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밀렵방지캠페인] 야생의 눈으로 바라보기

2008.02.28 | 미분류, 야생동물

<2008 녹색연합 밀렵방지 캠페인 참가 후기>

지난 2월 23~24일 이틀 동안 녹색연합은 약 40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경기 가평, 강원 춘천지역에서 밀렵방지 캠페인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서울에서 출발한 우리들은 숙소로 잡은 ‘집다리골 자연휴양림’에  세상의 어둠으로 저 멀리 별들까지 보이는 시간에 도착했다.

시민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자발적으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녹색연합의 소모임인 녹색친구들과 베지투스 회원들의 참석으로 밀렵방지 캠페인에 처음 참석한 시민들에게 녹색연합 소모임을 알렸다.

밀렵방지 캠페인의 첫 시작은 설악녹색연합 대표이신 박그림선생님의 “야생동물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박그림선생님은 우리에게 여우, 늑대, 시라소니, 표범, 호랑이등의 사진을 보여주시며 물으셨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흐르는 침묵이 깨고, 선생님은 말을 이어가셨다.
“이들은 이제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져간 야생동물들입니다.”
이미 야생동물들은 인간들의 간섭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멀리 몸을 감추어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야생동물들이 밀렵으로 인해 많이 죽어가고 있으며, 심지어 멸종위기종인 산양도 밀렵꾼들이 설치해 놓은 올무에 걸려 일 년도 체 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야생동물 서식지에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우리나라 실정과는 다르게 철저히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인간들로부터 분리하고 있는 러시아의 현장도 우리는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참으로 우리와 야생서식지와는 사뭇 다른 그곳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야생동물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모두 이민가고 싶어 할 것 같다.

선생님의 강의가 끝나고, 녹색친구들 회장이신 성기철회원님으로 부터 밀렵도구들을 소개받았다. 요즘 밀렵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도구는 “올무”로 야생동물이 많이 이용하는 곳에 설치한다. 그 설치된 올무에 동물이 걸리게 되면,  동물이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조여들어 한번 올무에 걸린 야생동물들은 생명을 잃는다.

밀렵을 통해 포획한 야생동물들은 주로 보신으로 수요자들에게 공급되어지고 있는데, 현재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가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불법거래를 해서까지 보신하면, 정말 건강해질 수 있을까?

다음날 새벽, 우리는 100배를 하며 아침을 열었다.



40여명의 회원들은 6모둠으로 나뉘어 경기 가평군 북면, 강원 춘천시 서면 그리고 강원 춘천시 사북면으로 올무제거를 위해 떠났다. 각 모둠은 “올무를 하나도 없어 올무수거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하는 바람을 갖고 현장으로 갔다.

내가 갔던 현장에서는 밤, 잣 등의 나무 주변 등의 초식동물들의 흔적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꼼꼼히 올무를 찾아보았다. 다행이 올해는 총 6모둠 중 한 모둠에서 토끼올무를 수거하였다. 모두 13지역에 20개의 올무를 수거하였다.

많은 양의 올무는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설치되어져 있는 올무들을 보면서, 밀렵방제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이 밀렵현장을 보고, 우리들의 잘못된 문화들을 반성하길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은 밀렵이라는 것이 없어서 밀렵방지 캠페인도 없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끔식 야생동물과 사람이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꿈꾼다.

■ 글 : 녹색연합 정책팀 김희정


두 명의 구도자가 위대한 성인을 찾아가 입문받기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성인께서는 두 마리의 메추라기를 두 사람에게 각각 한 마리씩 내어주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누구도 너를 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죽이고 돌아오너라.”
여러분이 이들 입문자라면 어떻게 하실 건지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녹색연합의 야생동물 밀렵방지 캠페인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새 다가온 봄이 흰 눈 사이로 내민 파릇한 나무와 풀들의 새싹에서 드러나 보였습니다. 하지만 먹이가 부족한 겨울을 지냈을 야생동물들에게는 아직도 한참이나 더 남아 있을 듯 해 보이는 차가운 날씨였습니다.

첫 날 저녁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선생님이 설악산 속의 야생동물 사진들을 보여주시면서 하신 말씀, “작은 불편 하나도 참지 않으려 하는 우리 인간의 이기적 욕망들이 우리 산과 들을 망치는 것은 둘째 치고 같은 생명의 맥박이 뛰고 있는 야생동물들의 삶터까지 하나씩 갉아먹고 결국 그들을 다 몰아내 절멸로 몰아가고 있지 않나?”하신 말씀이 가슴에 절절히 와 닿았습니다.

매일 1만명 가까운 사람이 오르는 설악산 등산길에 편하자고 커다란 다리들을 놓은 것은 둘째 치고 그들이 주로 한다는 불평 이야기에는 기가 막혔습니다. 가로등이 왜 없냐는 불만에다 휴대폰이 왜 안 터지냐를 가장 불평한다니! 설악산 곳곳에 산길 가로등(?)을 세우고, 정상에 흉물스런 철탑을 세워 “아, 나 지금 설악산 오르고 있어!”이렇게 떠들고 싶은 모양입니다.

언젠가 재와 먼지로 사라질 육신을 안고 있으면서 아름다움이 헛된 말이나 사진에 담길 것이라 여기는지 우리는 늘 감탄해 떠들고 모여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정작 어딘가에 담기는 순간 사라지는 그 아름다움의 진정한 본질은 잊는 듯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없다면 아무리 멋진 절경이 있은들 무슨 소용일까요. 참 아름다움은 가슴에 새겨지고 물드는 것이며 때로 사람을 정화시키며 어떤 이에게는 구원이 되기도 한다는 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한낱 물질적 수단에 가두어 갖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듯 합니다.

오랜 옛날 산에 들 때면 “산신령님, 이제 산에 듭니다. 조용한 산이 시끄럽게 되었으니 부디 너그럽게 용서하십시오.”이렇게 빌던 우리 민족의 생태적이고 겸손한 마음은 다 어디로 갔는지요? 내 발 밑에 산의 벌레들이 밟히는 그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그나마 남은 야생동물들마저 다 사라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는 사람만이 드나드는 공동묘지 같은 산에 오르게 될 우리 후손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주위에 있는 풀 한포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볼 줄 안다면 굳이 먼 산을 찾아 가지 않아도 우리가 이 우주의 인드라망 속의 하나의 작은 모래알임을 알 텐데 말이지요.

산을 오르며 박그림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산에 있는 쇠붙이 올무들을 저절로 감지하는 그런 기계가 있어서 샅샅이 다 찾아내 밀렵꾼들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박 선생님 말씀이 “한 도둑을 열 사람이 못 막는다.”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예상한 올무와 덫을 발견하지는 않아 다행인 듯도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작은 토끼들을 노리는 20개의 토끼용 덫을 아이들이 발견해낸 것을 보며 가슴 아팠습니다. 우리 어릴 절 달에 사는 옥토끼 금토끼 이야기를 해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목을 조르고 다리를 잘라먹을 덫을 놓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가슴을 가졌을까요? 아직도 이 땅의 산 속 어딘가에 숨어 무구한 고라니, 삵, 오소리, 노루, 너구리, 족제비, 사슴, 토끼들과 산양들을 노리고 있을 그 날카롭고 차가운 쇠붙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이제 멸종위기가 되어 거의 사라져 간다는 ‘산양’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부처님 전생을 다룬 <본생담>에 보면 부처님께서도 “나는 어느 생에는 한 마리의 토끼로 태어나 가난한 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그의 병든 부모에게 먹이가 되었던 일을 기억하노라”(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불명확할 수도 있겠네요…)는 등의 기록이 있지만 그야말로 그것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의 밀렵꾼들에게는 오직 돈, 찢어지는 가난보다는 어느 부유한 사람들의 한 모금 정력제나 한줌의 미식가들을 위한 고기, 냄새나는 모피옷을 입고 뽐낼 어떤 눈먼 이들의 한철 가죽옷일 터이지요. 그러나 아직도 그런 일에 아무 거리낌 없이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신의 법열인 사람의 수치가 아닐는지요…….

무엇보다 올무와 덫에 걸려 제 발을 자르고 도망가거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생명들의 탄원을 신이 들으실 리 없으리라 생각하는 그 어리석음은 두렵기조차 합니다. 삶이라는 이 영혼의 학교에서 밀렵꾼은 바로 자신의 영혼에 올무를 건 것이고, 덫을 조이면 조일수록 구원과는 멀어지는 그런 삶을 살게 되겠지요…….아름다운 이 지구별에 떨어져 많은 생명들을 살리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고통으로 울부짖다 죽게 만드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한 사람은 곧 바로 나무 뒤로 가서 메추라기를 죽이고 돌아왔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평야로 가서 생각합니다. ‘스승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 새를 죽이라 하셨는데 벌써 새가 나를 보고, 내가 새를 보고, 하늘에서 신이 내려다보고 계신다. 그러니 벌써 셋이 아닌가. 안되는 일이다.’ 결국 그는 메추라기를 죽이지 못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고합니다. “스승님, 신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기에 저 혼자인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이에 스승은 말씀하시지요. “너야말로 입문 받을 자격이 있다. 네가 내 말을 바로 이해했구나.” 그리하여 한 사람은 스승의 말을 자기 욕심대로만 생각하여 멸망의 길을 갔고, 한 사람은 잘 생각하여 구원의 길을 갔습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생각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함을 이르는 이야기일 테지요.

아침 6시에 다 같이 했던 생명평화를 위한 100배는 참 엄숙한 분위기로 마음을 다잡아 주어 좋았습니다. 그렇게 준비운동도 하며 다짐도 되새기는 시간으로 죄 없이 죽어간 동물들의 원혼이 모두 달래어질 수는 없겠지만, 참 가슴 울리는 다짐의 시간이었습니다. 산을 오를 때는 푸릇푸릇 올라오는 파란 싹들을 보며 생명의 숨결이 결코 끊이지 않는 신의 호흡을 느꼈습니다. 계절은 가고 올지라도 생명의 숨결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인데 모두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빌며 빛의 진언을 되새겨 봅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라즈라바 프라바튿 타야..훔..”
(창조주 신이시여, 이 영혼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본래 왔었던 빛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도우소서…)

■ 글 : 이인(녹색연합 회원, 문화비평가, 네이버 ‘신나고 즐겁게 채식하기’카페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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