산토에 라이센트 비용을 내지 않고 라운드업 레디 콩을 재배한 또 다른 농부는 7만8천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몬산토는 농부들에 대해 특허권침해와 기술사용자 협정위반으로 475건 이상의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심지어 각 나라의 식품안정규정을 완화하기 위해 WTO를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GMO 표시제에 대해서도 강력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흉작 들면 매점매석으로 ‘떼돈’

WTO 각료회의 선언문 초안은 관세 인하, 의무 수입 물량 확대, 수출 보조금 폐지, 추곡 수매제와 같은 농업보조금 제도 감축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선언문이 받아들여져 한국 농산물에 ‘시장’과 ‘경쟁’ 논리가 적용되면 한국 농업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중국 동북 3성에서는 쌀 1kg이 2위안, 한국 돈으로 3백 원에 거래된다(국내 쌀값은 1kg당 2천 원이 넘는다). 그것도 농약을 듬뿍 친 쌀이 아니다. 중국 동북 3성에서는 요즘 ‘녹색 입쌀을 생산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쌀농사를 대규모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운동이 한창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규모 농장에서는 경비행기가 씨를 뿌리고 약을 뿌린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농촌 체험을 한 사람은 밭에서 한나절 내내 호박을 따도 한 고랑을 마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밭에서는 지평선이 보인다.

정부는 농업 개방의 당위성에 무게를 실으면서 공산품을 수출해 그 돈으로 농산물을 수입해다 먹는 것이 비교 우위가 있다고 주장한다. 농촌 공동체를 해체하고, 수많은 농민을 도시 빈민으로 만들고, 우리의 밥상을 외국 기업에게 맡기는 것이 과연 안전한가. 곡물 메이저들은 구호 기관이 아니다. 곡물 메이저들은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 농산물 작황을 수시로 파악해, 흉작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해당 곡물을 매점하고 가격을 올리는 작업에 들어간다. 한국은 1980년대 냉해로 인한 쌀 흉작으로 미국 코넬 사로부터 톤당 2백 달러이던 쌀을 5백50 달러에 사들인 경험이 있다. 일본이 1993년 흉작으로 쌀을 수입했을 때 국제 쌀 가격이 71%나 급등했다.

미국과 유럽이 농산물 보조금 제도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식량 안보’에 대한 고려 때문이다. 실제 세계의 식량 수급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중국렝琯돈인도네시아렁?첸틔동유럽 같은 식량을 자급했던 인구 과밀 국가들이 식량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월드워치 연구소 레스터 브라운 소장이 지적했듯이, 1994년부터 식량을 수입하기 시작한 중국이 앞으로 세계 식량 수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게다가 이상 기후가 세계 곡물 시장을 흔들 것이다.

전세계의 저항

반다나 시바는 식량을 몇몇 곡물기업이 좌지우지하고, 유전자조작식품을 퍼뜨리는 식량 전체주의에 맞서 나브다냐 운동을 벌이고 있다. 9개의 씨앗을 의미하는 나브다냐는 인도 고유의 종자를 보호하고 농촌을 지킴으로써 환경을 살리자는 운동이다. 캐나다의 브뤼스터 닌은 95년 ‘드러나지 않은 거인(Invisible Giant)’이라는 저서에서 세계 곡물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카길의 전모를 폭로했으며 이어 자신의 웹사이트(www.ramshorn.bc.ca)를 통해 세계 곡물유통 시스템의 현황과 GMO의 유해성, 유기농법의 우수성을 알려왔다. 가난한 영세 농민이 점차 설 땅을 잃게 되자 중미렉球肩유럽의 농민을 중심으로 농민들은 국경을 넘어 단결하기 시작했고, 1992년 세계 농민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농민의 길)를 결성했다. 현재 비아 캄페시나에는 70여 나라 1백20여 농민 조직이 참여하고 있으며,  WTO 각료회의 저지 활동으로 더욱 더 굳게 단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평범한 농민이던 조제보베는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신축 공사 중인 맥도날드 햄버거 체인점을 파괴한 뒤, 일약 프랑스의 국민영웅으로 떠올랐고, 유전자 변형 농작물 파괴 사건으로 수감된 후 프랑스 최고의 반세계화 운동 지도자로 떠올랐다. 전세계적으로도 농민들이 반세계화 운동의 선봉에 서있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농업의 미래, 독점으로부터 독립

세계 최대의 곡물 메이저 카길은 제계 2위의 종자기업이자 3위의 농화학기업인 몬산토와 손잡고 바이오 농산물 회사 ‘레네젠’을 설립하고, 몬산토와 레네젠 같은 GMO 개발회사는 세계화된 유통과정에 맞춰 무르지 않는 토마토를 개발했다. 패스트푸드점은 값싼 GMO를 애용하고, 값싼 패스트푸드는 오히려 미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비만으로 만들고, 아프리카는 울며 겨자 먹기로 GMO 옥수수를 원조 받아 허기를 면하고 있다. 한국도 종자산업과 사료사업을 모두 다국적기업에 넘겼다. 초국적기업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세계는 점점 GMO 작물들로 오염되어간다.  

전 세계 10대 종자기업, 제약기업, 식품-음료기업, 동물약품기업, 농화학기업 리스트를 살펴보면 노바티스는 식품만 빼고 10위안에 다 올라가 있고, 몬산토, 듀퐁, 바스프, 파이저, 아스트라제네카, 아벤티스, 아벤티스가 적에도 두세 군데에 걸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10대 종자회사는 247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종자시장의 1/3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종자부분에서 이들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높다. 예를 들어 미국채소종자의 40%가 한 회사로부터 공급되고 있으며, 듀퐁사와 몬산토사가 미국 옥수수 종자시장의 73%를 지배하고 있다. 엄청난 독점이다. 결국 세계의 밥상은 단지 몇몇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선택의 자유가 없다.

초국적 자본이 중심이 된 세계화는 ‘카길’과 같은 공룡기업들의 신천지를 만들었고, 그 신천지에 농민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세계화된 지구에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먹고’, ‘목을 축이는’ 문제에 있어 위기에 직면해있다. 그런데 이 위기 원인 제공자는 초대형 공룡 몇 마리와 공룡들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WTO, IMF, 지적재산권과 같은 복잡한 제도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 농촌을 절망으로 빠뜨린 것은 WTO 농업 협상만이 아니었다. 하늘이 점지해준다는 한 해 농사가, 이틀에 한 번꼴로 쏟아 부은 장대비와 저온 현상, 그리고 태풍으로 완전히 망가졌다. 기상 이변으로 식량 위기가 닥칠 경우 세계 굴지의 곡물 메이저들이 한 나라 국민의 생사까지 좌우할 가능성이 점점 현실성을 갖기 시작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이경해 씨의 고향인 전북 장수를 찾아 한국 농업의 현실을 보도하면서 ‘눈물의 들판’이라는 표현을 썼다. 폭풍우 몰아치는 ‘눈물의 들판’에서 희망을 일구는 것도 절망을 일구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우리안의 농업, 얼마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는가. 소중한 생명줄을 제 손으로 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언제까지 농민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 초국적 곡물상이 세상을 지배할수록 소농을 보호해야 하고, 정부는 땅을 일구는 농민의 견해를 바탕으로 하여 정책을 세워야 한다. 한국정부, 땅을 일구는 농민들에 대해 우리 밥상을 지배하는 초국적 곡물기업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유진/녹색연합 생태팀 (2003년 10월 2일)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