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칼럼] 알맹이 없는 기후변화 대응

2008.07.29 | 미분류

7월 초, ‘살인적인 폭염’의 한낮에 밭일을 하던 농민과 건축공사장에서 일을 하던 노동자가 일사병으로 잇따라 숨졌다. 가축이 폐사하고 일부 학교는 휴교령을 내렸다. 전력 사용량은 한 달이나 일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이 잦아지는 동시에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에너지 사용도 급증하고 있다. 악순환의 연결고리에 있는 것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선진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기후변화와 에너지에서 얼리 무버(early mover)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기후변화 대응 ‘얼리 무버’를 선언한 우리의 현실은 이렇다. 세계에서 열 번째로 에너지를 많이 쓰고, 여섯 번째로 석유를 많이 소비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량은 6위, 배출량 증가율은 1위이다. 누적 배출량도 세계 23위를 기록하고 있다. 에너지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통령의 발언을 앞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본다면, 국제사회가 우리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우리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일 것이다. 대통령은 감축목표 설정을 내년으로 미뤘다. ‘앙꼬’ 없는 찐빵이다. 기후변화대책에 감축목표가 없는 것은 달리기 경주를 하는데 신발 끈도 매지 않고 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감축목표가 있어야 가정, 산업, 상업, 공공 등 각 부문별로 얼마나, 어떻게 줄일지 목표를 정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다.

고유가가 이끄는 에너지위기와 기후변화는 사실 한 몸이다. 두 가지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정부가 수립하고 있는 2030년까지의 ‘에너지기본계획’과 ‘기후변화종합기본계획’이 중요하다. 정부가 발표한 안을 보면 두 계획 사이의 통합성과 연관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여전히 에너지 수요관리보다는 공급 중심이다. 또한 에너지 대책과 기후변화 대책 모두 핵발전 확대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핵발전은 고유가의 대안도 아니고, 최근 프랑스의 잇단 원전사고에서 보듯이 안전하지 않은 에너지원이다. 핵발전에 집착하면 할수록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시기를 늦추게 된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에 대한 해법 찾기가 늦어질수록 서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고유가로 인한 물가상승이 가계를 압박하고 있고, 이상기후에 실외에서 일하는 농민과 노동자들의 건강과 작업환경은 악화된다. 하루빨리 석유를 비롯한 화석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강도 높은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또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과 온실가스 ‘감축’ 실행에도 나서야 한다. 정부는 에너지 소비 증가와 한반도 기온 상승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미래세대를 책임질 수 있는 에너지와 기후변화 정책의 비전을 세워야 한다.

<이유진 | 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팀장>

경향신문 7월 3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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