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와 로컬에너지가 만난다

2008.12.27 | 미분류

[기획연재] 에너지자립 꿈꾸는 무주 푸른꿈고등학교에 가다
  
에너지자립마을 일본 구즈마키의 ‘숲과 바람의 학교’

작년 여름, 일본 북동부에 위치한 에너지자립마을 구즈마키를 찾아갔다. 산골 구즈마키 마을은 놀랍게도 재생에너지를 통해 100% 에너지를 자립하는 곳이다. 그보다 더 부러웠던 것은 ‘숲과 바람의 학교’였다.

요시나리 노부오씨가 7년 전 해발 700미터가 넘는 외딴 산골의 폐교를 활용해 ‘에너지’를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었다. 요시나리 대표는 딸과 여행 중 덴마크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접하면서 “먹는 것과 쓰는 것, 특히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에 감명받아, 도쿄생활을 정리하고 구즈마키로 이사했다고 한다.

이곳의 교육은 특별한 게 없다. 그저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버려진 버스를 이용한 간이 도서관은 태양광과 소형 풍력으로 밤에 불을 밝히고, 페트병을 재활용해 태양열 온수기를 만든다. 오줌으로 메탄가스를 만들어 간단한 음식을 할 때 사용한다. 최종 목표는 학교가 중심이 돼 자급자족이 가능한 마을을 실현하는 것이다.

교육내용 중에 ‘우리가 만든 전력으로만 생활하는 날’이 있다. 교육생들은 전기 생산부터 배선까지 스스로 고민해 해결해야 하는데, 생산한 전기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를 생각하고 결정한다. 하루 종일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전기를 생산하거나, 마을 냇가에 수차를 돌려서 전기를 축전기에 모은다. 저녁에는 하루 동안 만들어놓은 전기로 다 같이 모여 영화를 보는데, 언제 영화가 끝날지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해하면서 결국은 우리가 너무나 쉽게 써버리는 에너지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원자력과 화석에너지로 대표되는 ‘나쁜 에너지’에 중독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이를 되돌리지 못하는 것은, ‘에너지’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에 대해 잘 모르는 ‘생태맹’이기도 하지만 ‘에너지맹’이기도 하다.

구즈마키 마을의 ‘숲과 바람의 학교’를 가슴에 품고 에너지 답사를 다니다가, 경남 산청 대안기술센터를 발견했다. ‘유레카.’ 뭔가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동근 선생님(대안기술센터 대표)과 함께 일하면 우리나라에도 구즈마키 못지않은 ‘숲과 바람의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1년 뒤…

무주 푸른꿈고등학교의 재생에너지교육과 실험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산기슭에 자리한 푸른꿈 고등학교 쉼터. 배터리에서 비상경고음이 울리면서 형광등이 깜빡인다. 이때 학생 한 명이 달려와서는 자전거발전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오늘 사랑방의 전기생산을 책임지는 당번이다. 지난여름 학부모, 선생님, 아이들이 함께 만든 쉼터 공간은 풍력발전기, 태양광발전기, 자전거발전기로 전기를 직접 만들어낸다.

지붕 위 풍력발전기는 500와트(W)짜리다. 바람이 초속 11m이상 불면 1킬로와트(kW)도 생산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푸른꿈고등학교에는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다. 자전거발전기는 보통 사람이 돌리면 시간당 200W가 생산된다. 자전거 페달을 1시간 정도 밟으면 선풍기 한 대를 4시간 동안 돌릴 수 있고, 세탁기를 한 시간 이상 쓸 수 있으며, 1인용 전기장판을 1시간 정도 켤 수 있는 전기가 생산된다.

푸른꿈고등학교는 녹색연합과 대안기술센터, (주)아베다가 대안학교의 재생가능에너지 교육을 위해 진행한 “숲과 바람과 태양의 학교”다. 녹색연합은 올해 5개 대안학교를 선정해 500W 풍력발전기와 200W 태양광발전기, 자전거발전기를 설치했다. 학교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에너지교육에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원조건은 학교선생님들이 학교에 설치할 발전기를 직접 제작하는 것.

푸른꿈고등학교에서는 과학을 가르치는 곽진영 선생님과 이무흔 선생님이 올해 8월 3일~9일까지 일주일간 발전기를 만드느라 땀방울을 흘렸다. 소형 풍력발전기는 나무를 직접 깎아 날개를 만들고, 코일과 자석을 직접 감고 붙여 발전기를 만들었다. 자전거발전기도 발전기 안에 코일을 넣고 자석을 회전시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빨리 달릴수록 높은 전압이 발생해 많은 전류가 흐른다.

곽진영 선생님은 지난 2학기 2학년을 대상으로 과학시간에 에너지에 대한 교육을 했다. “내년 3학년 과학시간에는 직접 학생들과 풍력발전기, 자전거발전기, 태양열 조리기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고등학생들이라 실습도 할 수 있고, 직접 만들어봐야 제대로 된 재생에너지 교육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수업시간에는 푸른꿈 고등학교를 에너지자립 학교로 만들기 위한 설계를 학생들과 함께 해볼 작정이다.

학생들이 자전거발전기 돌리고 농장 일하며 의식주 해결

푸른꿈 고등학교에서는 현재 105명의 학생과 26명의 선생님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 학교는 학교 전체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고려해서 만들었다. 학교 주변을 둘러싼 숲이 울창하고 예쁘다. 말 그대로 ‘숲과 바람의 학교’이다. 도서관과 특별실 지붕에는 15kW태양광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학교에서 발생하는 폐수는 자연연못을 통해 정화처리를 한다.

학교운동장 오른편에는 학교농장이 있다. 비닐하우스에는 채소와 방울토마토가 자란다. 닭장에는 닭들이 건강하게 자라면서 유정란을 낳는다. 학교 본관건물 옆에는 아이들이 직접 담근 된장 독들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이렇게 학생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와 유정란이 학교 식단의 재료가 된다.

이무흔 선생님이 학교급식 식량창고로 가시더니, 쌀 봉지를 보여주신다. “푸른꿈 고등학교 급식용 쌀” 바로 학교 아랫마을에서 유기농으로 수확한 쌀이다. 이무흔 선생님은 쌀 재배지에서 소비지까지의 거리가 0km이니, 푸드 마일리지가 제로에 가깝다고 이야기하신다. 친환경 로컬 푸드가 아이들의 건강한 식단을 책임진다.

곽진영 선생님은 “의식주 말이죠. 아이들이 먹고, 입고, 사는 곳이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 싶어요. 가능하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적어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요” 라고 말씀하시면서, 학교 텃밭에서 탄 방울토마토를 건네주신다. 과즙이 제대로 달다.

식당에서 만난 아이들은 곽진영 선생님의 수업 탓인지, 에너지에 대해 정답 같은 말만 쏟아낸다. 에너지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기 때문에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자전거발전기 돌리는 거 너무 쉬워요” 라고 이야기한다. 체력 좋은 고등학생들이라 자전거 돌아가는 것이 너무 헐겁다는 것이다.

곽진영 선생님과 이무흔 선생님은 내년 여름에는 푸른꿈고등학교에서 “재생가능에너지 캠프”를 열고 싶다고 하신다. 지난 10여 년의 선생님과 학생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푸른꿈 고등학교를 ‘로컬푸드’와 ‘로컬에너지’의 실험이 동시에 시도되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일본 구즈마키의 ‘숲과 바람의 학교’가 하나도 안 부럽다. 우리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착한 에너지’의 희망과 대안을 일구는 학교가 있으므로.

이유진 (녹색연합 에너지 기후변화팀장)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기고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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