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자력 확대 계획 재검토 해야

2008.06.09 | 미분류

“국민 여러분, 고유가에 많이 힘드시죠? 정부가 심사숙고해 두 가지 대안을 마련했습니다. 첫번째는 현재 35.5%인 원전 발전 비중을 55.9%로 확대하는 겁니다. 두번째는 62.1%로 더 높이는 겁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원자력밖에 대안이 없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9∼12개 더 짓고, 사용후 핵연료 처분 부지도 선정하면 전기를 마음껏 쓰면서 고유가·기후변화 걱정 없습니다. 터 잡고 공사하는 데 한 10년 걸리고, 돈은 25조∼35조원 정도 듭니다.”

4일 정부가 밝힌 2030년 국가에너지기본계획 핵심내용이다. 보통사람들에게 힘겨운 고통인 고유가와 기후변화 위기를 정부는 에너지 공급 중심의 정책을 유지하고 원자력을 확대하는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만든 원전 적정비중 시뮬레이션에는 원자력이 환경과 사회에 미칠 영향과 비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환경비용으로 원자력에 유리하도록 탄소비용만 반영했다.

원자력에너지는 현재 고유가로 고통 받는 수송연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또 발전부문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3.5%밖에 안 돼 발전에 사용되는 석유를 원자력으로 대체하는 효과도 없다.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고유가 대책이지 전력부족 대책이 아니다. 이미 한국의 1인당 전기소비량은 소득수준이 두세 배 이상인 영국·독일·프랑스 국민들의 전기소비량을 추월했다. 값싼 전기요금 정책이 전력수요 증가를 부추기고, 전기를 난방에 사용하는 등 에너지의 비효율적 사용이 더 심각한 문제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라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업계의 로비나 오랜 관행 때문에 손대지 못했던 에너지 정책을 대전환한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에너지 가격구조 왜곡을 개선하지 않고,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에너지 정책의 심각한 비효율과 왜곡을 초래하게 된다. 우리가 원자력에 목매는 사이 다른 나라는 교통·산업·농업·어업 전반에서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을 개선하며,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할 것이다.

게다가 9기 이상의 원전을 새로 건설하겠다는 것은 새로운 원전 부지를 선정한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2003년 정부의 일방적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추진으로 이른바 ‘부안 사태’를 겪었다. 경주에 방폐물 처분장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4개 후보지역에서 심각한 주민갈등과 3천억원의 현금 지원, 3조5천억원의 인프라 지원, 한국수력원자력의 본사 이전 등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했다. 정부가 또다시 일방적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밀어붙이고 추진한다면 이에 대한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저항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원자력의 안전 문제도 여전히 남은 과제다. 지난달 15일에는 영광 5호기에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고, 7일 새벽에는 고리원전 3호기가 정비를 마치고 발전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증기가 새는 사고로 운행이 중단됐다. 원자력발전소에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우리는 원자력산업과 발전을 감시하고 통제할 독립적인 기구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 비전을 세우면서 너무나 손쉬운 선택이자 택해서는 안 될 선택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원자력 확대 계획을 담은 지금의 안을 수정 없이 오는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에 상정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국민을 더 큰 ‘위험’으로 내모는 정책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원자력 확대 중심의 2030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이유진 <녹색연합 에너지 기후변화팀장>

한겨레 신문 6월 9일자 31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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