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죽음의 향연 – 광우병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다면

2008.05.08 | 미분류

“저 책 제목 안보이도록 뒤집어 놓으면 안 될까?” 책상 위 책을 보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책 표지에선 금방이라도 “음매”하고 울어댈 것 같은 젖소의 눈망울이 사람들의 시선과 부딪힌다. 한눈에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그치, 책 제목이 ‘죽음의 향연’인 건 좀 심했어” 맞장구를 치며 책을 치웠다.

책을 산후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얼마나 험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하루는 책을 들고 다니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펼쳐진 지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불꽃이 피어오르는 정원에서, 죽은 여인의 딸들은 그녀의 손목과 발목의 피부를 벗기고 딱딱한 연골을 썰어 뼈를 떼어 냈다. 여인의 남자 형제의 아내와, 여자 형제의 며느리에게, 검고 쭈굴쭈굴한 손과 발이 건내졌다. 딸들은 여인의 팔과 다리의 피부를 째고 근육을 벗겨 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을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뉴기니 오지에 사는 포레족의 식인 풍습이었다. 성인 남녀가 따로 떨어져 사는 포레 족에게 육식은 남자들만의 특권이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하는 여성과 아이들은 죽은 친척의 시체를 나눠 먹기 시작한 것이다.  

얼른 책의 맨 앞장을 펼쳤다. 책은 뉴기니 포레족 여성과 아이들에게서 발생한 쿠루병의 원인을 쫓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쿠루병에 결린 사람들은 멀쩡하던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비틀거리다 실실 바보 같은 웃음을 짓고 결국 걷지도 못하고 음식도 못 먹게 돼 3개월 내에 죽음에 이른다. 100% 치사율이다. 가이듀섹이라는 미국의 과학자가 쿠루병 연구에 몰입했다. 작가는 이 과학자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 “도대체 원인은 뭐고,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 거지?” 세계 곳곳의 열정적인 과학자들이 ‘쿠루’와 비슷한 병들 사이의 연관성을 분석하면서 흥미진진한 가설 세우기와 실험, 토론을 벌인다.

쿠루병,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양 스크래피, 밍크 전염성밍크 뇌증, 광우병, 이 모든 것이 ‘전염성 해면상 뇌증(TSE)’과 연결된 고리이다. 전염성 해면상 뇌증은 평형감각과 운동을 담당하는 소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죽는 증상을 말한다. 전염병이라고 하기엔 감염 흔적이 없고 유전병이라고 하기엔 발병 빈도가 너무 높다. 고리는 “동종섭취”에 있었다. 쿠루는 식인, 스크래피와 밍크 뇌증, 광우병은 오염된 동물성 사료 섭취,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은 인체성장 호르몬 투여나 조직이식의 결과였다. 밍크 뇌증은 주저앉는 증상을 보인 소의 고기를 밍크 사료로 사용함으로써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축산업자들이 젖소에게서 더 많은 우유를 짜내기 위해서는 단백질을 공급해야 했고, 결국 육골분 사료를 먹인 대가였다. 젖소를 갈아 젖소에게 먹인 셈이다. 축산업자들은 돼지, 닭에게도 단백질 보충을 위해 소의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였다. 이렇게 키운 돼지, 닭을 도축한 후, 다시 그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소에게 먹이게 되면 결과적으로 광우병이 계속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우리 전통의 순환사회는 인간이 먹고 남은 음식물을 돼지가 먹고, 돼지 똥이랑 소똥은 밭으로 환원되었다. 거기서 농작물이 자라고 또 물질이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사회였다. 그런데 인간의 상식 밖의 이기심 때문에 이상한 순환 고리가 만들어지고 그 순환 고리를 통해 독이 퍼지고 있다. 전염성 해면상 뇌증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칼턴 가이듀섹은 이렇게 설명한다. “영국에 있는 돼지들도 육골분 사료를 먹었지만 돼지들에게서 질병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돼지를 7-8년씩 살려두지 않고, 생후 2-3년이면 도살하기 때문이다. 영국에 있는 돼지는 전부 다 감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돼지고기만이 아니다. 돼지가죽지갑도 수술용 봉합사도 문제이다. 수술용 봉합사는 돼지조직을 가지고 만든다. ”

쿠루는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것이지만 동물들에게 생겨난 질병은 인간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 앞에 그 끔찍한 고리를 끊어낼 행동을 주저하고 있다. 경제적 신앙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1990년에 영국의 농무부 장관 존 검머는  ‘영국 쇠고기는 안전하다’면서 자기 딸과 쇠고기 버거를 먹는 쇼를 벌인다. 광우병 소가 인간에게 인간광우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 소로부터 전염된 것이 분명한 15세 여학생 빅토리아 리머의 가족을 찾아가 이렇게 경고한다. “경제를 생각하셔야지요. 유럽 공동시장을 생각해 보세요.” 1990년대 중반, 영국은 인간광우병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고, 검머의 쇼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다.

10여 년 전 영국정부의 어리석음을 한국정부가 되풀이하고 있다. 2006년 9월 11일,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시작했다. 2003년 미국에서의 광우병 발생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된 지 3년 만의 일이다. 지금까지 세차례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나와 전량폐기 처분했지만 미국은 한미FTA 협상을 통해 쇠고기 시장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미FTA도 쇠고기 시장 개방도 전혀 반가운 일이 아닌데, 정부는 안달복달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은 “쇠고기를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 우려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소탐대실’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까다로운 쇠고기 검역기준을 국수주의라고 비판했다. 최근 뼛조각이 붙은 쇠고기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수입위생, 검역 조건 자체를 재협상해야 한다는 미국의 부당한 압력을 수용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심지어 조선, 중앙, 동아 일보는 “미국산 쇠고기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라는 미국육류수출협회의 전면광고를 실었다. 이들은 ‘경제’를 위해서라면 광우병으로 사람이 몇 명 사망하는 것은 감수하겠다는 말이다. 설령 경제적 이득(경제적 이득도 불확실하기 짝이 없다)과 ‘광우병에 대한 위험’을 맞바꾼다 하더라도 그 결정을 정부가 내려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국건수) 편집국장 박상표씨는 경고한다. 광우병 유발물질은 뼈만 아니라 살코기에도 발견되고 있으며, 소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도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30개월 미만의 소라고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농장의 반란”. 오로지 한 덩이의 고기라도 더 얻기 위한 공장식 축산업의 위기가 동물과 인간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비틀어진 고리를 바로잡아야 한다. 거꾸로 돌아가는 순환의 고리를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하고, 그 속에 퍼진 독을 제거해야 한다. 광우병 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이윤’에 눈이 멀어,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치유하지도 못하는 우리 자신이다.

저자는 광우병의 원인이 프리온인지 바이러스인지에 대해 여운을 남긴다. ‘전염성 해면상 뇌증(TSE)’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 확실한 것은 광우병에는 치료약이 없으며, 1997년 이 책이 쓰이고 난 이후 미국, 캐나다,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녹색연합 이유진>
죽음의 향연 = 리처드 로즈 지음. 안정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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