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깡패환경외교

2001.04.10 | 미분류

글 남상민 namsangmin@hanmail.net (녹색연합 부장 / 해외파견자)

현재 호주에서 학업과 환경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남상민 님이 4월 12일자 시사저널 특집 중 환경분야에 대해 쓴 글을 소개합니다.

“깡패 국가”, “고대석불을 파괴한 탈레반과 같은 행위”, “오만한 고립주의”.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미국의 오만한 행태를 비난하는 말들이다. 이런 격한 말들은 반미국가들이 아니라 미국 국내 과학자, 환경 단체나 유럽의 권위 있는 언론에서 쏟아내고 있는 것들이다. 지난달 28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경제와 노동자에게 해를 끼치는 어떠한 것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97년 160 여 개국이 교토에 모여 채택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를 거부할 것임 밝혔다.

92년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이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찾는 지난 9년간의 국제적 노력을 막연한 느낌의 표현만으로 좌절시켜 버린 것이다. 미국의 교토 의정서 거부 결정은 곧바로 국제적인 파문을 가져왔다. 다음날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미국의 교토 의정서 거부 결정에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미국의 이런 행위를 “불온하고 수용할 수 없는”것으로 규정하였다. 그 동안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이었던 유럽연합의 대응도 곧바로 이어졌다. 부시 대통령이 입장을 공식화 한 후 사흘 후 스웨덴 키루나에서 긴급회담을 연 유럽연합 15개국 환경장관들은 “미국의 탈퇴선언은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라고 강력히 비난하면서 미국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예정대로 내년까지 협약의 비준을 완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같은 무렵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북미와 중남미의 환경장관 회의에서도 교토 의정서 지지를 결의하였다. “행정부내에서 검토 중”이라는 입장 이상을 밝힐 수 없는 미국의 환경장관은 이 회의 참석을 포기했다.

유럽연합은 곧바로 스웨덴 환경장관, 유럽연합 환경분과 위원장 등 고위급 인사들을 미국에 보내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려 했지만, 대표단은 예정된 미국 측 고위인사들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는 푸대접을 받은 채 실속 없이 돌아가야 했다. 교토의정서 채택 전후 과정에서 미국과 한 그룹을 형성하며 긴밀한 공조를 취해온 비유럽연합 선진국(JUSSCANZ) 중 호주를 제외한 일본, 뉴질랜드, 캐나다 등도 미국의 일방적 행위에 당혹해하고 유감을 표시하였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자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국제적 합의를 깨뜨린 부시 정부의 이런 태도는 지난 3월 달에 들어서면서 가시화 되었다. 부시는 발전소의 대기오염 배출규제 대상 물질에 이산화탄소도 포함하는 정책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 입장은 지난 3월초 환경처가 선거공약에 바탕을 두고 입안한 정책을 부시가 거부함으로써 후퇴되기 시작했다. 부시의 교토의정서 거부는 그가 텍사스의 “오일맨”이었다는 개인 전력과 아울러 환경문제에 대한 공화당 정권의 보수성에 기인한다.

백악관이 새 둥지로 바뀌어야 환경주의자들이 좋아할 것이라며 환경운동에 반감을 표시한 도널드 레이건의 집권은 곧바로 국제규범의 거부와 환경정책의 약화를 가져왔다. 국제 해양법 협약 거부, 미국의 산성비 물질이 캐나다에 미치는 영향의 인정을 거부, 독성폐기물 수출요건 완화, 멸종위기 생물종의 국제거래 규제 완화 등 국제 환경정책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 강화에 반비례해서 퇴보하였다.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전임 부시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92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자국의 생물공학 기업의 이해에 집착해 기후변화협약과 아울러 채택된 생물 다양성협약에는 서명을 거부함으로써 국제적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군사적 패권주의와 환경 고립주의로 국제적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결국 레이건과 그의 부친의 역사를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초기에 모호하기도 했던 부시의 교토의정서에 대한 입장은 공화당 보수우파의 강력한 압력으로 분명한 거부로 확고해졌다. 지난달 중순 부시의 확고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척 헤겔 등 공화당 소속의 상원의원들에게 보낸 답신에서 그는 이산화탄소 배출규제에 관한 선거공약을 정책으로 채택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부시의 입장을 선회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척 헤겔은 미국 상원에서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한 보수적 입장을 주도해왔고, 97년 교토회의에 참석해 의정서 채택 자체를 강력히 반대한바 있다. 당시 그는 교토 의정서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기구에 우리의 경제성장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의정서가 채택되더라도 상원에서 비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 교토 의정서의 불안한 운명을 예고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번 결정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배출량이 크게 늘어난 현실에도 기인한다. 미국은 교토 의정서에 의거해 1차 감축의무 이행기간인 2008-2012년까지 1990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7퍼센트를 감축해야 한다. 하지만 6가지 감축 대상 온실가스 중 가장 중요한 이산화탄소는 기준배출량에서 12퍼센트 가량 늘어난 상태이다. 이에 반해 8퍼센트 감축을 하도록 되어 있는 영국과 독일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이미 각각 7퍼센트, 13퍼센트나 줄어들었다. 특히 유럽연합은 소속된 전체국가를 하나로 묶어 8퍼센트 감축 목표를 달성하면 되기 때문에 국가별 조건에 따라 목표를 재조정함으로써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목표 달성이 훨씬 순조로운 상태이다.

이에 반해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 늘어난 미국 등 비유럽연합 선진국(JUSSCANZ)들은 목표 달성방식을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요구해왔다. 국가간 배출권 거래를 통해 얻은 감축량이나 숲과 농지 등 이산화탄소 흡수원을 통해 줄어든 양을 국가의 감축 성과를 계산할 때 대폭 반영해줄 것 등이다. 하지만 유럽과 개도국들은 국내에서 실질적인 감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고, 흡수원을 통한 감축은 성과가 유동적이고 불안전하다는 점에서 이런 방식의 활용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감축 목표달성을 실패할 경우 벌금 등 경제적 제재수단을 두어야 의정서의 실효성이 있다는 유럽연합의 입장에 대해서도 미국 등은 반대하고 있다. 이런 입장차이로 인해 지난해 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기후변화 협약 6차 당사국 총회는 결말을 내지 못한 채 폐막되었다.

의정서 이행방식에 대한 첨예한 국가간 갈등으로 의정서 발효도 더딘 걸음을 하고 있다. 발효에 필요한 요건은 55개국이 비준하고, 또 비준한 국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이 전세계 배출량의 55퍼센트에 달해야 한다. 그러나 의정서를 비준한 국가는 30여 개국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 의무 감축대상 38개국가 중에는 루마니아가 유일하게 지난달에 비준했다. 유럽연합은 이번 사태과정에서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에 발빠르게 공조를 요청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미국의 참여가 없더라도 내년부터 의정서가 발효되도록 할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전세계 온실가스의 24퍼센트를 배출하고 있고, 교토 의정서의 의무감축 대상국가들이 배출하는 양의 41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미국의 불참은 의정서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킬 수밖에 없다.

미국 크리스틴 휘트만 환경장관도 교토 의정서 불참이 국제적 신뢰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부시에게 조언했지만, 그의 일방적 선언이 쉽사리 번복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어차피 상원에서 공화당의 의석이 민주당과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한 상원이 교토 의정서를 비준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상황도 그의 결정을 합리화해주고 있다. 그래서 워싱턴 방문으로 미국 의중을 확인한 유럽연합은 공식적으로는 좀 더 의연해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교토 의정서 거부에도 불구하고 올해 7월에 독일 본에서 열리는 헤이그 후속회의에 참석한다는 계획에 대해 유럽연합의 환경 분과의 마르고트 발스트롬 위원장은 미국이 더 이상 협상과정을 좌지우지해서는 안되며, “교토 의정서를 원하지 않으면 협상과정에도 비켜서 있어야 할 것”이라며 거부감을 표했다.【사이버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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