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 만난 눈동자

눈 속에서 만난 눈동자

글/사진 양시종 (녹색연합 자원활동가 / 야생동물 조사단 단장)

세상이 하이얀 눈으로 덮힐 때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산을 오릅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과 상고대가 눈 터널을 이루는 신기루 속에 마냥 즐겁기만 한 산행이었죠. 그러나 하얀 눈으로 덮혀 있어야 할 곳에서 둥그렇게 파헤쳐진 흔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웬일일까? 다가가서 보니 올무에 걸린 오소리 한 마리, 온 산을 자유롭게 뛰어 다녀야 할 오소리가 인간의 돈벌이에 희생되어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다가 주위에 둥그렇게 흔적만 남겨 놓고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이들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그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야생동물이니까요.

눈덮인 겨울이 동물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눈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밀렵도 극성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녹색연합에서 주말을 이용해 덫, 올무 수거 작업을 계속해왔지만 보다 집중적인 조사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경기도 광주, 양평, 강원도 삼척, 태백, 인제, 경북 봉화, 울진, 안동 등지 밀렵이 예상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야생동물 서식 현황을 조사하고 덫, 올무를 수거했습니다. 동네 주민들의 제보는 효과적인 작업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었지요. ‘야생동물조사단’ 이름 아래 모인 네 사람-팀장 양시종, 조사연구원 최영두, 이정연, 조사영상기록 공미연-은 2001년을 이틀 앞둔 2000년 12월 30일부터 40여 일간의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강원도 홍천지역을 조사하고 있을 때, 건너편 산등성이에서 한 쌍의 노루가 두 발로 걸어다니는 우리가 신기했는지 도망가지 않고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더군요. 야생의 생명과 눈을 마주보며 서있던 그 몇 초의 시간에 우린 숨을 쉬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숲 속으로 들어가는 노루의 하얀 엉덩이를 보고서야 우리 모두는 말문이 트여 뛸뜻이 기뻐했습니다. 노루가 이 산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정말 그렇구나 하면서요.

그 날 발견한 또다른 동물은 산에 사는 멧토끼. 올무를 한참 걷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토끼 한 마리가 깡총거리며 도망가더군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 토끼가 우리가 미처 걷어내지 못한 올무에 걸려버리는 것입니다. 목에 올무가 걸린 채로 뒷발길질을 해대자 토끼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그 힘만큼의 속도로 다시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만큼 올무는 토끼의 목을 죄어갔구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놀라서 얼른 토끼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순한 눈망울의 토끼는 사람이 다가가자 겁에 질려 더욱더 몸부림을 쳤습니다.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내가 놓은 건 아니지만, 그것을 놓은 것이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토끼를 조심스레 안고 목에 걸린 올무를 풀어주자 토끼는 산속으로 껑충껑충 뛰어 사라졌습니다. 다시는 올무에 걸리지 말아라.

그 날 그 곳에서 수거한 토끼올무는 모두 49개였습니다. 올무가 너무 많아 모두 다 걷지 못하고 젖히기만 한 것도 여럿 있었지요. 작은 마을 뒷 산. 그 곳에선 하루에 몇 마리의 토끼가 올무에 걸려 죽어갔을까. 또 그렇게 올무가 깔려있는 산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이 있을 것인가.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입니다.

그런가하면 사람이 죽을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중앙선을 넘어서 정면으로 달려오는 차와의 접촉사고.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피해 큰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차 옆구리가 푹 찌그러져 버렸죠. 그리고 빙판길에서 어이없게 일어난 두번째 접촉사고. 두번의 사고로 차는 끝내 렉카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차뿐만이 아니었죠. 지원대로 온 장주영 씨는 빙판에서 미끄러져 팔에 금이가는 부상을 당해 지금도 석고붕대를 하고 있습니다. 또 저는 조사 작업 중 칡덩굴에 걸려 구르면서 무릎이 퉁퉁 붓는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물론 재밌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차를 마을 어귀에 세워두고 조사를 하러 들어갔다가 몇시간 뒤에 돌아오니 무서운(?) 글씨로 차에 메모가 붙어있었습니다.

외지에서 온 차량이 수상해서 들여다보니 그 동안 우리가 수거했던 밀렵도구들이 보인 거겠죠. 게다가 코펠에, 야영장비에, 야생동물 책자까지 골고루 갖춰져 있었으니…. 우린 한참동안 배가 아프게 웃었습니다.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에선 갑작스런 폭설로 3일 동안 갇혀있기도 하고 경북 봉화(확인요)에서는 묵고있던 방의 보일러가 고장이 나 식용유가 꽁꽁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방에서 잠을 청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온 해였습니다. 체감온도는 영하 30도를 웃돌고 강풍으로 앞을 보기도 힘든 산행에 눈은 무릎까지 빠져서 걷기도 힘든 40여 일이었습니다. 아침 6시에 눈을 떠, 하루종일 산을 오르느라 추위에 지쳐 후들거리는 다리를 힘겹게 옮겨놓으며 생각하곤 했습니다. 과연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일까요?

우리의 산은 올무와 덫으로 온통 옥죄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수거한 밀렵도구는 모두 142개입니다. 여전히 야생동물들이 다니는 길목을 노리고 있을 수많은 덫과 올무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 40여 일의 날들 동안 우리가 만난 동물은 딱 6마리였습니다. 인적 없는 깊은 산속을 며칠씩 헤매고 다녀도 토끼 한 마리 보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 내려온 적이 더 많았지요. 얼마 전에는 산양 세 마리가 밀렵꾼에게 희생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산양은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보호동물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밀렵은 더욱 많겠지요. 그러나 삼척, 태백, 봉화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발견한 수많은 산양 똥과 발자국은 한가닥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자연 환경은 우리세대의 것만이 아닌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입니다. 아이들이 뒷산에 서 토끼나 족제비와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매우 참담하기만 합니다. 머지않아 아이들이 동물원에서 토끼를 구경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녹색연합 식구들을 비롯해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힘든 일정에 열악한 환경과 장비 그리고 저의 숱한 잔소리 속에서도 항상 웃으며 따르던 저희 팀원들에게 수고했다 전하고 싶습니다.

그간 우리의 활동을 취재 VTR 영상기로 촬영해 주신 서울 영상집단의 공미연 씨, 프로다운 정신으로 제일 먼저, 많이 뛰면서 고생하여 주었고요. 최영두 씨는 제대후 불과 2개월만에 저희와 합류하여 사진 촬영과 식량을 담당하여 팀원들의 건강에 힘써온 주방장입니다. 식사준비와 설거지까지 귀찮은 일을 불평불만 없이 해주었고요. 용인대 태권도 학과에 복학할 예정인 태권도 4단의 유단자입니다. 막내 이정연 씨는 숙명여대 생물학과 휴학중으로 동물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 참여하게 되었고요. 팀의 핵심인 자금관리와 기록까지 맡아주었습니다. 열악한 재정을 꾸려 나가느라 밤늦게까지 펜과 씨름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아 팀원들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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