뒹굴며 달릴수록 넓어지는 길 – 대안마을을 찾아서

2001.11.27 | 미분류

글/사진 작은것이 아름답다 글메김꾼 박경화 qufl@greenkorea.org

영국에 자리잡은 영성 공동체 ‘브루더호프’를 찾아오는 방문객 중에는 어쩐 일인지 영국인보다 한국인이 많다고 합니다. 그 까닭을 궁금하게 여긴 공동체 식구들이 지난해 말에 우리나라를 직접 찾아오기도 했었지요. 그들의 이야기를 빌자면 ‘한국인들은 현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서구의 방식으로 이뤄진 산업화 속에서 뭔가 가슴에서 빠져 나가버린 듯이 허전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고, 지친 몸 편히 쉴 수 있는 작은 방도 있지만 뭔가 점점 텅 비는 듯한 도시 생활. 정확한 지점을 짚어 준 브루더호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내 방이 있지만 전세 계약이 끝나면 다시 보따리를 싸야 하고, 더 나은 곳보다는 돈이 허락하는 곳에서 적당히 짐을 풀고 살다가 다시 옮겨야 하는 삶,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공허함, 누군가 옆에 있어도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이 도시의 삶에서도 희망의 싹, 대안을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일자리와 삶터를 몽땅 정리하고 농촌으로 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도시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여럿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꾸며 우리 땅 곳곳에서 싹틔우고 있는 대안 마을의 여러 얼굴을 찾아 가을들녘을 달렸습니다.

1번 마을버스의 종점에 서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오르니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다닥다닥 슬레이트 지붕이 골짜기 모양새를 따라 빼곡이 들어차 있습니다. 물이 많아 ‘물만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산시 연제구 연산2동. 물만골에 산다고 하면 시집 장가를 오지 않으려고 할만큼 고단한 동네였던 이 곳에 다닥다닥 어깨를 기댄 판잣집 사이로 새 기운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쫓겨나고 밀려나는 삶이 아닌 스스로 주인이요, 더불어 하나가 되는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환경생태마을을 꿈꾸는 물만골 전경. 1,600 주민들 모두가 주인인 해방구다.

“이 닭이요, 이래뵈도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큰 깁니더. 맛도 아주 좋다 아입니꺼.”

좁은 계단을 밟고 산비탈을 오르니 얼기설기 철망이 쳐진 닭장에서 닭들이 홰를 치고 있습니다. 시골 뒷마당에나 있을 법한 닭장에서는 마을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닭과 토끼, 오리들이 말끔히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 다른 생활 쓰레기는 마을 노인들이 공동 작업을 하는 자원 재활용장에서 그 쓰임새대로 나누어 팔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 돈은 어르신들의 ‘품위유지비’로도 쓰이고, 공동체의 공동 기금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덕분에 물만골에는 쓰레기가 다시 쓰이고 돈도 벌어다 줍니다.

1953년 피난민이 들어와 첫 정착을 하고, 그 후 집 한 채, 방 한 칸 없이 떠돌던 사람들이 밀려밀려와 마을을 이룬 물만골. 대부분 무허가로 지은 집이라 시에서 철거를 하면, 대개가 건설 일용직 노동자였던 마을 사람들이 밤새 뚝딱뚝딱 다시 집을 지어 살곤 했습니다. 그렇게 철거를 당할 때마다 외로이 싸워야 했던 마을 주민들이 92년 철거에 반대하면서 열흘 동안 전경과 맞선 이후 서로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내 집이 뿌지니 남의 집 뿌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함께 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은 물만골 사람들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언제 또 쫓겨날지 모르는 무허가 땅에서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 430여 가구가 한 푼 두 푼 달마다 돈을 모아 땅을 사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두 차례 땅을 사 들였는데 물만골 중심지역은 대부분 주민들의 공동 명의로 샀고, 내년까지 나머지 땅을 다 사 들일 계획입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 동안 물만골에는 주민들이 모여 회의하고, 결정하고, 집행하는 자치권이 강해졌습니다. 달마다 1,600명의 주민이 모두 모여 여는 주민 총회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대의원 회의와 통장님이 주관하는 회의도 열립니다. 물만골 청년회, 노인회, 부녀회도 공동체의 크고 작은 일에 앞장섭니다. 재활용 사업단은 노인회에서, 봉제 공장은 부인회에서, 음식물 쓰레기는 건설노동자 공동체에서 각각 맡고, 그 곳에서 생긴 이익의 일부를 공동체의 기금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물만골 공동체는 공동체의 살림을 맡는 위원장님과 통장님까지도 주민 총회에서 직선제로 뽑습니다. 그래서 구청에서는 ‘공화국’이라고 하고, 물만골 사람들은 ‘해방구’라 부른답니다.

지금 물만골은 생태계를 되살리는 생태 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개발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재개발 사업은 지역 사람들을 또다른 도시 빈민으로 만들기 때문에 주민 총회에서 거부됐고, 물만골의 자연 환경을 살릴 수 있는 ‘환경생태마을’이라는 장기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물만골이 들어앉아 있는 황령산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둘레 마을들과 황령산 네트워크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노인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한 시설, 지역 병원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을 회관은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루를 일터에서 보낸 고단한 몸이지만 사람들은 퇴근길에 하나둘 마을 회관으로 모여듭니다. ‘환경생태마을’이라는 계획을 세웠으니 이제는 하나하나 만들어 가야할 더 큰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살림을 맡고 있는 이희찬 위원장은 이 일을 ‘부모 세대들이 좋은 걸 누리려고 하는 것보다는 아이들 세대를 내다보고 하는 일’이라 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웃도 모르고 살잖아요. 물만골에 오려면 모두 1번 마을 버스를 타야 하니까 차 안에서 서로 인사도 하고… 우리는요, 친해질 수밖에 없습니더. ”

1번 마을 버스의 종점에서 도시의 다른 얼굴을 만났습니다.

담을 헐고 보니 더 너른 세상, 대구 삼덕동

도시에 대한 푸념은 해도해도 끝이 없고, 도시 문제는 절망감이 들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구에서는 우리의 보호막이라 생각했던 담장을 아예 허무는 일이 조용히 번지고 있습니다.

대구 삼덕동 주민들이 힘을 합쳐 꾸민 미용실의 꽃담. 연꽃무늬 와당이 질박한 우리 멋을 담고 있다.

대구 YMCA의 김경민 부장이 전셋집의 담장을 허문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새로 얻어 들어간 집에 높은 담장이 있었는데 늘 그늘이 져 있고, 쓰레기만 쌓여 있어 담을 헐면 정원도 넓어 보이고, 햇볕도 많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담만 헐면 시원할 줄 알았더니 막상 허물고 보니 이가 빠진 것처럼 엉성하기만 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집 식당하려는 갑다” 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황당해져서 정원을 새로 꾸미고 내친김에‘꾸러기 환경 그림대회’를 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골목에 전시하고, 시상은 골목 공원에서 열었는데 아이들도, 부모도, 동네 사람들도 즐거워했습니다.

이 작은 움직임에 희망을 얻은 김경민 씨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벽화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실내 인테리어에는 관심이 많지만 내 집 밖의 공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게 안타깝기도 해서 벽 꾸미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려고 하면 우주 만물이 돕는 것인지 미술학원 원장인 김정희 씨의 도움으로 벽에 멋진 도안이 완성됐지요. 억지 교훈을 담거나 도형그림을 그리지 않고, 누가 보아도 즐겁고 아름다운 벽화를 그리기로 원칙도 정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같이 쉬엄쉬엄 그렸습니다. 귀신 나온다고 싫어하던 어른들도 완성된 멋진 벽화를 보고는 자기 집 벽에도 그려 달라 부탁하게 됐지요. 동네 아이들이 함께 모은 병 뚜껑과 빈 병을 깨뜨려 붙이기도 하고, 동전을 이용한 벽화, 아이들이 모여서 그린 마을 지도도 골목 담벼락에 멋진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주병과 맥주병을 깨뜨려 멋진 벽화를 만들었다. 오래된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도 울고 갈만큼 화려한 작품.

담장을 허물고 동네 이 곳 저 곳에 벽화를 그린 일이 차츰차츰 알려지면서 ‘대구의제 21’의 의제로도 정해지고, 대구시에서도 담장 허물기 운동에 함께 했습니다. 동사무소와 구청, 행정 기관, 종합 병원, 교회, 대학교의 담도 많이 헐었고, 교도소와 공항의 담도 이 흐름에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허문 담장을 모두 합하면 무려 14킬로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삼덕동 동사무소에는 담을 헐고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그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재잘댑니다. 낮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밤에는 연인들이 단골이구요, 동사무소를 찾은 민원인들도 아픈 다리 쉬어갑니다. 나무 아래 평상에서는 영감님들이 모여 동네 여론을 만들고 있구요. 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풍경이 조그만 변화로 골목 골목 다시 찾아왔습니다.

김경민 씨는 삼덕동에서 오래되고 당산목 대접을 받을 만한 나무를 찾아 정자목으로 정하려고 합니다.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조상들이 귀하게 여겼던 나무 신앙을 찾아 포퍼먼스 공연도 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뜻을 함께하는 젊은이들과 삼덕동 골목 공원, 마을 미술관, 국악 미술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담장을 허물고 나니 이웃 사람들의 얼굴도 또렷이 보이고, 니것 내것 경계가 없으니 사는 공간도 넓어졌습니다. 나쁜 점이 있다면 담이 없으니 동네 개들이 몰려와 똥을 누는 바람에 똥 치우기 바쁘다는 것 정도겠지요. 동네 개들에게도 너른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도시의 또 다른 길을 열어 가는 봉암리

전쟁 후 피난민과 객지 사람들이 모여 이룬 경기 양주군 은현면 봉암리에서도 사람 사는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군사 요충지인 이 지역은 미군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형성된 마을입니다. 그래서 60∼70년대 가난한 마을에 흔했던 고리대를 없애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마을 금고를 만들면서 작은 기적은 시작됩니다. 27명이 천 원씩 낸 2만 7천 원이 그 씨앗이 되었지요. 어려운 살림에 배고픔을 참으며 회비를 내는 마을 주민들의 정성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제는 자산 65억 규모에 면 소재지 두 군데에 분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조합원 수는 무려 1천 6백 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마을 금고가 알뜰히 운영되는 데 자신감이 생기자, 학생들을 돕기 위한 장학회도 만들고 신호등과 건널목을 손수 설치해 어린이들에게 교통 안전 교육을 해오고 있습니다. 별다른 놀잇감이 없는 시골 아이들을 위해 만든 ‘자립의 놀이터’, 형편이 넉넉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에 마을 문고까지, 게다가 장난감 도서관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마을과 마을 아이들을 걱정하는 조영순 씨의 작은 바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상호부조가 쓰러져 가는 마을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훌륭한 보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마을은 자립과 어린이 교육에 중심을 두고 힘을 모았습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 봉암리는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마을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계속 이어갈 젊은이들이 적다는 것이 봉암리의 큰 숙제입니다. 봉암리에서 가능한 일은 어느 마을에서나 역시 가능한 일일 겁니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기대해 봅니다.

오리와 함께 짓는 농사,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문당리에 도착한 날, 주형로 씨는 고운 한복을 입고 우리를 반겨 주셨습니다. 그 전날 한 해 동안 구슬땀 흘리며 지은 쌀 전부를 수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흙 묻은 작업복을 벗고 고운  매무새를 가다듬을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추수가 끝난 논에 남은 벼 밑둥을 바람이 한번 휩쓸고 산모롱이로 내달렸습니다.

농부와 오리가 같이 정성을 쏟은 문당리 논. 가을걷이 끝난 논에서 홍성 사람들의 옹근 미래가 엿보이는 듯.

홍성군 문당리는 우리 나라 최초로 환경 농업을 시작한 마을입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는 당할 재간이 없는 잡초를 없애기 위해 오리를 논에다 풀어 일꾼 구실을 하게 하는 오리 농법을 처음 시작한 마을입니다. 환경을 살리는 농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잡초를 손으로 하나하나 뽑아가며 어렵게 농사를 지던 주형로 씨는 어느 날 은사이신 풀무학교 홍순명 선생님께서 알려 준 오리 농법을 전해 듣고는 친구와 함께 만 평의 논에다 오리 농법을 시작했습니다. 시험도 해 보지 않고 시작한 첫 해 농사는 오리들이 열심히 논을 헤집고 다니며 벌레도 잡아 먹고, 흙탕물을 만들어 잡초의 싹이 아예 나지 못하도록 해 주어서 풍년을 이루었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주형로 씨의 끈질긴 설득으로 이웃에 오리 농법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올해는 홍성 일대 127농가가 33만평에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수매가는 모두 15억에 이르구요.

이런 정도의 성과를 올리기까지 가장 큰 걸림돌은 농사꾼이 대우를 못 받는 것도 문제지만 장사꾼들이 쌀을 가져가면서 떼 먹는 일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품질인증 제도와 외상 안 주기 운동을 하고 유통업자, 농민, 농협이 삼자계약을 맺었습니다. 유통업자는 현금으로 가져가고, 농협은 전량 수매를 하고, 농민은 깨끗하고 건강한 농사를 짓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홍성의 미래는 이 녀석의 웃음 속에 잘도 영글겠다. 갓골어린이집 꼬맹이가 흙장난 하다 말고 환하게 웃어 준다.

깨끗하고 안전한 쌀을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대로 가면 우리 농촌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래서 문당리 사람들은 5년 동안 환경 기금을 모아 환경 농업 교육관을 지었습니다. 농촌의 아름다움, 자연의 신비, 먹을거리의 중요성, 농민의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마을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문당리 백년계획’도 세웠습니다. 문당리는 앞으로 풍경이 아름다운 마을을 계획 중입니다. 노랫말처럼 복숭아꽃, 살구꽃도 심고, 벚꽃도 줄지어 심을 참입니다. 또, 농사일을 홍보하고 보존하는 농업박물관도 짓고 있습니다. 다행히 문당리에는 도시에서 귀농하는 젊은 일꾼들이 차츰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성은 홍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지역에 남아 건강한 먹을거리를 유통하는 홍성생협과 탄탄한 기역기반이 되어주는 홍성신협, 지역의 바른 여론을 이끄는 홍성신문,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기르는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 아이들의 꿈을 가꾸는 갓골어린이집이 모여 공동체의 기반을 더욱 튼실히 다져가고 있습니다.

“농사꾼은 소금물에 담가 알곡만 건져서 씨앗을 심는, 씨앗을 쓰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농사꾼의 씨앗은 다음 농사꾼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씨앗은 서울대 법대 보내고 쭉정이만 남겨 두고 “농사나 한번 지어 볼래”라고 합니다. 이래서는 농촌이 살 수 없습니다. 농사나 지어야겠다가 아니라 아버지가 지은 농사 나도 지어야겠다, 좋은 농사를 잘 지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날을 만들어야겠습니다.” 농사꾼 주형로 씨와 문당리의 할 일은 아직도 많기만 합니다.

자연 속에서 꿈꾸는 공동체, 안솔기 마을

따뜻한 아랫마을,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에는 새로운 마을을 만들고 있습니다. 안쪽에 소나무가 많아 이름지어졌던 ‘안솔기’를 마을 이름으로 정하고, 도시를 떠나 자연에 정착하고 싶은 사람들이 새 보금자리를 틀고 있습니다. 공동으로 구입한 사만 오천 평 땅에 모두 열여덟 집이 내년 말까지 들어올 계획인데, 지금은 네 집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주민 자치 규약을 만들어 계획을 세우고, 달마다 주민 회의를 열고, 대안교육을 하고 있는 간디학교를 중심으로 마을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마을을 새로 만드는 큰일이다 보니 어려움도 만만치 않습니다. 집터를 닦느라 자연을 헤친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고, 처음 계획 단계에서는 한 집마다 사백 평의 땅을 분양하겠다고 2천만 원씩을 모았다가 실제 그렇게 집을 지으면 산이 몽땅 깎이겠다 싶어 한 집당 2백 평으로 줄여야 했습니다. 한가한 전원생활이 아닌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마을을 만들려면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합성 세제를 쓰지 않고, 생활 하수를 자연 정화 시키고, 집 재료도 나무와 흙벽돌을 쓰면서 자연과 가까운 삶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샌드위치 패널로 집을 짓다가 완공 단계에서 해체를 해야 하는 아픔을 겪은 집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사람 외에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 하는 큰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집을 짓는 망치 소리 요란한 안솔기 마을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고, 그만큼 희망도 많습니다. 꿈꾸는 이들의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져 사람답게 사는 공동체를 꿈꾸는 마을을 다니면서 많은 분들에게 사연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굴이 서로 다른 것처럼 다른 터에서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지금까지 겪어온 어려움과 실패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고민까지 즐겁게 설명해 준다는 것입니다. 먼저 걸어가는 사람들이 뒤따라오는 사람을 배려하듯 공동체를 꿈꾸며 이제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이 더 쉽고, 더 바른 길을 가 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한껏 물이 오른 봄기운처럼, 좋은 기운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들었을법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지요. 혼자 꾸는 꿈은 꿈에 지나지 않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구요. 꿈과 현실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 같군요. 좁고 위태위태한 길이지만 함께 손잡고 뒹굴며 달릴수록 더 너른 길이 펼쳐질 테니까요.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 12월호>【사이버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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