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칼럼] 녹색을 팝니다

2008.10.07 | 미분류

세상이 온통 ‘녹색’ 천지이다.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한 후 정부도, 지자체도, 기업도, 서로가 ‘녹색’이라며 장밋빛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반갑지가 않다. 이 정부가 내건 녹색은 ‘생태’도 불도저로 건설하면 된다는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19일,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기후변화 종합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이 우리 사회를 기후변화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대책의 핵심은 2012년까지 원자력발전·박막태양전지·대형 풍력발전기 등에 대한 연구개발을 통해 기후친화사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원자력산업’ 육성과 ‘글로벌 물관리 전문기업’ 육성 부분을 읽다보면 이 문서가 기후변화 대응계획이 맞나 싶어 표지를 다시 들춰보게 된다. 기후변화 대응방안인지 산업육성 방안인지 헷갈린다. 아니나 다를까 기후변화 종합대책은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22개 신성장산업과 고스란히 겹친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정부와 기업, 국민들의 목표와 역할 부문은 뒷전이다.

기후변화는 성장을 위한 ‘기회’이기 이전에 인류가 직면한 크나큰 ‘위기’이다. 이미 농부들은 24절기에 맞춰 농사를 짓지 못하고, 동해안에서 명태가 사라졌다. 제주 명물 한라봉은 전남 고흥과 경남 거제에서 재배되고 있다. 뒷동산에는 알록달록 이름 모를 동남아시아의 새들이 등장했고, 중국에서 날아온 주홍날개꽃 매미의 습격은 두렵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자연재해, 농·수산물 작황 피해, 병해충 확산, 건강영향, 해안 침수와 같은 위협에 대한 적응 대책을 지나치게 소홀히 다루고 있다.

기후변화는 화석연료에 의존한 인간의 과도한 경제활동으로 발생했다. 에너지원 변화나 기술개발로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산업과 경제, 삶의 양식 전반에 대한 반성이다. 그것이 재생에너지 투자확대보다 우선이다.

새만금 삼보일배를 하셨던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이 다시 오체투지 ‘순례’의 길에 나섰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라 하신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몸을 던져가며 ‘지렁이 한 마리’, ‘길 잃은 자벌레’의 ‘생명’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성장과 속도를 위해 으스러져간 생명들에 대해 대신 참회를 하고 계신다. 정책에는 ‘철학’과 ‘본말’이 담겨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일으킨 기후변화에 대해 되돌아보지 않고 그것조차 ‘성장’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은 ‘녹색’으로 장사를 하는 것일 뿐이다. 정부의 녹색성장은 ‘녹색’으로 포장한 개발 패러다임이다. 제대로 된 녹색과 생태는 돈과 기술로만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오체투지 ‘순례단’에서 ‘녹색의 길’에 대한 해답을 구해야 한다.

※ ‘살 데’는 우리가 사는 곳, 곧 환경이라는 뜻입니다.

<이유진|녹색연합 에너지 기후변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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