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과제 도출

2008.07.30 | 미분류

우리나라 직장인의 95%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또 75.7%가 기후변화로 인해 일상생활의 불편을 겪는다고 한다. 환경부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이다. 기후변화는 이미 우리의 삶이다. 이번 여름에는 또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리고, 어느 정도 세기의 태풍이 들이닥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지난해 여름 내내 내린 장마에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은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이번에는 7월초부터 시작된 살인적인 무더위로 농촌에서 밭일을 하던 농부들이 잇달아 땡볕에 탈진해 목숨을 잃었다. 7월 첫 주에만 다섯 명이 숨졌다.  폭염은 땡볕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이다. 이상기후는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정부가 하루빨리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 100년 동안 지구의 온도는 0.74도가 올랐다고 했다. IPCC 4차 보고서에 의하면 지금처럼 우리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삶을 지속할 경우 금세기말 지구의 온도는 6도가 오른다고 한다. 1도가 채 안 되는 0.74도의 변화에 기상재해가 끊이질 않고 북극빙하의 40%가 녹아버렸는데, 6도 상승한 지구의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지구상의 사람들이 화석연료 소비를 허리띠를 졸라매듯 줄이고, 친환경적인 삶을 살게 되면 지구의 온도 상승은 멈추는 것일까? 답은 불행히도 아니다. 이미 우리가 대기권에 배출해 놓은 이산화탄소량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도 지구의 온도는 2도가 상승한다. 앞으로 우리는 2도 상승한 지구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점점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는 한반도에서 적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적응과 동시에 화석연료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 지구는 아니 지구의 수많은 국가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해답을 속 시원히 내놓을 수 있을까? 각 국가의 정치가 “에너지 = 경제성장 동력”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산업계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에너지 화석연료 소비를 혁신적으로 줄이도록 작동할 수 있을까? 자동차에 중독된 선진국의 시민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자동차 대신 다른 교통수단을 선택하도록 바꿀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뭔가 지금 정치적인 결단과 실천을 하지 않으면 파국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2007년 발리 로드맵의 탄생

2007년 12월 3일부터 15일까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13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가 열렸다. 회의에서 가장 큰 쟁점은 교토의정서에 의한 1차 의무감축기간이 끝난 2012년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다. 이른바 포스트 교토체제논의.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명시한 교토체제를 기반으로 할 것인가와 개도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할지 여부가 핵심이었다. 온실가스 의무감축은 결국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 소비 분야의 사용량 제한 또는 전환을 의무적으로 부과하는 것으로 각 나라의 산업과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온실 가스 의무감축 대상 해당여부와 감축량 관련 논의에 각 나라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발리회의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는 못했다. 다만 발리 로드맵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졌던 36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협상 테이블에 모두 참가해 2009년까지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 협약을 마련하기로 했다.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총회까지 논의를 마무리한다는 협상 시한을 설정한 것이다. 굳이 성과라고 한다면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한 미국이 포스트교토체제에 참여한다는 것과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개도국을 참여시키기 위한 협상틀을 마련한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 2년간의 논의를 통해 우리나라도 어떤 식으로도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하는 대상 국가가 될 가능성도 높고, 감축량을 할당받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정부는 포스트교토체제 논의가 EU를 중심으로 한 유엔프로세스 중심세력과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기후변화체제간의 대결구도로 보고 있다. 유엔프로세스는 구속적 감축목표 설정, 의무부담 통한 적극적 감축, 배출권거래 활성화를 강조하는 반면, 온실가스다배출국가 회의를 주도하는 미국은 비구속적 국가목표 설정, 자발적 감축, 청정기술개발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정부는 에너지 다배출국가의 논의구조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인데, 미국을 위시해 이번 기후변화협약 회의에서 지탄의 대상이었던 일본, 캐나다와 공조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교토체제 논의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으면서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온실가스배출량 6위, 배출량 증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에너지부문 CO2 배출량은 448백만CO2톤으로 세계 10위이며, 누적 배출량으로도 세계 23위로 개도국이 이야기하는 역사적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우리와 지구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있어, 향후 2년 너무나 중요하다. 앞으로의 논의에서 한국이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계속해서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국제적인 협상을 진행해나감과 동시에 국내 대응 준비체제를 철저하게 마련해야 한다.

산업계,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 직접 영향 받아

현 정부는 지난해 12월 마련한 노무현 정부의 기후변화 제4차 종합대책을 기반으로 기후변화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G8정상회담에서 한국이 기후변화대응에 있어 “얼리 무버(Early Mover)”가 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아직 온실가스 국가감축 목표조차 설정하지 못했다. 감축목표가 있어야 각 분야별로 얼마나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실행에 들어갈 수가 있다. 우리는 지금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중요한 달리기를 준비하면서 신발끈도 매지 않은 채 뛰려고 한다. 기후변화대응 준비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준비를 미루다가 당장 감축해야하는 체제로 돌입할 경우 결국 급작스러운 환경변화에 대응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2005년 우리나라의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5억9천1백만 톤이고, 그 중에서 에너지·산업공정부문이 95.3% 를 차지한다.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와 감축은 에너지부문과 산업계에 바로 영향을 미치고, 그 파급력은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에 미치게 된다.
문제는 이미 우리가 그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EU가 신규등록차량의 킬로미터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키로 결정했기 때문에 자동차 업계는 당장 영향을 받는다. 현재 자동차 수출은 전체 EU 수출액의 21%를 차지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EU집행위와 평균 CO2 배출량을 2009년까지 140g/km 이하로 감축하는 자발적 협약 체결한바 있다. EU의 자동차 CO2 배출량 규제는 앞으로 점점 더 강화될 것이므로 자동차공업협회는 2008년 2020년과 2050년까지의 중장기 감축계획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EU의 규제 강화에 따라 산업자원부도 기후변화에 대응해 자동차 연비기준을 강화한다는 발표를 했다.
자동차 CO2 배출량 규제처럼 앞으로 산업계 전반이 기후변화 대응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석탄, 정유, 발전, 화확산업, 시멘트, 자동차 관련  산업과 노동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글로벌 기후변화와 기업비즈니스)를 통해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 중 금융ㆍ상사ㆍIT산업은 기후변화의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자동차ㆍ화학ㆍ철강ㆍ전력 산업은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 국내 기업들은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관련 대응이 늦어 평판ㆍ신사업ㆍ경쟁 측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기후변화가 노동계와 고용에 미칠 영향, 연구된 바 없어

우리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준비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미흡하며, 특히 국제적인 기후변화 정책과 규제가 노동계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연구된바가 없다. 기업 경영차원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해 위험과 기회요인을 분석하면서 발 빠르게 대응을 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나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개발경영연구원은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기후변화와 기업경영에 대한 연구와 토론회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한 미약하나마 업종별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담은 ‘환경보호를 위한 산업계 자율행동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반면 정부도 관련 국책연구소도 기업연구소도 기후변화가 고용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연구를 하지 않고 있다. 에너지와 발전부문에 있어서도 환경적 측면에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나, 에너지정책의 전환과정이나 산업구조개편과정에서 발생할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미처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기후변화라는 현실과 국제사회의 압박 속에서 정부가 정책의 방향을 설정할 수밖에 없고, 정부 정책이 결국 에너지 전환이나 규제로 실현이 되면 기업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수많은 산업이 시대의 변화나 정부의 정책 변화로 발전하거나 쇄락, 도태되어 왔다. 지금까지 그러한 전환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많은 희생을 강요해왔다. 최근 정부가 발전자회사를 포함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를 포기한다고 밝히긴 했지만 앞으로 2년 안에 우리나라가 포스트교토체제에서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할당받게 된다면, 발전 산업 구조조정의 파고는 더욱 세차게 노동자들을 압박하게 될 것이다.

노동계의 선택 – 끌려갈 것인가 주도할 것인가

발전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는 필연적으로 발전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성을 헤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선행 연구가 전무한 까닭에 산업구조 개편에 따른 노동자들의 고용 전망에 관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없지만, 정부 계획대로 에너지원별 비중이 조정된다면 에너지 총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더욱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발전분야 노동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이처럼 밝지가 않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가? 이 흐름에 그대로 끌려갈 것인가 아니면 이 논의를 주도할 것인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먼저 발전 에너지원의 미래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97%이상을 공급하는 원자력과 화석연료는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다. 석유는 5년 안에 생산량이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고, 원자력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50년 정도 계속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전력발전 분야에서 주요 원료가 되는 유연탄 가격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대한광업진흥공사에 따르면 2008년 들어 가장 높은 가격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유연탄으로 1월 21일 90.50달러(톤당)로, 지난해 4월 56.10달러보다 34.40달러 올랐다. 아시아지역의 경제성장으로 유연탄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중국 변수도 만만치 않다. 수요는 증가하고 공급을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호주 생산업체들과 일본 발전업체들 간의 협상 가격이 상향 조정됐고, 이것은 우리 발전 산업에도 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어서 유연탄을 주원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회사들은 경영난이 악화될 것이며, 증권가에서도 국내 발전회사 상당수가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계도 지금과 같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에너지원에서 보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길어야 수십 년간 유지될 현재의 에너지원 체계를 고수하면서 조금이라도 그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을 양산하게 된다. 석유가 부족하고,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가격이 크게 올라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그런 혼란을 미리 막기 위해서도 에너지부문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계도 그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산업의 이익=노동자의 이익”이라는 도식에서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수급체계의 확립은 노동계에서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도 달성해야 하는 과제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노조가 나서서 정부에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체제 수립을 요구했고, 그 대책에 노동부문과 고용에 대한 부문을 고려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캐나다 통신․에너지․제지노동조합(CEP)은 캐나다 정부에 교토 의정서를 비준하고 실행에 옮길 것과 CEP와 에너지노조, 캐나다노총을 포함한 ‘국가기후변화협의회(Council)’를 구성해, 향후 2012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사회적 논의(합의)과정을 마련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노조의 주장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더욱 확산되고 있다. 노동계가 임금협상만이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경영 참가를 주장하면 여론은 우호적으로 반응한다. 노동계도 녹색정치를 펼쳐야 한다. 국가의 원자력확대를 통한 원자력 의존정책, 대규모 화력발전단지 건설정책에 대해 비판하거나, 효율이 높은 도시형 열병합 발전이나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의 확대를 요구할 수도 있다.

노동계, 기후변화대응위원회 신설하자

기후변화와 관련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준비가 안 된 중소기업들은 선진국의 준비된 기업들과 하루아침에 경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산업과 일자리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동계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우선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고용안전, 임금, 근무조건, 사유화와 같은 노동과 관련한 직접적인 사안을 제외하고는 우리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표명하는데 인색했다. 그것은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걸어온 힘겨운 역사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노동조합들이 자율적 활동을 통하여 ‘압력을 가하는 단체’가 아니라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단체’로서의 지위ㆍ역할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된 시대에는 변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기후변화에 대해 오히려 정부와 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발전노조가 정부의 사유화 정책에 맞선 구호는 “에너지의 공공성 강화”였다. 그러나 발전 노동자들의 공공성 강화 요구에도 시민들은 이러한 주장을 노동조합의 사적이익 추구를 위한 명분이라고 생각하는 흐름도 있다. 이것은 에너지 공공성 강화의 진정한 의미가 시민들의 에너지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환경성, 민주성, 지속가능성 영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과 사회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에서도 “에너지의 공공성”에 대해 보다 폭넓게 해석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이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다.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한국노총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자료를 검색한 결과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노동계의 기후변화관련 대책 자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노동계가 기후변화라는 이슈를 거부하거나 대응의 필요성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가 없다. 기후변화로 인해 국제사회의 정책이 바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경제와 산업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는 하루빨리 정부의 기후변화대응 정책이 각 산업과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껏 노동계가 기후변화 이슈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거나 대응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의 준비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지금부터 기본적인 기후변화체제에 대한 공부를 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1) 노동조합 간부, 노조원들에 대한 “기후변화”에 대한 교육
노동계에서 가장 시급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 바로 노조원들에 대한 기후변화 교육이다. 지금의 기후변화체제에 대한 이해 없이 위기감이나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실행해야 한다. 또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강사와 교재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후변화에 대한 일반적인 교육도 중요하지만 각 산업별 특성상 기후변화에 대해 알아야 할 정보의 내용과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전 산업 노동자들이 알아야 할 기후변화 가이드 북”과 같이 분야별로 전문화한 교육 자료집을 만들어야 한다. 해당 노동조합 간부 중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강의를 할 수 있는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강의는 외부 전문가에 의존하더라도 특정 산업에 기반을 둔 기후변화에 대한 해석은 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2) “노동과 기후변화”에 관한 노동조합 회의 개최 또는 “기후변화대응위원회”신설
노동조합이 주최가 되어 “노동과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진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회의가 될 것이다. 환경진영이 함께 준비하면 좋을 것이다. 해마다 열리는 <한국사회포럼>을 활용할 수도 있다. 노동계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대응위원회”를 만들 수도 있다. 아니면 현재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도 있다. 2005년 6월 에너지관련 공공부문 노동조합과 환경운동이 주축이 되어 ‘노동과 환경의 연대로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 전환을!’을 표방한 <에너지 노동·사회 네트워크>가 출범했다. 지난 시기 활동들을 평가하면서 이 체제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까지 포함한 체제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3) 정부와 기업의 기후변화대응정책 수립에 노동계 참여 요구
정부의 기후변화대응정책은 산업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정책들이 노동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노동계는 적극적으로 정부의 기후변화대응정책 수립에 참여를 요구해야 하며, 그 근거로 “정의로운 전환”을 주장할 수 있다. 노동계가 기후변화대책 수립에 적극 동참한다는 의사를 밝히면 이것을 새로운 접근일 뿐만 아니라 정부와 기업도 이를 거부 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노동자의 기업경영 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노동진영 환경과 만나자

우리나라 환경진영과 노동진영이 긴밀한 연대 활동을 펼치는 단계에 있지는 않다.  2001년 발전부문 민영화를 두고 두 진영은 충돌하기도 했다. 환경운동으로서는 전력산업이란 국가소유 독점기업을 사유화하는 것이 에너지원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을 했고, 노동운동은 이를 비판했다. 두 진영의 갈등은 결국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익확보와 더불어 시민전체, 인류전체의 보편적인 환경이라는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 또한 환경운동은 신자유주의적인 시장방식의 접근이 바로 지속가능한 에너지 수급 체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환경운동이 환경 보전만을 최우선 가치로 설정하고 다른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도 또한 노동자의 권리만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경제활동에 있어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를 불가피한 것으로만 간주한다면 이 역시 지속가능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두 진영은 협력해야 한다. 기후변화라는 공동의 과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기후변화 문제를 ‘환경’과 ‘노동’의 관점으로 통합적으로 해석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기후변화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주요한 의제로 다뤄야 한다. 노동진영은 기후변화로 인한 에너지전환(원자력, 화석에너지시스템에서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이 불가피함을 이해하고, 환경진영은 그러한 전환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불안감으로 인해 기후변화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을 서로 이해하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현존하는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를 보다 광범위한 조직으로 발전시켜 환경과 노동진영의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너무 앞서나간 주장이라면 우선 노동진영과 환경진영이 함께 만나 기후변화를 주제로 토론회나 간담회를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형 “정의로운 전환” 모색을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만나 준비해야 할 것이 바로 한국형 “정의로운 전환”의 모색이다. 캐나다노동조합연맹(CLC: canadian labour congress)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한 결과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산업과 경제 정책이 변할 것이고 그러한 전환의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영향을 받는 공동체와 산업이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전환의 과정에서 노동자 및 공동체의 혜택과 노동기간의 손실 없이 고용이 유지되는 것이 목적이다. 이것이 불가능할 때는 정당한 보상,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위한 재교육, 새로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의 고용전환이 있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교육 워크샵, 공동 펀드, 지역 파트너쉽 형성, 정책 개발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제공될 수 있다.
캐나다노동조합연맹은 왜 ‘지속가능한 전환’이라는 표현 대신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그것은 지속가능성에서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정의’ 측면을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환경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하지만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피해를 입게 되는 소수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환의 비용이 일방적으로 노동자와 지역 공동체에 전가되지 않고 공정하게 사회전체가 함께 책임진다는 것을 표방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도 (에너지산업) 노동자와 관련 이해당사들(지역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한국형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정의로운 전환 펀드 조성, 전통적인 에너지산업을 포함한 재생가능에너지산업 전환을 위한 노동자 조직화, 국제협력, 교육 프로그램 개발(재교육, 새로운 일자리로의 전환을 위한 교육) 등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나 기업이 기후변화대책을 마련하는데 있어 노동운동도 환경운동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기후변화대책 수립에 실제로 노조가 참여한 사례는 스페인, 노르웨이, 미국이 있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한국형 ‘정의로운 전환’에서도 에너지 전환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독일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 설비를 짓고 계획하고 운영하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독일에서 재생가능에너지 부문 노동자는 풍력산업 46,000명을 포함 총 13만 명에 달하며, 이는 석탄채굴이나 원자력발전소의 종사자 수보다 많아진지 오래이다. 노동조합이 과거의 산업에서 새로운 산업으로 고용을 전환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 독일의 사례처럼, 석탄 채굴, 화석연료 및 원자력 에너지를 생산하고 운영하는 산업으로부터 재생가능에너지로 이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존의 에너지 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보전하는 부분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기후변화협약은 결국 우리 사회가 저탄소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화석에너지를 적게 쓰고, 산업분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와 노동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꼼꼼하게 검토해서 대응해야 한다. 노동계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환경 변화에 따른 고용안정이 최고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제 기후변화에 따른 고용부분의 변화는 중요한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기후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발전분야)과 대안」,「재생가능에너지 산업과 에너지 부문 일자리 전환의 가능성」, 「한국형 ‘정의로운 전환’의 모색 」,「환경과 고용을 고려한 에너지산업구조 개편 방안」, 「발전산업의 녹색화」에 대한 정책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기후변화협상의 진행상황, 정부의 저탄소 사회 전환계획, 지속가능한 에너지체제 구축과 같은 지향에 따라 에너지와 발전 부문이 어떻게 대책을 세우고, 노동자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미리 검토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이유진(녹색연합 에너지 기후변화팀장)

“월간 노동사회” 8월호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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