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기후변화 대응 방안

2008.09.16 | 미분류

<에너지 절약과 효율 향상이 바로 ‘에너지 생산’이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선진국들에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여함으로써 기후변화협약의 돌파구를 열었다. ‘교토의정서’라는 이름만으로도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외면할 수 없는 일본은 지금 어떤 실천을 하고 있을까? 일본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놀랍도록 세밀하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과 산업, 시민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3단계 해법인 에너지 절약, 효율향상,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일본 정부는 1~2차 오일쇼크 이후 일본사회 전체를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전환해왔다. 엔화의 가치가 높기도 하지만 실질 GDP 1,000달러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최저수준이다. 비싼 전기요금은 개인과 기업의 에너지 소비 감소를 유도하고 있고, 정부가 에너지다소비 5,000여 개 기업의 에너지 절약을 직접 관리한다.

정부 –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최대 80% 감축”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지난 7월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 선진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지구온난화 문제를 주요 의제로 부각시켰다. G8 정상회의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반면 일본은 홀로 빛났다. 2050년까지 현재 대비 최대 80%까지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후쿠다 비전’을 천명한 것이다. 회담이 끝난 7월 29일, 일본정부는 ‘저탄소사회만들기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배출권거래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내년에는 지구환경세 시범사업과 중기 배출삭감 목표를 설정한다.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원 비율을 50%이상으로 달성할 계획이다. 태양광발전 도입량을 2010년 10배,  2030년 40배로 확대하며, 개도국 지원을 위해 5년간 총 1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는 ‘Cool Earth Partnership’도 추진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세부계획으로 기술개발 투자, 환경친화적 세제개편을 기반으로 한 저탄소 시스템 구축,  농·어촌과 도시, 학교별 저탄소 프로젝트 추진 등을 진행한다.
온실가스 최대 80% 감축 목표가 단순 선언 이상의 목표를 가지는 것은 일본이 환경성 주도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탈온난화 2050프로젝트」를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독일 국립환경 연구소, 교토 대학교, 리츠메이칸 대학, (주)미츠비시 종합연구소 등이 참여해 10.3억 엔의 예산으로 「2050일본저탄소 사회」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시나리오는  2050년까지 CO2 배출량을 1990년에 대비하여 70%를 삭감하고, 저탄소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를 위한 12가지의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후쿠다 비전’이 오랜 준비와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후쿠다 총리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는 대형 보잉기 대신, 소형 수송기를 타고 참석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일관되게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고유가 상황을 맞아 일본 정부는 창문․유리․창틀에 단열 성능 수치 표시를 의무화하고, 항공자위대 전투기의 비행 속도와 이착륙 훈련 횟수를 줄였다.

시민 – “에너지 절약의 달인들”  
정부의 정책비전은 ‘절약’ 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 시민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에는 절전소가 있다. ‘절전’과 ‘발전소’를 합한 신조어이다. 내가 1kWh를 안 쓰면 누군가 대신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생산해낸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은 기존 소비자가 사용하지 않은 절약분을 통해 다른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생산 방법보다도 효율적이다. 그렇게 아낀 전기요금을 모아 시민출자로 태양광발전소 건설에 투자한다. 나가노현 이이다시에서는 주민 중심으로 태양에너지로의 전환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세운 태양광 시민발전소만 38개이다. 총 시민 출자금액은 약 2억4천만 엔에 달한다. 발전소를 만들게 되면 출자자의 이름을 발전소에 새기고 이익금을 배분받게 된다. 조부모가 손자의 이름으로 출자하거나 친구들이 결혼 축의금 대신 출자금 증서를 선물하는 경우도 있다. 이이타시의 한 유치원에서는 졸업하는 원생들이 기념으로 태양광 전지를 사서 기부하기도 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생활화한 것이다.
일본은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평균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6%감축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팀 마이너스 6%’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시민 개개인이 하나의 ‘팀’처럼 온실가스를 줄여, 1990년 대비 6% 감축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팀 마이너스 6%’ 캠페인에는 현재 220만 명의 개인과 2만여 개의 단체가 참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111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한사람(1)이 하루(1)에 이산화탄소 1kg(1)을 줄이자는 운동이다. 쉽고 재미있게 만든 홈페이지를 통해 38가지 실천방법을 제시하고, 참여자가 마음에 드는 항목을 골라  ‘도전 선언카드’를 출력하고 실천에 나선다. 냉방을 줄이는 ‘도전’을 한다면, 참여자가 하루 한 시간 냉방을 줄이면 26g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CO₂를 돈으로 상쇄하는 카본오프셋 프로그램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은 6만 명, 기업은 70개이다. 자신들이 배출한 CO₂만큼의 비용을 자발적으로 개도국의 친환경 사업에 투자하는 방식인데, 회원들은 돈으로 상쇄해 얻은 CO₂배출권(크레디트)을 일본 정부에 전달하고 있다.

기업/산업계 – “효율향상이 답이다”
산업계도 에너지절약이나 온실가스 감축을 기업 활동의 장애요소로만 여기진 않는다. 유럽에서도 적극도입하고 있는 “탑 러너”방식도 일본에서 시작된 제도이다. 에너지 효율이 최고인 제품을 업계 표준으로 지정해,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최고 수준의 효율을 달성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이다. 연료겸용 자동차 생산의 선두주자인 토요타는 단연 돋보인다. 고유가로 인해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토요타자동차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가스-전기 하이브리드 차량을 최초로 상용화해 매년 40만대 이상을 팔고 있다. 일본의 우편사업회사는 전국에 보유중인 2만여 대의 자동차를 모두 전기자동차로 바꾸기로 했다. 100% 풍력발전으로 수건을 생산하는 한 회사는 “바람이 만든 수건”이라는 상표를 만들어 일본 전역에 공급하고 있다.  

지자체 – “에너지 절약 혹은 재생가능에너지”
도쿄도는 2020년까지 총 에너지의 20%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바꾸고, 2000년을 기준으로 이산화탄소(CO2) 발생량을 25% 감축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도내 대규모 에너지 소비자1300여 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철저한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각 대상 사업장에 ‘5년 단위 이산화탄소 삭감계획’을 제출하고 매년 이행실적을 보고하도록 했다. 도쿄도는 기업이 제출한 계획서와 보고서에 대해 5단계 평가를 내리고, 그 결과를 도 홈페이지에서 공표한다. 도쿄도가 이렇게 각 건물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하면서, 규제 전에 비해 전력 사용량이 오히려 10% 줄어들었다. 쿄토시는 폐식용유를 수거해 바이오디젤을 생산해서 관내에서 운행하는 청소차량의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농업과 어업을 기반으로 둔 지자체들은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바이오매스 타운’을 조성하고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에너지절약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에 비해 6.2% 상승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일본도 불가능한데 한국이 가능하겠는가라는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비전을 세우고, 산업, 지자체, 시민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일본도 달성하기 힘들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일본도 힘들 정도이니 에너지 절약이나 온실가스 감축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더 열심히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국제학술지인 <에너지정책 Energy Policy> 2008년 3월호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석유 취약성지수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인 일본이 취약성이 다소 낮은 국가(18위)로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GDP대비 석유수입량 비율, 전체에너지공급량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을 줄여나가고 있다.  석유 의존도를 줄여 1973년 오일쇼크 때에 비해 경제규모가 두 배로 늘었으나, 석유 수입은 오히려 16% 줄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에너지를 3배나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에너지위기와 기후변화 대응, 우리와 일본의 준비정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이유진 / 녹색연합 에너지 기후변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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