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잎에 앉아 있는 눈들은 따갑지 않을까? – 녹색희망배달부의 서울성곽 탐방기

2014.02.13 | 행사/교육/공지

소나무잎에 앉아 있는 눈들은 따갑지 않을까?
녹색희망을 전하는 배달부의 서울성곽 탐방기!

2월 9일, 첫 번째 녹색희망배달부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이 날 아침에 저는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신분증, 등산화, 따뜻한 물 등. 녹차와 생강을 넣어 끓인 물을 보온병에 넣었습니다.

저는 걷는 것과 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남을 때 동네를 걷거나 공원을 뛰곤 합니다. 가끔 마라톤 대회에도 나가고 회사동료와 탄천을 뛰기도 합니다. 걷는 것과 뛰는 것은 제가 생각한 그 이상의 재미가 있고 그것으로 인해 저는 활력을 얻습니다. 녹색희망배달을 처음 했을 때 자전거로 배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걸어서 배달을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배달하는 것보다 걸어서 배달하는 게 더 재밌고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 저와 같은 배달부들의 송년모임에서 저는 배달부들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배달부들은 대부분 활동적이고 저처럼 걷거나 뛰는 것을 좋아해 보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분기마다 모임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서울성곽길, 수원 화성, 성남 남한산성, 시흥 관곡지로 장소가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첫 번째 모임입니다.

이날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 밖에 12시 55분쯤 도착했습니다. 지하철 출구에서 계단을 올라오는데 바로 햇살님이 보입니다. 햇살님 얼굴에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씌여있었습니다. 조금 후에 오렌지색 두꺼운 다운자켓을 입으신 허박님이 오셨습니다. 우리 셋은 버스를 타고 녹색연합 사무실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전에 이 길을 따라 녹색희망과 작아를 가지러 녹색연합 사무실에 왔었는데.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조금 올라가면 뽕나무가 가득한 선잠단지가 있고, 봄과 가을에 개방하는 간송미술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쪽에는 대사관들과 길상사가 있습니다. 이 주변은 저에게는 신비롭고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오른쪽 주택가에 녹색바탕에 하얀글자로 ‘녹색연합’이 씌여진 간판이 보입니다. 우리는 저 간판이 더 눈에 띄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런 지금 상태도 좋습니다. 저에게 녹색연합은 보물입니다. 눈에 잘 안띄는 게 낫지요. 아는 사람들만 아는 보물!

조금 후에 자청비님이 보입니다. 자청비님의 복장과 기세가 남다르십니다. 자청비님은 이후로 우리를 안내하고 이끄셨습니다.

2014_1 2014_2

우리는 사진에서 혜화동에 있는 녹색 화살표에서 출발하여 숙정문을 지나 창의문까지 걸을 계획입니다. 중간에 청와대 근처를 지나므로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길에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좀 미끄러웠지만 눈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저께 우아하게 눈이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좋았으나 쌓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하얀 눈들이 저렇게 생을 마치다니! 그런데 여기에는 눈들이 이렇게 잘 쌓여 있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나무들에 쌓인 눈들 좀 보세요. 이날 눈풍경이 아주 좋았습니다. 허박님은 녹색연합 사무실 근처지만 이렇게 멀리까지 온 것은 처음이시라고 합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지요.

2014_3

성벽을 살펴보면 예전에 쌓은 벽돌들과 새로 쌓은 벽돌들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벽돌에 있는 녹색 이끼들이 보입니다. 벽돌에 붙어서 그 작은 생명들은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크게 다를 것이 무엇일까요. 모두 지구별에 사는 아름다운 생명들입니다.

보이는 곳마다 눈들이 있었고 모두 멋졌습니다! 사진찍으랴 눈감상하랴 걸으랴 저는 바쁘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말바위쪽으로 향했습니다.

북악산 서울성곽 탐방 출입 신청서를 작성하고 명찰을 받았습니다. 명찰을 목에 걸고 저는 고민했습니다. 이 명찰을 반납해야 할텐데 다시 이곳으로 와야할까? 자청비님이 아니랍니다. 다행이다! 사람이 하는 고민 대부분은 쓸데없는 고민이랍니다. 저 역시 쓸데없는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즐기면 될텐데. 가슴으로 느끼면 될텐데, 항상 머리는 가슴이 하는 일을 말립니다.

2014_6

이 사진은 이날 중고로 산 카메라의 접사 실력을 보기 위해 찍은 것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소나무잎에 앉아 있는 눈들은 따갑지 않을까? 그런데 왠지 포근해 보입니다. 공기놀이할 때 공기들을 손등 위에 가득 얻은 쫙 편 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2014_7

실제 이날 설경은 위 사진보다 훨씬 더 멋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진한 소나무 향기가 풍깁니다. 서울에 이런 멋진 길이 있다는 걸 왜 전엔 몰랐을까요? 그래서 저는 배달부 모임을 여기서 또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좋았습니다. 간혹 외국인들도 보입니다.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가시는 아저씨들이 한 마디씩 하십니다.
“나무가 뒤틀린다면서?”
“충분히 말리지 않아서 그렇대”
“이명박이 임기내에 끝내려고 그랬대”
이 분들이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짐작이 갑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이렇게 빨리빨리 허술하게 돌아가는 세상이 아닐 겁니다.

2014_8

우리는 제법 넓은 곳에 왔고 여기에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어느새 모두 사라졌습니다. 할 수 없이 타이머를 이용하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2014_9

성벽은 끊임없이 이어져 있고 그 위에 쌓인 눈들도 끊임없이 보입니다.

2014_10

군데군데 초소로 보이는 작은 건물과 군인들이 보입니다. 이곳이 군사구역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2014_11

숙정문입니다. 이제 절반쯤 왔습니다. 이 때가 2시 5분쯤입니다. 1시 15분쯤 출발했으니 50분쯤 걸었습니다. 저 멀리 가지 위에 까마귀들이 보입니다. 그 중에 까치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까마귀와 까치가 일본과 중국에서 길조냐 흉조냐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2014_12

저 멀리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혹시 백운대가 아닐까요? 히말라야 분위기 납니다.

우리는 걸으며 얘기를 했습니다. 햇살님은 녹색연합 회원이 몇 명인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녹색당 얘기도 하고 녹색연합의 정치참여 얘기도 했습니다. 허박님은 부서가 달라졌지만 녹색희망배달부 활동을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배달부로서 담당자가 자주 바뀌는 게 좋지 않습니다. 저는 3월 30일 MBC한강마라톤에 참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며 걷다가 소소한 작은 것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은 큰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줄이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닐까요.

높은 산에 올라가야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서울성곽길을 걸어도 행복합니다. 해외여행을 해야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국내여행을 해도 행복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것들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행복이 숨어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지요.

길을 걷으면서 우리는 몸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고 몰랐던 것들을 깨닫기도 합니다. 왜 사람들은 길을 걸을까요? 같이 걷는 사람과 얘기하고 물과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길을 걸으며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풍경을 만납니다. 생각은 정리되고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2014_13우리는 여기에서 쉬었습니다. 자청비님이 가져오신 따뜻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저는 작년에 아름다운 지구인 상으로 배달부들이 받은 보온병 색깔이 다르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따뜻한 물을 먹으려고 회색 보온병을 꺼내자, 자청비님께서 받은 보온병은 자주색이라고 말하십니다. 이 보온병은 하단에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남에게 줄 수 없는 저만의 소중한 보온병입니다. 저 멀리 남산이 보이네요.

2014_14 2014_15

예전에 간첩이 청와대 근처에 왔을 때 총알들이 박힌 소나무랍니다. 몸에 박힌 총알들보다 저렇게 색칠해놓은 것이 이 소나무에게 더 가슴아픈 일일 것 같습니다.

힘든 급경사 계단입니다. 사람들은 주로 혜화문쪽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고 자청비님이 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갔습니다. 혜화문쪽으로 가는 길이 더 힘들다고 자청비님이 알려주셨습니다. 이 경사길 이후로 내려가는 길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가다가 물푸레나무에 대한 표지판 글을 봤는데 물푸레나무의 영어이름이 ‘Korean ash’였다. 어, 왜 ‘Korean’이 있을까? 혹시 이 나무를 한국에서 처음 발견했던 걸까요?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는 뜻이랍니다. 그럼 세상을 푸르게 하는 사람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세상푸레사람!

2014_16

우리는 북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아마)에 왔습니다. 거기에 작은 비석이 있었는데 거기에 세로로 ‘백악산’이라고 한자로 씌여져 있었습니다. ‘북(北)’이 아니라 ‘백(白)’이어서 신기했습니다.

2014_17

창의문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의 서울성곽길 코스는 끝입니다. 2시간쯤 걸렸습니다. 기와 지붕 위에 있는 저 동물들은 뭘까요. 저 동물들은 왜 저기에 있는 걸까요? 수호신일까요? 행진하는 걸까요? 귀엽습니다.

부암동으로 내려와서 찻길을 건너니 윤동주 문학관입니다. 우리는 윤동주 문학관에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해설사님의 안내로 3관(닫힌 우물)으로 가서 12분짜리 영상을 봤습니다. 이 건물은 전에 아파트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었는데 그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복원했답니다. 젊은 윤동주 시인이 감당했을 시련에 얼마나 무거웠을지 생각했습니다. 창씨계명을 하기 싫어서 학교를 그만 둔 사람이 일본 유학 때문에 창씨계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부끄러운 심정이 ‘참회록’에 남아 있습니다. ‘쉽게 씌여진 시’에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1관과 3관을 연결하는 통로(열린 우물)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지붕에 없어요! 작년에는 금요일에 야간개방을 해서 별을 볼 수 있었답니다. 올해도 야간개방하면 가보고 싶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축구도 잘하고 재봉틀질도 잘했다고 합니다. 윤동주 시인에게 하늘과 바람과 별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윤동주 시인은 별을 헤면서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렸을 겁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 하나에 그리운 누구를 떠올릴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저는 그리운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부모님은 멀지 않은 거리에 계시니). 서울 하늘에서 별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요즘 별을 보면서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를 떠올리기 쉽지 않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요즘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별 헤는 밤’같은 시는 태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윤동주 시인이 살던 시대가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서울 하늘에 별들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별들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바쁘게 사느라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르는 게 아닐까요. 제가 제주도에서 오는 날 밤에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카메라를 잃어버린 것처럼요. 우리가 별을 못 헤는 이유는 쉬이 아침이 오는 것도, 내일 밤이 남은 것도, 아직 청춘이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별을 헬만한 삶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윤동주 문학관을 나와서 박노해 사진전이 열리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2014_19

눈이 모자가 되었고 목도리가 되었습니다. 참 따뜻해 보입니다!

2014_20

2014_ 22

이 곳은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왔을 때 이 곳에서 티베트 사진전이 열렸었습니다. 티베트인들의 삶을 사진으로 봤었습니다. 이번에는 쿠르드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티베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쿠르드 사람들은 터키라는 강자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윤동주 문학관을 거쳐 쿠르드 사진전을 보니 약소민족의 고통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2014_23 2014_24

우리는 연잎밥을 한다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나물밥 둘, 연잎칼국수 하나, 연잎밥 하나 그리고 반찬 넷입니다. 클래식 음악이 흘렀고 음식은 정갈했습니다.
연잎밥도 맛있었지만 새콤한 이 두부샐러드가 신선했습니다. 우리는 자청비님을 따라 작은 커피집에 들어갔습니다. 감미롭고 졸린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6시쯤 커피집을 나와서 버스를 탔습니다.
이미 주위는 어둑어둑. 햐얀 눈들도 까만 이불을 덮고 잘 시간입니다.

다음 배달부 모임은 4월 13일(일)이던가요? 장소는 성남 남한산성입니다. 8호선 산성역에서 만나면 될 것 같습니다.

*글/사진 :녹색연합 회원 김기성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