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을 두고 ‘빅딜’을 운운하는…

2007.03.23 | 미분류

십여 년 전 여름, 나는 호주 남동쪽 번다버그의 한 농장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었다. 오전 내내 토마토를 따도 한 고랑을 마치지 못했다. 호주의 농장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농장에서 지평선이 보인다. 농사일 전체가 기계화되어 있지만 과일을 수확하는 일만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기에 나 같은 배낭여행자들의 일손을 빌리는 것이다. 길거리에 나선 농민들을 대할 때마다 그 호주의 들판이 떠오른다. ‘경쟁’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색하다.

한미FTA 협상은 뒤죽박죽이다. 쇠고기나 쌀은 한미FTA의 협상 대상이 아니라면서도 늘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특히 4대선결조건으로 쇠고기 수입을 받아들였는데, 중간에 뼛조각이 나온것은 미국의 잘못이다. 그런데 또다시 힘으로 밀어부치면서 협상조건을 바꾸자고 한다. 어제 언론보도에 따르면 장관급회담에서 미국이 쌀을 다룰것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미FTA협상에서 ‘농업’은 두 나라의 마지막 카드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이 “농업을 포기할까?“ 아니면 한국이 ”농업을 버릴까?“ 이 협상은 아무튼 두 나라 중 한나라가 농업을 포기해야 끝이 날 것 같다. 사실은 두 나라다 농업을 포기 안 해 협상 자체가 중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크다.

미국의 무역대표부 대표는 지난해 2월 협상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발표했다. “한국의 농산품 관세와 장벽을 낮춰 미국 농업생산자들이 최대한 이익을 얻도록 협상 하겠다.” 물론, 한국정부도 농업을 넘겨주고 다른 것을 얻는 ‘빅딜’의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한다. 정말 그럴까? 한국정부의 말에 신뢰가 안 가는 것은 정부 관료들의 농업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지금의 총리는 2002년 마늘협상의 주인공이다. 중국산 마늘 수입을 거부했다가 우리 핸드폰 수출이 막히자 이를 뒤집어 버린 사람이다. 게다가 한미FTA 협상에 나가는 경제 관료는 국민들을 향해 “소탐대실”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뼛조각이 나온 미국산 쇠고기를 전량 반송조치하고, 이에 대해 미국이 문제 제기를 하자 “소를 탐하지 말고, FTA를 체결하자”는 뜻을 “소탐대실”로 표현했다. 언론도 거든다. 유통과정 문제로 우리나라 수입쇠고기가 비싸다는 시민단체의 문제 지적을 “그러니 FTA를 해서 싼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포장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미 육류수출협회(U.S. Meat Export Federation)의 광고를 전면으로 싣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예찬 일색이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미국 농산물과 축산가공품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오게 된다. 미국의 농축산업자들이 다가올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면 한국의 농민들은 다가올 태풍에 보호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맞서야 할 판이다. 그러나 농민만 어려움에 처한 것일까? 미국산 농축산물 앞에 국민들의 건강도 안전하지 않게 된다. 미국은 농산물의 관세철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수입 농산물에 대해 실시하는 검역을 완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미 세 차례나 광우병이 발생한 미국으로부터 철저한 검증 없이 쇠고기를 수입하고, 뼛조각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국민을 인간광우병(BSE) 위험에 노출시키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유전자조작식품도 걱정이다. 미국은 대표적인 GMO 옹호 국가이다. 세계최대의 GMO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2005년 말 미국에서 재배된 콩, 옥수수, 목화의 87%, 52%, 79%가 유전자변형작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국내 콩 수입량 중 GMO 표시 콩은 전체 수입량의 77%를 차지했다. 최근 유전자조작(GM) 옥수수가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간과 신장에 유독성 증세가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한국 정부는 우리가 농산물 수입국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외부로부터의 식량 공급 단절, 식량가격 폭등, 통관 간소화로 인한 식품안전 불안의 가능성에 대해 너무나 안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미FTA 정부의 선택이 우리의 들판을 또다시 ‘분노’와 ‘눈물’로 뒤덮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을 살리고 지키는 일은 농민만의 몫이 아니다. 소비자이자 유권자인 우리들이 나서야 한다. 한미FTA는 중단되어야 한다.

이유진(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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