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 그 네번째 이야기

2001.07.26 | 미분류

2001 년 07 월 26 일

백두대간 종주 그 네번째 이야기

지난 5월 26일부터 두달간 진행되었던 백두대간 등산로 실태조사도 이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큰 사고없이 무사히 활동을 마친 조사팀을 환영하기 위한 사람들도 내일(금) 오전에 진부령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건강하고 웃는 얼굴로 활동하고 있는 조사팀에게 많은 격려 바랍니다.

•일 정 : 2001. 7. 2 ∼ 3 / 구 간 : 고치재 ∼ 박달령 ∼ 곰넘이재
•일 정 : 2001. 7. 4 ∼ 5 / 구 간 : 곰넘이재 ∼ 화방재 ∼ 피재
•일 정 : 2001. 7. 6 ∼ 8 / 구 간 : 피재 ∼ 구부시령 ∼ 댓재
•일 정 : 2001. 7. 9 ∼ 10 / 구 간 : 댓재 ∼ 고적대 ∼ 백봉령

△ 7월 2일 고치재에서 박달령까지

05:30 기상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거북하다. 어제 낮에 삼킨 자두씨가 원인이다. 빨리 나와야 할텐데… 방법은 많이 먹고 잘 싸는 것.

지원을 나왔던 녹색연합 윤기돈 간사가 우리를 고치재까지 태워다 준다. 녹색연합 차량은 늘 불안하다. 차량에 문제가 있어도 제대로 정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이어와 엔진에 문제가 있고, 게다가 연료까지 바닥난 상태다. 윤기돈 간사가 무사히 올라가야 할텐데, 걱정이다.

고치령에는 단종 영정이 있었던 신령각이 있었다. 하지만 모 종교집단의 신자에 의해 신당은 불태워지고 영정도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신앙시설이건 문화시설이건 신령각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며, 주민들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을 터이다. 그런데 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 이제는 특정종교집단의 배타적 신앙관에 의해 ‘미신타파’라는 이름으로 태워지고 없애지는 있다.

고치재에서 854봉까지는 길이 평탄해서 걷기엔 좋으나 날씨가 좋지 않다. 바람은 없고 안개가 가득, 습한 기운이 몸에 퍼진다.

소백산 산행을 함께 했던 이재현 님이 우리보다 앞서가면서 한빛은행 표지기를 모조리 땐 모양. 고개 이정표마다 한뭉큼되는 표지기가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의 동지가 생긴 것이다. 중간에 한빛은행 표지기가 그대로 붙어 있어 이상했는데, 표지기 뒤쪽에 이재현 님의 쓴 글이 있다. “하루 만남에 정이 들었나 봅니다. 자꾸 뒤를 보게 되는군요.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요. 내내 건강들 하세요.”

늦은목이 앞에 커다란 모습으로 우뚝 선 선달산(1236m)이 우리를 제압한다. 적어도 고도 200미터를 치고 올라가야 할 모양이다. 오랜만에 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선달산을 오른다.

19:00 박달령 도착 / 운행종료
박달령에서 큰짐이 있는 물야면 오전마을에 있는 ‘통나무집 가든'(음식점)으로 이동했다. 임도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음식점 주인이 “젊었을 때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며 음식점 앞 마당을 흔쾌히 열어주신다.

△ 7월 3일 박달령에서 곰넘이재까지

기상 05:00
아침에 일어나 박달령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두시간을 걸려야 오를텐데… 걱정하며 임도 입구에 들어서니 벌목을 하는 인부들을 실어나를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정을 얘기하니 조금만 기다리다 같이가자 한다. 한 분이 난데없이 우리에게 “뱀은 잡아 먹어도 되죠?”라고 묻는다. 우리 일행이 대답하기도 전에 자기들끼리 논쟁(?)이다. “사람들을 공격하기 때문에 뱀은 잡아먹어도 돼” “문제는 뱀이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살기(보신을) 위해 뱀을 죽이는 거야”

옥돌봉을 힘들게 오른 뒤 도래기재로 내려온다. 도래기재는 옥돌봉과 구룡산 사이에 걸린 해발 780m의 고개로 태백산과 소백산을 가르고 강원도와 경상도를 잇는다. 도래기재의 이름은 춘양면 서벽리의 도래기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도래기는 도롱이의 경상도 사투리다.

도래기재에서 설악산 박그림 선생님과 성공회대 신영복 선생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신 선생님께서 더불어숲 게시판에 올린 내 글을 보셨다 한다. “절 때문에 희양산에 오르지 못한 것, 선희 씨 다칠뻔한 이야기 다 보았어요. 일정 참고하고 있어요. 안부들 전해주세요.” 하신다. 산에 올라 야영하며 별을 보고 싶다 하셨는데 정말 한 번 오실려나… 거리가 멀어 오시기 힘들텐테…

구룡산을 정말 힘들게 올랐다. 점심 먹고 오르기 힘든 길이라 정상에 오른 뒤에 먹자며 오르다보니 점심 때를 놓친 것이다. 정상에 올라 기다리니 평소에 가장 늦던 윤수 씨가 씩씩거리며 달려왔다. “점심을 제때에 먹어야지, 몸도 허기지고 밥도 쉬면 어떡하냐”며 화를 낸다.

그늘을 찾는다며 정상 바로 밑에 자리를 잡았지만 진드기 때문에 여성대원들은 아예 자리에 앉지 못한다. “진드기에 물리는 것보다는 뜨거운 것이 좋아” 결국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정상으로 이동할 수밖에…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기 위해 판쵸우의, 지팡이들이 모두 동원된다. 크고 넓진 않지만 작은 천막이 만들어진다.

왕오색나비와 표범나비가 우리 주위를 맴돌다 땀과 냄새로 얼룩진 내 배낭커버와 작은 배낭에 앉아 길다란 혀로 한참을 무언가 빨아댄다. 일행들이 “나비들도 찐내를 좋아하나봐요.”하며 놀려댄다.

구룡산에서 곰넘이재로 넘어가는 길은 그야말로 관목과 잡풀로 어우러진 ‘짜증나는 길’이다. 바람도 없다. 주변의 활엽수림에 비해 왜 이곳만 잡목, 잡풀들이 우거졌나 했더니 산불예방을 막기 위한 방화선이다. 본디 폭이 10미터가 넘었으나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다.

17:00 곰넘이재 도착 / 운행종료
무수한 수풀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방화선을 빠져나오자 오늘 목적지인 곰넘이재다. 곰넘이재에서 짐이 있는 참새골 마을로 내려가는 것도 걱정이다. 4㎞ 이상을 내려갈 생각으로 터벅터벅 내려가다보니 2㎞ 정도 지나 민가가 한 채 나타나고 우리 배낭들이 보인다. 반갑고 기쁘다. 더 멀리 내려가지 않아도 되니… 짐을 이렇듯 가까이 옮겨준 영주국유림관리소 직원이 고맙다.

이재화(78세) 어르신이 홀로 사시는 집.
뒤로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는…

민가 앞에 짐을 풀고 야영을 하기로 했다. 그 곳 민가는 이재화(78세) 어르신이 홀로 사시는 집이다. 뒤로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계곡이 흐르는… 이른바 ‘배산임수’에 맞는 집 구조다. 집 주변에 고추, 감자, 옥수수 텃밭이 있고, 뒷산 중턱에는 토봉이 설치돼 있었다. 영리하고 건강한 진돗개 ‘메리’가 어르신의 유일한 벗이다. 육남매가 울산, 마산, 거제 등에서 직장생활(노동자)을 한다고 한다. “휴가때만 되면 이 집은 아들·딸, 사위·며느리, 친손자·외손자들이 모두 와서 방이건 마당이건 모두 꽉 찬다.” 하신다. 높고 깊은 산과 계곡이 있고 정겨운 고향집이 있는 오지마을, 이보다 더 좋은 피서지가 어디 있겠는가.

△ 7월 4일 곰넘이재에서 화방재까지

05:10 기상
이재화 할아버지 댁의 진돗개 ‘메리’가 밤새 숲으로 나갔다 이슬에 몸이 가득 젖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야성을 잃어버린 채 밧줄에 묶여 주인들이 해주는 대로 생활하는 도시의 개들과는 전혀 다르다. 영특하기도 하고, 야성도 적당히 깃들어 있다. 메리는 밤새 숲속에서 무엇을 했을까?

태백산까지의 등산로 표지

참새골 마을에서 곰넘이재 가는 길에 정희 씨와 여행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이도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대간 종주를 하면서 여행에 대한 인식이 더 깊고 넓어진 듯하다. 불교정토원의  해외봉사프로그램에 참여해 인도 등 바깥나라를 더 알고 싶다 한다. 나라 안팎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살찌우길 바란다.

곰넘이재에서 신선봉 오르는 길, 여전히 방화선의 흔적이 보이고, 관목과 잡풀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며칠 전부터 귀가 아플 정도로 계속 울려대는 전투기들의 굉음이 더욱 커진다. 이 구간을 짜증내지 않고 지날 수는 없을 것이다. 빨리 태백산으로 올라서야 할 것 같다.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까지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산들이 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곳은 단군의 아들인 부소의 이름을 딴 태백산 부소봉(1,547m)… 그 곳에서 태백산 천제단을 오르자 사방팔방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대간 능선 위로 구룡산, 선달산, 소백산이 우뚝 솟아있다. 함백산, 매봉산 등 우리가 가야 할 산들도 ‘언제 올 예정이냐, 어서 와서 내 품에 안기거라’ 하는 듯하다.

태백산 공군 필승전술사격장
천제단(1561m)에서 백두대간 종주 조사를 무사히 끝내게 해주십사 하는 기도를 드리고, 잠시 쉬고 있을 무렵 귀청을 때리던 폭음의 주인공 전투기들의 에어쇼(?)가 펼쳐진다. 국군의 날, 어린이날에 펼쳐지는 에어쇼와는 차원이 다르다. 쇼가 아니라 실제 폭격을 하듯이 태백산 천평계곡으로 고공낙하를 한 뒤 뒤집힐 듯 곡예를 하면서 다시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태백산에 자리잡고 있는 공군전술사격장

태백산 남서쪽 십승지지 천평계곡에 자리잡은 ‘공군 필승전술사격장’. 세계에서 미국, 이스라엘, 한국 밖에 없다는 공군의 공대지 전술사격장이다. 전투기가 사격장 상공에 도달하면 가장 먼저 기다리는 것은 사격장 주변 레이더 기지에서 보내는 경보신호다. 조종사는 레이더의 추적을 피해야 하고 지상의 레이더는 비행기를 놓쳐서는 안 되는, 서로 적이 되어 펼치는 가상훈련이다. 79년 150만평에 달하는 천평계곡에 전술사격장이 들어서게 된 이유는 ‘지형이 북한과 유사하고 주거지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맞았기 때문이란다. 특히 이 사격장은 주변에서 미군폭격장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주한미군과 오키나와 주둔 주일미군 전투기까지 날아와 훈련을 한다고 한다. 부지는 한국군이 제공하고, 레이더 등 주요장비는 미군이 맡는 두 나라가 5:5 지분을 갖고 만들어진 훈련장이란다.

하나의 민족을 둘로 갈라놓고, 그것도 모자라 한반도를 전쟁시험터로 삼는 미국의 군사전략은 즉각 폐기돼야만 한다. ‘세계 안보’를 내세우지만 그들의 군사전략은 패권적이며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을 뿐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하루빨리 앞당길 수 있는 방안은 미국의 정치군사전략이 바뀌고, 남북한이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남북협력체제를 만들어내는 데 있을 것이다.

주목의 고통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1567m)에서 내려오는 길은 주목군락지다. 등산로 주변 주목들이 등산객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자 태백시에서 주목을 살린다며 ‘상처입은 주목’에 외과수술(나무의 썪은 부분에 스폰지를 넣고 시멘트를 얇게 입히는)을 해놓았다. 그런데 어떤 괘씸한 놈이 외과수술을 받은 주목마다 전부 망치질(?)을 해놓았다. 날려버린 수술비도 문제지만 수술로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나무를 저 모양으로 만들다니…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은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사람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18:15 화방재 도착 / 운행종료
화방재에서 1㎞ 정도 내려온 어평마을 입구에서 야영을 한다.

저녁식사를 거의 끝마치고 있을 때 조범준 님이 왔다. 조범준 님은 야생동물연합이란 단체에서 일하며 녹색연합에도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는 야생동물 전문가이다. 지난 3월 울진 훈련 때 선희 씨와 나는 울진지역 야생동물을 조사하는 그이를 이틀동안 쫓아다니며, 야생동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이는 원래 우리와 함께 일주일 동안 백두대간 강원도 구간을 함께 종주하기로 했으나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이가 들고 온 음료수와 캔 맥주를 마시며 그이가 펼쳐놓는 야생동물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 7월 5일 화방재에서 피재까지

기상 05:05
비가 올듯 말듯 잔뜩 흐린 날씨다.

화방재(935m)에서 수리봉(1214m)까지 이르는 길은 에누리 없는 오르막이다. 하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올랐다. 바람의 세기가 전과 다르다. 비올 것을 예보하는가, 서늘하다, 춥다.

만항재에 도착해 함백산을 바라보니 구름의 이동이 심상치 않다. 함백산(1573m)은 송전탑, 통신시설, 포장도로, 국가대표 선수 훈련장 등 갖가지 시설물들 때문에 산의 정기가 위협받고 있었다.

석탄산업 사양화와 광산지역의 변화
함백산에 오르니 강원도 지역 높은 산줄기들과 그 곳에 깃든 정선, 사북, 고한, 태백이 한 눈에 들어온다. 89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실시되기 전까지만 해도 태백, 사북, 고한, 정선은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는 목돈을 건질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제일의 광업지역이었던 이 곳은 89년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그 많던 석탄광산들이 문을 닫았다(이 곳 함백산 주위에도 한 때는 수십 개가 넘는 탄광이 즐비할 정도였다고 한다 – 지금은 한 곳만 운영).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과 광부들에 기대어 돈벌이를 했던 장사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정부의 석탄사양화정책으로 전체 탄광의 95%가 감소하고 태백인구가 88년 6만2천2백 59명에서 94년말 1만4천9백25명으로 76%나 감소했다. 고한-사북의 경우 토지가격이 88년도에 비해 60%정도나 하락할 정도로 경기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지역의 공동화’ 이때부터 이곳 사람들은 핵폐기장, 카지노, 군부대, 대학 등 무엇이든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강원도의회, 정선군의회 의원들과 태백지역 사회단체 인사들이 제주를 찾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제주도를 전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을 본뜬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특별법 제정을 가장 강력히 반대했던 제주범도민회에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는 강원남부지역 기관, 단체들이 찾아오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다. “아무리 지역이 황폐화, 공동화 위기에 처해 있더라도 핵폐기장이나 카지노 유치는 너무한 것 아니냐”는 우리의 의견에 그들은 “지역 자체가 없어질 위기인데 환경보전이니 정신문화 훼손이니 하는 말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 결국 지난해 정선에 전국 최초로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스몰카지노가 들어섰고 머지않아 훨씬 큰 규모의 메인카지노가 들어서게 된다. 정선카지노의 폐해는 이미 언론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과연 카지노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인지 아니면 ‘지역을 황폐화시키는 도박판’이 될지…

선두와 후미 엇갈린 행보
함백산 정상에 올라 우리 뒤에 쫓아오리라 생각했던 용미 씨와 정희 씨를 한참동안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갑자기 안개가 가득하고, 바람도 거세지기 시작했다. 큰비가 내릴 지도 모르겠다. 한참동안 기다리다 등산로 주변 곳곳에 먼저 움직인다는 표시를 하고 네 명의 대원부터 정상에서 내려왔다. 날씨도 좋지 않은데 두 대원이 길을 잃으면 큰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함백을 지나 내리막 등산로 바닥에 ‘용미, 정희 먼저 감’이란 쪽지가 놓여 있었다. 다행이다. 근처 헬기장에서 기다리던 두 대원에게 사정을 들으니 우리 뒤를 따르던 두 대원이 우리가 잠시 쉬는 사이 포장도로를 통해 앞서나가 정상에 먼저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두 대원은 우리가 먼저 정상에 도착했다가 내려간 것으로 예상, 쉬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내려왔다고 한다. 전혀 엇갈린 판단으로 앞서 나간 대원이나 뒤쫓아 오던 대원들 모두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심했다.

남한 땅에서 가장 높은 고개로 첫 손 꼽히는 싸리재(두문동재 1268m)에 도착하니 정선군에서 세워놓은 표지석에 정선아라리 애정편 가사가 적혀 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주게/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근처 함백산 쉼터에서 동동주와 감자전으로 힘을 보탠 뒤 싸리재를 건너 비단봉으로 향했다.

비단봉을 오르다보니 갑자기 구름이 걷히면서 날씨가 좋아진다. 비단봉 위에서 바라본 조망이 그만이다. 태백산, 함백산, 중함백, 은대봉 등이 한 눈에 들어오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철도역인 추전역이 보인다.

매봉산은 산이 아니라 밭.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매봉산 고랭지 채소밭

매봉산은 이제 산이 아니라 밭
비단봉에서 매봉산으로 들어서자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고랭지 채소밭(약 40만평?)이 열린다. 화학약품 냄새가 진동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온 산을 덮었다는 매봉산은 이제 온몸을 드러낸 채 배추밭으로 바뀌고 있었다. ‘산이 아니라 밭’이다. 하늘이 내려준 빗물이 매봉산에서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으로 갈라져 흐른다고 했는데… 윤수 씨가 분개한 목소리로 한마디 “비탈에 뿌리는 엄청난 비료와 농약이 비가 내릴 때마다 세 강으로 흘러든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느냐, 도대체 이 곳이 삼수령의 발원지가 맞느냐”

매봉산에서의 하룻밤
매봉산을 내려오는데 채소밭 옆에 있는 콘테이너(작업 인부들이 옷 갈아 입고 식사하는)가 보인다. 그 곳을 막 지나치려 하는데 김홍빈(38세), 최범순(35세) 님이 우리에게 음료수 한 잔 하고 가라 한다. 음료수로 목을 축이자 다시 소주를 내온다. 바로 아래 피재가 오늘의 목적지라면 예서 자고 가라 한다. 음료수 한잔이 소주 한잔으로 소주 한잔이 하룻밤 자고가는 것으로 이어져 버렸다. 못이기는 척 이곳에서 자고 가기로 한다.

함께 소주 한잔 나누는 데 이 곳 장인 소유의 땅 3만평을 책임지고 있는 김홍빈 님의 한마디가  매봉산 고랭지 채소밭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여기서 배추하는 사람들은 농사꾼이 아니라 장사꾼(투기꾼)이다.” 매봉산 자락에 삽을 들이댔던 화전민의 후예들은 이제는 이 밭의 주인이 아니라 일년에 넉 달만 일하는 반쪽짜리 인부로 바뀌었다. 대신에 스물 세 명의 외지인들이 1~3만평에 달하는 배추농사를 짓는 주인이 된 것이다.

사람 좋게 보이는 최범순 님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 귀농한 지 얼마되지 않는 농사꾼. 마라톤 선수 이봉주를 꼭 빼닮았다. 학생 때는 농활대장만 여러 차례 했다고 그이는 동해가 고향으로 동해의 자그마한 땅에 유기농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십대가 되면 가까운 벗 여섯 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기로 약속했다고… 선배 김홍빈 님을 도와 이 곳에서 배추농사를 하는 그이는 다른 밭에는 보통 14차례 농약을 뿌리는데 비해 자기들의 밭에는 농약 7회, 효소 7회 뿌린다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고 있다. 술자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그의 마지막 한마디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꼬박 혼자만 외롭게 이 콘테이너에서 살았는데 여러분들 때문에 오랜만에 좋은 자리를 갖게 돼 기쁘다. 고맙다.”

△ 7월 6일 피재에서 구부시령까지

05:10 기상
오늘 혹시 비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대원들의 뜻을 저버리고 새벽 날씨는 좋다. 오히려 안개가 가득한 것을 보아 날씨가 무더울 듯 하다.

먼저 일어나 배추밭을 둘러보던 범순 씨가 먼저 일어난 사람만 마시자며 직접 담은 효소를 물에 조금 희석시킨 뒤 한 잔 권한다.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배추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들어왔다. 어제 얘기 들었던 것과는 달리 욕쟁이 아주머니도 조용하고, 총각 범순 씨를 놀려댄다던 아주머니들도 “산 다니느라 힘들텐데 식사들 많이하라”는 말씀만 하실 뿐이다. 이 곳 매봉산 고랭지채소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일당은 겨우 2만5천원. 지금 태백에는 일한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저임금에도 닥치는 대로 돈 받는 일만 있으면 서로들 하겠다며 나선다고 한다.

피재 표지판

김홍빈 씨와 최범순 씨가 자신들의 차로 우리를 피재까지 태워다 준다. 피재는 하늘에서 내려온 빗방울이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으로 갈라져 서해와 남해 그리고 동해로 흘러든다는 삼수령(三水嶺)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인근에서는 옛날 세상이 어수선해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피난 들어오던 곳이라는 내력이 담겨 있는 이름이 ‘피재’라는 이름을 더 즐겨쓴다고 한다.

피재에서 임도를 따라 가다 숲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박그림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허영호와 한빛은행 종주대가 설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설악산 자연휴식년제 구간’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씀이 있었다. 백두대간 상에 있는 명산 중에 그나마 설악산만이 그들 대규모 종주대에게 피해를 입지않게 된 셈이다. 다행이다.

태백시 공설묘지 공사현장 모습

새목이에 다다를 즈음 왼쪽으로 큰 공사가 진행 중이다. 태백시 창죽동 공설묘지 공사 현장이다. 공설묘지가 들어서는 곳은 삼수령과 아주 가까이 있다. 태백시 개발계획에 따르면 창죽동 일대에는 스키장, 콘도, 호텔 시설 등 태백관광레저단지를 건설할 예정이다. 삼수령이나 백두대간 모두 위험한 처지가 된 셈이다.

997봉 오르는 길에 살모사 두 마리 발견. 느릿느릿 덤벙덤벙하다 뱀만 보면 갑자기 잽싸지는 윤수 씨의 카메라에 살모사가 얌전히 모델이 되어 준다.

점심 시간에 제주범도민회에 안부 전화를 했다. 9월 7일이면 창립10주년이 되는데, 명칭변경, 새 대표 선출 등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있는 모양이다. 조직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변화하는 조직에 나는 어떻게 참여하게 될까… 조직이 크게 변화하는 시기에 함께 논의하고 참여하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 사무처 활동가들이 원고료 등 푼푼이 모은 돈을 보내준다고 한다. 아주 아쉬운 상황이 될 때에만 받겠다며 지금껏 극구 사양하던 후원금을 고맙게 받기로 했다.  

예수원 기도원
구부시령에서 오늘 숙소를 예정한 ‘예수원 기도원’으로 이동했다. 태백시 하사미동 외나무골에 자리잡은 예수원 본원(기도원)은 신앙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삶을 배우려고자 하는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다.‘노동하는 것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다”라는 정신 아래 ‘십자가 지기’를 배우고‘받기보다는 주기’를 배우는 공동체가 예수원의 지향점이라고 한다. 1965년 성공회 대천득 신부가 건립한 이래 교파와 종파, 종교까지도 초월한 모임의 장으로서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대천득 신부의 부인이 직접 설계했다는 예수원의 모습은 아름답다. 비탈을 그대로 살려 지은 돌집, 작은 공간까지 활용한 꼼꼼함이 눈에 띈다.

비탈을 그대로 살린 아름다운 예수원 돌집을 이윤수 님이
밤에 촬영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에게 먹거리와 잠자리를 선뜻 내준 것도 이런 예수원의 정신에 따른 것이다. 기도원의 유테레사 님은 99년 녹색연합의 녹색순례도 기억하고 있었고, 태백지역 백두대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유테레사 님은 “기도원 앞에서 라면을 끊여 먹고, 담배꽁초를 마구 버리는 등산객들이 너무 꼴불견”이라고 지적했다.

△ 7월 7일 구부시령에서 댓재까지

기상 06:55
오늘 목적지인 댓재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아침을 여유있게 시작했다. 아침식사가 끝난 뒤 기도원 주변을 산책하고, 기도원에서 직접 만든 기념물품(엽서, 십자가 등)도 사고 기념촬영도 했다.

가시덤불과 잡목을 헤치며 덕항산 정상에 도착하여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다. 흔들리는 초소에 올라가니 주변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광동댐 이주단지와 청옥, 두타산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종주 삼척과 동해바다가 아스라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함백산이… 내려가기 싫은데 앞에서 대원들이 부른다.

발전소 굴뚝과 등대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삼척과 동해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삼척 해안가에 큰 굴뚝이 보이는데, 송 대장이 저것은 등대라고 한다. 다른 대원들도 윤수 씨를 빼면 암묵적으로 동의한 듯… 등대나 발전소 굴뚝을 본 적이 있느냐 물어봤더니 대부분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 직접 본적도 없는  그이들이 어떻게 등대와 발전소 굴뚝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송 대장과 나는 틀린 사람이 ‘회 한 그릇 사는 내기’를 했다. 나는 그에 덧붙여 굴뚝이 아니라면 날마다 몸을 씻겠다는 약속도 했다. 결국 이 내기의 결론은 이날 저녁 지원을 온 울진 원자력 발전소에 근무하는 서순환 님이 그것은 ‘삼척화력발전소의 굴뚝’이라는 말로 판가름 됐다.

광동댐 이주단지 고랭지 채소밭 전경

귀네미골
덕항산을 넘어 가니 제2의 매봉산 ‘귀네미골'(광동댐 이주단지)이다. 매봉산에는 못미치지만 그 곳에도 엄청난 규모의 고랭지 채소밭이 있었다. 예전에는 감자농사를 하던 이곳이 10여년 전 산 너머에 광동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민들이 귀네미에 정착, 배추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마을 전체가 한옥으로 예쁘게 지어져 있었는데 예전에는 농사를 짓는 계절에만 올라와 살았지만 지금은 아예 삶터를 이 곳으로 옮긴 것이다. 백두대간 파괴, 오염에 대한 걱정과 바위투성이 밭을 일구고 뙤약볕 무더위 속에 농사를 짓는 마을 주민들의 삶의 몸부림이 교차된다.

귀네미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 1039봉에 이르는 풀숲을 지나다 큰 벌에 쏘였다. 왼쪽 팔이 이내 붉어지고 크게 부어 올랐다. 벌침은 돈주고도 맞는다 했는데, 독이 아니라 백두대간 종주를 무사히 마치게 될 때까지 효험이 있는 약이 됐으면 좋겠다.

댓재 표지판

18:30 댓재 도착 / 운행 종료
계속된 잡목지대를 지나 황장산 정상에 올라서니 정면에 모레 우리가 오르게 될 동해의 명산 두타산과 청옥산이 보인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넘어서니 오늘 목적지인 댓재이다. 157

오늘 오전까지 숙소로 예약까지 했던 댓재휴게소에 도착했더니, 주인이 이미 공사장 인부들에게 우리들 잠자리를 주인이 내주었다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속으론 화가 치밀면서도 백두대간보전회 김원기 회장님이 소개해 준 집이라 뾰족한 수가 없다. 그래도 주인은 이곳 저곳 우리가 머물 집을 알아보다 휴게소 정면 아래쪽에 야영할 것을 권한다. 별 수 없다. 그 곳에라도 텐트를 칠 수밖에…

차량접촉사고
주인 집 일을 조금 거든 뒤(공사장에 있는 땔감용 나무 나르기), 그 집 차를 빌려 여주인과 윤수 씨와 함께 삼척 시내로 장을 보러 나갔다. 운행을 해서 피곤한 지라 고갯길 운전이 쉽지 않았다. 겨우 삼척까지 내려왔으나 삼척시내에서 그만 일을 내고 말았다. 조그만 골목길을 지나다 자동차 끝을 들이받은 것이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저쪽 승용차 후미등이 조금 망가진 정도였다. 하지만 최소한 10만원 안팎, 차 주인이 심술을 부리면 50만원까지 부를 수도 있다니 걱정이다.(이튿날 견적을 한 결과 14만원, 그나마 다행이다.)

지원대의 엄청난 물량지원
댓재에 다시 돌아오니 울진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는 더불어 숲 서순환(37세) 나무님이 회, 과일, 음료수, 떡 등 지원물품을 가득 들고 지원을 왔다.(아내 한영선님과 아들 재현이는 아랫마을 여관에 자리를 잡고). 노조 선거 뒤라 무척 바쁜 가운데에서도 일부러 이 곳까지 가족들과 함께 지원을 온 것이다. 서순환 님은 더불어 숲만이 아니라 작아읽새이자 녹색연합 회원이다. 잠시 뒤 더불어 숲의 이승혁, 유연아 나무님, 녹색연합 장주영, 박경화 간사와 노건 회원도 지원물품을 가득 들고 나타났다. 쌀, 미숫가루, 김치, 통닭, 캔맥주, 비타민 지원물품도 다양하고 양도 많았다. 더군다나 노촌 이구영 선생님과 더불어 숲의 나무님들이 후원금도 보내주셨으니… 이번 종주 중 가장 큰 지원을 받은 셈이다.

차량접촉사고로 다소 가라앉았던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저녁은 만찬이다. 이렇듯 좋은 날에 이렇듯 좋은 사람들과 이렇듯 좋은 안주에 이렇듯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렇듯 맛나게 술을 마실 수 있다니… 밤이 깊은 줄도 술이 취한 줄도 모른채 술잔이 돌아간다.

△ 7월 8일 댓재

오늘은 쉬는 날. 나는 삼척시내 피시방에서 종주기를 작성하고, 대원들은 목욕도 하고 머리도 잘랐다. 서순환 님 가족을 비롯한 지원팀은 강원도 국민관광지 1호인 무릉계곡에 나들이 갔다.

삼척에 사는 서순환 님의 동료이자 더불어 숲의 나무이기도 한 채상근 님이 대원들 점심(고기부페)도 사주고, 집으로 데려가 차와 과일도 내주셨다.(나는 피시방에서 짜장면으로 배를 채웠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 댓재휴게소에 도착하니 다시 또 어제 비슷한 일이 생겼다. 주인이 우리에게 방을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어제부터 묻어둔 우리에 대한 불만이 이래저래 터져나왔고, “아무 말 필요없다. 무조건 나가라”는 얘기만 있을 뿐이었다. 오늘 도착한 녹색연합 서재철 국장과 김상철 님, 노건, 이승혁 님이 계속해서 설득하고 대원들이 사과한 뒤에서야 겨우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 7월 9일 댓재에서 고적대까지

기상 05:30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이 시원하다. 하지만 날씨는 제법 더울 것 같다.

어제 지원을 나왔던 녹색연합 서재철 자연생태국장과 김상철 님은 돌아가고, 그제 지원을 나왔던 녹색연합 장주영 간사와 노건 회원은 대원들의 권유(협박?)로 두타산에 함께 오르기로 했다. 더불어 숲 이승혁 님은 “누가 죽나 보자”며 대관령까지 닷새동안 함께 산행을 하기로 했다. 그래 정말 누가 죽나 봅시다, 부디 무사히 서울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두타산 정상까지 함께 오르고 돌아가겠다던 장주영, 노건 님은 중도에 포기 댓재로 다시 돌아섰다.

두타산에는 세 가지 모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 권력을 가졌던 양반들이 본 아름다운 경치와 불가의 사람들이 전하는 두타, 그리고 두타산을 신으로 섬기던 민중의 신앙이 그것이다. 불가에서는 두타(頭陀)란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 12가지 수련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두타산에서 이러저런 욕심들을 비우고 맑고 고운 마음으로 청옥산을 올라보면 어떠할까.

땀을 뻘뻘 흘리며 두타산 비탈길을 오르니 정상이다. 두타산 정상(1353m)에 오르니 북쪽에서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주변 산군들이 보인다. 국내 최대의 고랭지채소밭인 매봉산이 벌거숭이 몸통을 드러내고 있다. 동해시도 가깝다. 두타산은 골산, 청옥산은 육산이라더니 청옥산의 산세가 무척 부드럽다.

고적대에서 바라본 무릉계곡과 동해시.
마치 아파트처럼 늘어선 계곡의 바위군, 동해시에서
무릉계곡으로 들어오는 길목엔 시멘트 공장이 즐비하다.

두타산에서 내려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니 청옥산 정상(1404m), 청옥산에서 다시 내려와 고적대를 향한다. 힘든 바위길을 타고 오른 고적대(1354m), 그곳에서 바라본 무릉계곡의 커다란 바위들은 마치 아파트를 지어놓은 듯 일정하게 늘어선 모습이다. 하지만 강원도 국민관광지 제1호이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릉계곡도 훼손의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계곡 아래쪽은 석회석 채취로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쌍용자원개발(주)를 비롯한 시멘트 공장, 채석장이 여럿 눈에 띤다. 저곳이 우리나라 최대의 시멘트 생산지라고 하니… 무릉계곡이 온전히 남아있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어리석은 것은 아닐까.

고적대에서 계곡을 타고 내려오면 임도가 나온다. 임도(林道)란 산림관리와 산불방지, 목재수송을 위해 산림 곳곳에 건설한 도로이다. 그러나 임도를 무리하게 건설하면서 토사붕괴나 토사유출의 사례가 빈발하고, 각종 공사와 불법행위(밀렵, 폐기물 무단 투기 등) 등이 임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백두대간 역시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임도 때문에 여기저기 토막난 상태다. 특히 이곳 고적대 주변은 총 연장길이가 100여㎞로서 단일 임도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임도의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하고, 백두대간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백두대간보전회(동해)의 김원기 회장님이 우리를 지원하러 오셨다. 식사를 하고, 김 회장님이 사온 수박도 먹으면서 허영호와 한빛은행종주대의 문제점, 백두대간, 산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임도 주변은 반딧불이 천국이다. 반딧불이가 우리 주변을 왔다갔다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반딧불이’란 딱정벌레목(目) 반딧불이과(科)에 속하는 곤충으로 지구상 수 만 종의 곤충 중에서 형광빛을 뿜는 유일한 곤충이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환경파괴와 오염, 농약 등에 의해 시골에서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라 맑고 깨끗한 환경이 아니면 이제는 볼 수가 없는 곤충인데… 불을 모두 끄고 반딧불이가 벌이는 축제를 지켜본다. 반딜불이만이 아니라 하늘의 별자리도 유난히 밝게 빛난다.

△ 7월 10일 고적대에서 백봉령까지

기상 05:00
아침에 일어나니 텐트 주변에 너구리가 다녀간 흔적이 보인다. 먹거리를 찾으러 왔을까, 자기 땅을 넘보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싶어서 왔을까?

김원기 회장님과 기념촬영,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다시 산 위로 올라간다. 골짜기에 이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계곡에서 능선에 올라서니 나무들이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삼척과 동해 주변의 산과 계곡,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엉겅퀴와 벌

힘들게 이기령(815m)을 지나 상월산을 오르다. 상월산 바로 지난 봉우리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자리에 누웠으나 어느 곳이나 뜨겁다. 대원들이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잠시 낮잠을 잔다. 먹고 쉬고 자는 것도 좋지만 덥다, 뜨겁다 빨리 내려가자.

우리댁의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얽어매고 찌거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헐께눈에 노가지나무 뻐덕지게 부끔덕/세쪼각을 세뿔에 바싹 매달고 엽전 석양/웃짐 지고 강능 삼척으로 소금사러 가셨는데/백복령 구비 부디 잘다녀 오세요.(정선엮음아라리 – 진용선의 정선아라리가사집에서)

예전에 정선 땅은 강릉과 삼척에서 나는 동해의 소금에 의지해 살았다고 한다. 백봉령(780m)은 바로 그 삼척에서 소금이 넘어오는 소중한 길목이었다. 백봉령에 도착하니 금세 비가 쏟아진다. 근처 가게에서 감자전, 메밀전을 동동주를 한 잔씩 돌린다. 그곳에서 주인으로부터 소백산 구간을 함께 산행한 이재현 님 이야기를 들었다. 이재현(35세) 씨가 이곳으로 50ℓ 쓰레기봉투에 가득찬 쓰레기를 들고 왔다는 것이다. 가게주인에 따르면 이 씨는 당시 가게에 머물던 ‘한빛은행 대장정팀’에게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자신이 가져온 쓰레기를 내던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빛은행 관계자는 “죄송하다. 우리는 주의사항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빛은행 대장정팀의 ‘총지휘자’ 허영호 씨는 근처 마을 민박집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이 씨와 마주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잠시 뒤 강릉의 더불어숲 나무인 유선기 님과 직장 동료 최윤구 님이 통닭, 피자, 과일 등을 들고 백봉령에 도착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유선기 님이 한아름 싸들고 온 먹거리를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유선기 님 차로 백봉령에서 내려와 오늘 머물기로 한 군대마을에 도착했으나 마을회관은 없다. 군대가 머물던 곳이라 이름 지어진 군대마을, 그곳 주변에 있는 민박집을 숙소로 잡았다.  

계속…【사이버 녹색연합】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