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더미속 생태계 대위기 (검게탄 백두대간) 현장조사

2000.04.18 | 미분류

숯더미속 생태계 대위기(검게탄 백두 대간)
     -문화일보,녹색연합 공동 현장조사-

▶ 글쓴이 : 문화일보 <삼척=홍성철기자>
  ▶ 글쓴날짜 : 2000년 4월 18일

‘단 9일간의 영동산불은 회복까지 최소 100년에서 수백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백두대간을 불태운 산불은 생태계를 여지없이 무너뜨렸고 특히 천연기념물과 희귀종의 생태손실은 회복불능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일보와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이 공동으로 벌인 영동산불현장 생태계및 환경파괴 실태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18일부터 산불현장 생태계 및 환경파괴 실태조사에 나선 녹색연합의 서재철(徐載哲.33)생태부장은 “불탄 지역은 일부이지만 백두대간 전역에 극심한 생태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단순히 산천초목만 불태운데 그치지 않고 백두대간에 서식해온 땅속의 미생물부터 다양한 동식물을 태우거나 가까스로 생존한 생물의 대이동을 초래하고 먹이사슬을 교란시키기 때문. 게다가 고라니 살쾡이 등 국제보호종과 하늘다람쥐 등 천연기념물,희귀종 딱따구리 및 희귀식물인 금강송,산개나리,풍란 등의 대부분이 화마에 불타거나 서식처를 잃고 헤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거대한 ‘검은 늪’이 이 일대의 생명체들을 모두 삼켜버린 모습이었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시내에서 태백시 방향으로 13㎞ 떨어진 이곳은 검은 천으로 덮은 것처럼 사방이 검은 재와 타다 만 나무들의 숯덩어리 자체였다. 산에 오르자 12일 산불에 달궈졌던 땅들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그대로 내려앉았고 초본식물들이 불타 없어진 자리에선 달걀 크기만한 두더지굴이 눈에 띄었지만 두더지는 없었다.

당시 170∼180도에 달하는 불기운이 지표면의 모든 초본식물을 다 태웠다. 특히 삼척시 미로면과 근덕면 일대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풍란,삼초,산개나리 대부분이 이번 화마로 불타 없어졌다.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야생 표범의 발자국과 배설물이 3년전 삼척시 천곡동 일대에서 발견돼 이를 추적해온 백두대간보전회 정강선(47)사무국장은 이날 이곳을 찾아 보고 “이제 표범을 쫓는 것은 물거품이 됐다”며 아쉬워했다.

인근 내미로리 야산에선 이빨을 내밀고 네 발을 움켜쥔 채 불에 타 숨진 청설모가,두타산자락 900m 지점에선 올무에 발이 걸린 살쾡이가 불에 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고천리의 피해는 더욱 심했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허리인 두타산(頭陀山) 5∼6분 능선인 이곳은 산불로 뭉그러져 있었다.두타산 자락 지름 30∼40㎝ 정도의 희귀종인 금강송을 비롯,50∼300년된 나무들이 불타 나무껍질에 반듯반듯한 윤기가 나고 만지면 그대로 재로 변했다.

일부 나무는 밑둥이 타거나 그을려 있었으나 수분을 잃은 채 잎이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서부장은 “수분함유가 많은 활엽수와는 달리 침엽수들은 불에 조금만 그을려도 대부분 말라죽는다”며 “언뜻 보기에 화마(火魔)를 피한 것 같은 이들 나무중 상당수가 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조사팀은 “백두대간은 야생동물과 식물들의 중요 이동경로”라며 “이번 산불로 동식물들의 서식지가 훼손되고 먹이사슬이 파괴돼 결국은 생태계에 대대적인 혼란이 생길 것”이라며 걱정이 태산같았다.

<삼척=홍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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