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질 듯 끊어지고, 나아갈 듯 멈춰 선 서울성곽의 흔적

2008.12.24 | 미분류

이어질 듯 끊어지고, 나아갈 듯 멈춰 선 서울성곽의 흔적

서울성곽 순례길, 그 두 번째 순례.

북악산에 이어 남산을 찾았습니다.

남산 구간은 북악산과는 달리 성곽이 군데군데 끊겨있어 성곽을 따라 걷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도로, 건물, 공원 등 도시화의 물결 속에 제 모습을 잃어버린 서울성곽.

그 흔적을 따라 걸으며 나눴던 생각들, 아쉬움들을 함께 나눕니다.

서른이 가깝도록 서울을 떠나보지 못한 서울 변두리 출신의 서울 토박이가 서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쥐뿔도 없었다.

다닥다닥 먹고 살기 빠듯한 변두리 촌이나, 산업역군들의 빌딩숲인 중구일대나, 벼락부자들의 아파트군락으로 거듭난 다리 건너 강 이남이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복잡함과 난개발의 상징일 뿐이었다. 그렇게 ‘창피한’ 내 나라의 중심을 마침내 오랫동안 아주 멀리 떠나 소위 내노라 하는 명소와 명물들로 가득하다는 도시들을 떠돌면서 가장 사무치게 그리웠던 것이 그 어느 복잡함의 한 가운데에서도 늘 시야에 잡혔던 산, 바로 서울의 산들이었다. 처음으로 서울이 온통 산으로 에워싸인 도시라는 사실, 그 산의 정기로 내가 있음을 그 산을 떠남으로 알게 되었다. 사방이 겹으로 산인 그 존재양식 자체로 하나의 거대명소인 서울, 그 산들을 따라 성곽이 있다는 사실조차 이 대책없는 서울 토박이는 녹색연합 성북동 집을 찾아오며 처음 알게 되었다. 내 뿌리에 대한 이 무식함이 절망스러워, 마주 하지 않고는 밟지 않고는 못 살겠음을 마침내 알게 해준 저 산들에 대한 망극지은(罔極之恩)으로 이른 아침 여섯 살 난 딸애를 채근해 순례길에 따라나섰다.

숭례문에서 출발하여 목멱산을 죽 돌아 나올 때까지 이어질 듯 끊어지고. 나아갈 듯 멈춰 선 성곽의 흔적을 만지고 더듬고 상상으로 연결하며 참으로 오랜만에 긴 길을 걷는다. 내,외산 여덟산 만으로 겹 에워쌈을 완벽히 실현한 이 자연조건과 그 자연을 그대로 따라가며 이 엄청난 울타리를 기어이 완성시키고 만 저 인간조건–그 발상과 실행, 초인간적 노동력의 동원과 집약–의 공존이 경이롭다. 특히 세종 때는 이 엄청난 국책사업을 불과 삼십 팔일만에 끝냈다고 하니, 세종의 추진력이나 통치철학을 되짚기 이전에, 반세기도 더 전 어느 삼십 팔일을 가득 메웠을 백성들의 고단함과 두려움, 기대와 희망의 포효가 눈감은 내 귀에 쟁쟁하다. 갑자기 다시 고개를 든 이 정부의 대운하 운운이 생각난다. 전 국토를 건설의 망치질로 울려 퍼지게 하고 전 강산이 일사불란하게 파헤쳐져야 한다는 현 정권의 인식과 이 성곽의 축조가 혹시 은밀히 내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왠지 불안하다. 그러나 점심 후 남산 전망대에 올라 나머지 내 삼산인 북악산, 인왕산, 낙산을 홀딱 마주하고 멀리 산능선을 따라 가물대는 끊어진 성곽 잔재들을 허공으로 이어 갈 때 불안은 경건한 긍지와 더없는 안타까움으로 대체된다. 강력한 왕권아래 그 시절에 조차 무리와 채근이 있었을 지언정 최소한 사람의 정질, 수레질, 손질과 자연의 저대로 있음이 돌이킬 수 없게 반목하며 서로를 파멸하려 하지는 않았음을, 이 끊어져 상처투성이인 서울 성곽은 산을 원망하며, 산을 거스르며, 산을 넘어서며 있으려 하지도, 그렇게 있지도 않았음을 보고 느낀다. 그래서 결코 초자연, 반자연이 아니었던 조상들의 초인간적 무리가 안쓰럽게 존경스럽고, 어쩜 바로 그 ‘너무나 자연적인’ 이유 때문에 슬픈 근대사가 저토록 흉측하게 할퀴고 깨부수고 지나간 건 아닌가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눈에 만져지는 부분보다 마음으로 더듬어야 할 부분이 더 많았던 성곽의 춥고 아픈 몸뚱아리 속내는 우리 아픈 근현대사의 벌거벗은 몸 그대로였다. 일제가 재단질한 자취를 못내 지우지 못한 채 남산이 있었고, 여전히 검은 안경테 의연하신 백범 선생이 서계셨고, 안중근 선생의 마디 잘린 손가락 도장과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힌다“는 일필휘지가 겨울 햇빛에 찬란했다. 조심 없이 시멘트로 허둥지둥 덧쌓은 성곽의 흔적들은 온 국민이 기를 쓰고 ‘초가집 없애고 마을길 넓히던’ 한 시절의 개발광기를 고스란히 진술하고, 난데없이 자유총연맹 곁건물의 지주로 돌변한 성곽의 잔해돌무더기는 역사를 반추하지 못하는 토건국가의 맹목에 짓눌려 있다. 깊은 운치로 한참을 이어지던 가파른 산책로를 지나 처음으로 끊어지지 않고 죽 이어지는 성곽 구간을 외벽을 타고 장충동 종착지까지 걷는다. 400여년에 걸친 4대 왕조(태조, 세종, 숙종, 영조)의 뚜렷이 구분되는 축조법, 축조양식, 축조미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축성사에 길이 빛날 장관이다. 그 모습에 심취할 새도 없이 작업중인 한 무리 인부들과 마주친다. 무심코 무슨 공사냐고 묻는 말에 한 젊은 인부가 경쾌하게 답한다 ”아름다운 서울 가꾸기요~“ 이 조명사업에 쓰일 예산과 그로인한 에너지 낭비가 대뜸 떠올라 입 밖으로 크게 내고 만 탄식이 인부는 달갑지 않은 눈치다. 일감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다행이다 싶었을 팍팍한 삶에 여유가 없는 이들을 향한 탄식은 분명 아니었건만.. 한강르네상스로 부흥하는 서울의 청사진 어디에 제대로 살려진 서울성곽이 있던가? 저 외래어 르네상스의 역사학적 참뜻은 “고전부흥“ ”고대문화.정신의 부활“ 일진대 한강르네상스는 강 주변을 휘황찬란한 서구도시 경관으로 ”부흥“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니, 우리서울이 되찾아야 할 영화로운 고전이 서구도시와 그 역사던가? 전 국토에 울려퍼질 망치질이 무차별적으로 쓸어버린 유적과 생태 환경복원을 위한 것이라면…조명공사에 열중인 인부의 손길이 시멘트 성곽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끊긴 길을 잇는 데 닿아있다면 . . . .

남대문을 시작으로 장충공원 앞에서 맺음했던 서울 성곽을 따라 오르는 가슴 벅찼던 길은 이렇게 우리 쓰라린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길이었고, 우리 한숨서린 현실을 더듬어 오르는 길이었고, 더불어 끝내 저버릴 수는 없는 희망을 가늠질해 오르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경계를 넘으면서도 이제는 더 이상 서울시민이 아닌 서울 토박이의 상상줄은 맑고 용맹한 내.외산의 정기를 받으며 굽이굽이 서울을 지켰던 성곽의 장대한 자태와 그 아래 수려한 자연을 섬기듯 닮듯 했을 선인들의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놓지 못했다.

참가자 – 이유숙

서울성곽 순례길 북악산 구간과 남산 구간을 연이어 다녀온 후 느낀 것인데 성곽이라는 주제만 단일하게 구성할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과 연계해서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 생태축, 특히 산을 끼고 있다는 측면을 고려하여 산행과 생태환경을 함께 풀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북악산 구간은 북한산이 인접해 있다는 지역적인 특성을 살려서 다양하게 연계시키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참으로 신선했고 일상성을 벗어나 산행과 역사, 문화를 함께 만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단순한 등산에 익숙해져 있는 회원들에게 남다른 주제로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잘 살리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서울성곽 복원 계획과 연관지어 설명 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문화라는 큰 틀에서 생태환경과 도심과의 공존 모색을 통해 다양한 역사 문화 생태 프로그램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저의 바램입니다. 앞으로도 서울성곽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참가가 – 차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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