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꼬리칸 10년, “난 웅담 기계가 아니다”

2013.08.28 |

설국열차 꼬리칸 10년, “난 웅담 기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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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년’
전세계에는 말레이곰, 자이언트팬더, 안경곰, 아시아흑곰, 느림보곰, 아메리카흑곰, 북극곰, 불곰 등 8종의 곰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국제협약)의 부속서I, II에 포함된 ‘국제적 멸종위기종’입니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은 지리산에서 토종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흑곰 중 ‘우수리산’으로 아주 ‘귀한 곰’입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딱 10년’만 살 수 있는 기구한 운명의 곰도 있습니다.
10살이 되면, 오로지 웅담만을 위해 합법적인 죽임을 당하는 곰. 바로 ‘사육곰’입니다.
사육곰의 운명은 흡사 ‘설국열차 꼬리칸 사람들’과 같습니다. 설국열차의 대사처럼, “너희는 그저 꼬리칸에서만 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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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2미터, 세로 2미터의 ‘꼬리칸’
환경부가 2005년에 작성한 ‘사육곰 관리지침’에 따르면 사육곰 한 마리당 사육장 크기는 가로2미터, 세로2미터면 충분합니다.
이 또한 법적 근거가 없는 단순한 권고사항입니다. 실제 사육곰 농장을 둘러보면 공장식 사육과 다를 바 없습니다. 동물복지는 딴세상, 별나라 이야기입니다.
20년 전에 제작한 철근 구조물은 쉽게 일그러집니다. 밥그릇과 똥통이 한 공간에 뒤엉켜 있습니다.
개사료, 소사료, 먹다남은 잔반, 반품된 빵 등 닥치는대로 먹입니다.
야생 반달가슴곰 한 마리는 최소한 4㎢의 활동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반면 ‘꼬리칸’ 사육곰은 4㎡의 철창에서 10년을 지내야 ‘그나마’ 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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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개 농가, 998마리

2012년 7월 현재, 전국 53개 곰사육 농가에 총 998마리의 사육곰이 있습니다.

아시아흑곰이 대부분이고 말레이곰, 불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 사육장에서 다른 아종끼리 뒤섞이다보니 대부분이 ‘교잡종’입니다.
암컷은 624마리, 수컷은 326마리로 2012년에 확인되었습니다. 1마리를 키우는 농가가 있는 반면, 252마리를 키우는 농가도 있습니다.
한강청(인천, 남양주, 용인, 평택, 파주, 화성, 김포, 안성, 포천, 연천), 금강청(진천, 보은, 보령, 당진, 연기), 영산강(담양, 고흥, 장흥, 무안, 나주, 보성, 북제주),
낙동강청(울주, 양산), 원주청(화천, 평창, 원주, 동해, 고성, 고성, 수원, 제천), 대구청(영천, 의성, 군위, 봉화, 경주, 경산), 전주청(남원) 등 지방환경청 모든 곳에 사육곰 농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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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이탈, 정신 이상
4㎡의 공간에서 10년을 산다면 어떨까요?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사육곰의 약 10% 가량이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끔찍합니다.
갓 태어난 새끼가 다른 곰에게 물려 한쪽 팔을 잃었습니다. 양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은 사육곰의 눈빛은 두려움에 가득합니다.
뜨겁게 달궈진 쇠창살을 딛고 있기에 발바닥이 쩍쩍 갈라집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한쪽 눈을 잃은 곰도 있습니다.
어떤 곰은 1시간 동안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왔다갔다 합니다. 지속적으로 머리를 좌우로 흔듭니다. 불안한 상황, “틀에 박힌 것 같이 의미없이 반복되는 행동”, 바로 ‘정형행동’입니다.
이 곰들도 10살이 되면 웅담을 위해 도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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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나서서, 불법 양산

사육곰 문제,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32년 전으로 돌아가봅니다.
1981년 당시 산림청은 농가소득 증대의 목적으로 곰 사육을 허용했고,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 곰 보호 여론이 높아지자 1985년 곰 수입을 중단했습니다.
여기서 ‘농가소득 증대의 목적’이란 오로지 재수출 용도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웅담이나 피, 가죽을 이용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조차도 ‘농가소득 증대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헷갈렸습니다.
일례로 경기도 광주에 1981년 곰 한 마리가 출현해 사살되었는데, 당시 광주시청이 직접 주관해 웅담과 고기를 경매에 붙였습니다.
경매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천6백만원. 행정부가 직접 웅담을 포함한 모든 곰의 부산물을 팔았는데, 이는 명백한 불법이었습니다.
정확한 법 조항도 없고, 법에 대한 이해도 없이 곰사육 농가를 방치하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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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사육을 방치하는 대한민국의 ‘국격’
2013년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사육곰 정책 폐지를 위한 두 건의 특별법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4월부터 논의된 법안은 6월에도 논의되지 못하고, 9월 정기회로 넘겨진 상황입니다.
녹색연합은 사육곰협회, 환경부, 동물보호단체, 관련 전문가 등과 함께 약 10년 동안 한국의 곰사육 폐지를 위한 ‘민관협의체’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육곰 폐지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는 단 한 발도 진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환경부장관은 “정부가 곰 사육을 장려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며 곰사육 농가가 알아서 해결하라며 발뺌입니다.
국회의원들은 “뭐, 곰 한마리 때문에 특별법을 만들만큼 한가하지 않아”라는 반응입니다.
곰사육을 방치하는 것은 행정부나 입법부나 다를 바 없습니다.
웅담을 취하기 위해 멸종위기종 도축을 허용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격’입니까? 부끄럽습니다. 정부가 책임지고 올해는 꼭, 풀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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