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공화국, 추카~추카!

2001.12.18 | 미분류

글/사진 국제신문 박창희 기자

아름다운 ‘반란’이다. 집도 절도 없는 새들이 무슨 수로 나라를 운영할 지 알 수 없지만, 그 발상이 참으로 신선하다. 을숙도 철새공화국!

16일은 낙동강 하구의 역사가 새롭게 씌어지는 날이다. 이날 오전 11시 전국의 100여개 환경단체들은 부산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 광장에서 ‘낙동강 하구 보존을 위한 시민한마당’을 거행한다. 대형 걸개그림이 걸리고, 아이들이 ‘생명의 씨앗병’에 자연사랑의 꿈을 담으면, ‘을숙도 철새공화국’은 비로소 만방에 선포될 것이다.

공화국의 헌법은 이미 초안이 잡혔다. ‘을숙도 철새공화국은 평화공화국이다(제1조). 그 영토는 을숙도와 그 일원으로 한다(제2조)…. 모든 생명은 누구든지 자연앞에 평등하다(제8조)….’

철새공화국은 새들이 1차 주권을 갖는 나라다. 영토내 개발·훼손·관광·학습행위는 철새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새를 괴롭히는 모든 행위도 엄단된다.

낙동강 하구에 벌써 소문이 돌았는지, ‘건국’을 자축하는 지저귐이 소란하다. ‘추카~추카! ㅋㅋㅋ’. 초겨울 바람타고 날아온 북방의 단골손님인 고니와 흰뺨검둥오리, 쇠오리, 쇠기러기들은 기쁨에 겨워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천하의 진객 황새(12일자 본지 1면 사진)가 축하 사절인 양 귀한 모습을 드러냈다. (‘추카~추카! ㅋㅋㅋ’는 인터넷 세상에서 즐거울 때 기쁨을 나누는 말이다. 혼자 괜히 기분 좋을 때 네티즌들은 ‘ㅋ’ 자판을 연달아 두들겨 ‘ㅋㅋㅋ’ 한다.)

‘추카~추카!’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로도 들린다. 그러나 예민하게 들어보면 포한(抱恨)의 우짖음이 배어 있다. 을숙도의 소리치지 못하는 고통과 치욕의 역사 때문이다.

을숙도(乙淑島)는 원래 새들의 땅이었다. 새 많고 물맑은 섬. 바다를 따라 들어가는 낙동강의 물줄기가 두갈래로 쩍 벌어지며 그 사이에 도톰하게 솟아난 모래톱. 길쭉한 모양새가 생명을 잉태하는 양수(羊水)를 연상하게 한다.

그런 을숙도가 지난 20년 사이 인간에게 점령돼 치욕을 당했다. 지난 87년 을숙도 허리춤을 가로지르는 하구둑이 놓인 후, 심장부에 엄청난 쓰레기가 묻혔고 남단과 북단에는 준설토 적치장이, 남단 귀퉁이에는 분뇨해양처리장이 들어앉았다. 지난 93년 6월부터 4년간 매립된 쓰레기만도 10톤 청소차로 57만대분이었다.

을숙도는 그렇게 처절하게 망가졌다. 그래놓고 ‘생태’를 들먹이며 수십억원의 혈세를 쏟아 ‘인공철새서식지’(을숙도 서남단 갯벌지대)를 만들고, 요즘은 명지대교를 그 위로 관통시킨다 어쩐다 한다.

을숙도는 낙동강 하구의 십자가였다. 가장 사랑받던 땅이 가장 처절하게 버림받았다는 것은 배반의 극치다.

그래도 아름다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을숙도에 눈물겨운 공화국을 세운다. 이 공화국은 을숙도를 포함한 낙동강 하구 2천8백만여평의 철새도래지(천연기념물 제179호)가 ‘새들의 나라’임을 일깨우는 간곡한 우짖음이자, 자연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아름다운 진입로다. 이 어찌 축하하지 않을 수 있는가.

철새공화국이여, 영원하라. 추카~추카! ㅋㅋㅋ.【사이버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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