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녹색통신 3] 독일, 반핵 시위는 계속 진행 중

2014.03.26 | 행사/교육/공지

독일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상징. 벤트란트자유공화국

독일엔 <벤트란트 자유공화국> 여권을 소지한 사람들이 있다.
인종과 국적에 관계없이 얼굴에 한 가득 웃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었던 여권이다. 벤트란트 Wendland는 당시 서독 정부가 핵폐기장으로 염두에 두고 있던 고어레벤 (암염광산으로, 당시 동독 접경에서 아주 가까운 곳) 인근 지역 이름이다. 정확한 위치는 핵폐기물 저장소의 적합성 여부를 조사하려던 벤트란트 시굴지점 1004. 1980년 5월 3일 원자력에 반대하는 사람들 약 5000명은 재치있고도 발칙하게 그러나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이 곳을 점거! 벤트란트자유공화국 건설을 선포했고, 이곳으로 드나드는 통행증 (passport)을 발급했다.
공유와 유대, 개방과 다양성을 기치로 이들은 점토와 나무로 110개의 오두막을 짓고, 시굴예정지라 벌목으로 폐허가 된 터에 식물들을 심었다. 자율적 자치공간을 위한 운영원리를 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해서 결정했다. 새로운 사회적 실험이자 구체적 행위로써 벤트란트자유공화국은 무기와 물리력에 의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존엄과 안전이 침해되는 것을 거부하며, 억압하거나 빼앗기는 것 없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자율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다.

원자력 없이도 사람들이 창조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태양빛을 집열해서 만든 온수로 샤워실을 운영 했다. 날마다 창의적인 제안과 발표, 토론, 록 콘서트, 인형극 들이 열렸고, 즉석 미용실, 사우나도 운영되었다. 주변 지역 주민과 농부들의 목재와 생활용품, 먹거리 등의 지원이 끊이지 않았고, 라디오 해적방송과 신문 발행을 통해, 이들의 의지와 생활을 외부로 알려냈다. 주말마다 수천 명의 지지자들과 여행객들이 찾아왔는데, 1998년 독일수상이 된 슈뢰더 (당시 사회민주당 청년조직 리더)도 지지방문을 해 사민당 정부가 이 곳을 강제해산 시켜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물론 당시 사민당 정부는 젊은 청년 슈뢰더의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취했다.)

이렇게 누린 벤트란트자유공화국의 33일 천하는 6월 4일 경찰과 국경수비대의 대대적인 소개 작전 앞에 놓인다. 건축법 위반 등 7가지 법률위반 행위로, 불도저와 헬리콥터가 동원되었고, 경찰은 10분 안에 자진 해산할 것을 종용한다. 모여 있던 수천 명의 자유공화국 시민들은 이미 결의한 비폭력 – 수동적 저항 원칙에 따라, 어깨동무로 연좌하다 하나 둘씩 질질 끌려 나갔다. 작전 종료 후 경찰은 확성기를 통해 이들의 비폭력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고 하나, 히틀러 이래 최대 작전이라 불린 이날의 진압 장면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보는 이의 가슴 속에 격노를 지피며, 벤트란트 자유공화국 시민들과 지지자들을 더욱 결집시키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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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벤트란트자유공화국 오두막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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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이들은 따로 전열기구를 갖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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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태양광을 집열해 생산한 온수로 샤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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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벤트란트자유공화국깃발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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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1998년독일 수상이 된 슈뢰더(오른쪽)도 젊은 시절엔 이 공화국의 적극적 지지자였다.

(사진 1,2,3,4,5 출처 Günter Zint/panfoto"

http://www.umbruch-bildarchiv.de/bildarchiv/ereignis/republik_freies_wendland.html )

독일에서 반원전 시위가 사라진 적은 없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지금도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고, 버릴 곳도 책임질 수도 없는 핵폐기물이 여전히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주 월요일 진행되는 전국 100개 도시 이상에서 진행되는 반원전 데모는 십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3월 10일 월요일, 전국 179개 도시에서 반원전 데모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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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원자력발전소 즉각 중단을 외친다. 탈핵 완료 시점은 2022년이 아니라, 늦어도 2015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줄기찬 주장이다. 독일 생태연구소, EUtech (그린피스 위탁으로 진행)은 이를 위한 연도별 실행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핵발전 중단 요구는 아주 단호하고 강력하다.

1980년 독일 녹색당 창당 주요 세력 중 하나가 반원전 그룹이었기 때문에, 1999년 독일녹색당이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 2021년까지 단계적 탈핵에 합의했을 때, 분트를 비롯한 환경단체들은 ‘2021년 탈핵 완료 대타협’을 ‘반핵·환경운동에 대한 녹색당의 배신’이라며 가차 없이 비난했다. 어떻게 녹색당이 이십 년 이상의 핵 발전과 핵폐기물 생산을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엔 집권정당이 바뀌면 이 단계적 탈핵결정은 재차 뒤집힐 가능성이 짙다는 우려도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이 우려는 2010년 기독교민주당과 자유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현실로 나타난 바 있다.

핵폐기물을 둘러싼 오랜 갈등

70년대 후반, 독일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핵폐기물 최종 저장을 위해 ‘통합폐기물센터’를 고어레벤 Gorleben에 지으려는 계획이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독일 전역에서 수만 명의 시위가 일어났고, 반원전 마을건립 – 벤트란트자유공화국으로 정점을 이루게 된다. 결국 독일정부는 고어레벤 내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 계획을 포기한다. 이후 핵 재처리시설의 새로운 후보지로 바커스도르프 Wackersdorf를 결정했지만, 이 역시 100만 명을 넘는하는 서명자들의 이의절차, 행정소송, 매번 수십만의 대규모 집회라는 저항에 직면한다. 거기에 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까지 터지자, 결국 관련 기업들과 독일정부는 89년 핵재처리프로젝트를 포기, 프랑스 라하그 La Hague 와 영국셀러필드 Sellafield 에 위탁처리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독일 내 핵재처리시설 건설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발전소, 핵재처리장, 핵폐기장을 둘러싼 시민들의 끈질긴 저항은 정치권과 원전 사업자에게 높은 정치적, 재정적 비용을 감수해야 함을 의미했고, 86년 체르노빌사고 이후 방사능 낙진 공포가 전 사회적으로 만연하자, 원전추가건설은 사실상 중단된다. 바커스도르프 내 핵재처리 시설 건설 포기와 비일 Wyhl 내 핵발전소 계획 무산(74년 착공, 94년 최종 포기, 이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은 독일 반핵운동의 성공적 사례이다.

핵폐기물 수송을 둘러싼 반대시위

원전건설이 중단되었다고 해서 상황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수십 년 발전소를 가동해서 만들어낸, 그러나 수만 년이 지나야 사라질 방사성폐기물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사용후핵연료를 프랑스와 영국에서 재처리하기로 결정한 이후, 대규모 핵폐기물 운반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따라 90년대 중반부터 폐기물 수송에 반대하는 시위가 수송로를 따라 길게 형성되기 시작한다.

카스토어 Castor로 불려지는, 독일 원전에서 소각된 핵연료봉이나 프랑스와 영국에서 재처리 된 독일의 고준위핵폐기물을 운반하기 위해 특수용기(카스토어)를 적재한 차량이동은 수송저지대를 뚫고 가야 한다. 다양한 수송저지 방해 액션 – 철도에 연좌하거나 드러누운 채 몸을 쇠사슬로 철로에 묶는 것은 다반사이고, 파이프에 팔을 집어넣고 선로 판 밑에 콘크리트를 부어 고정시키기 – 경찰이 굳어버린 콘크리트를 이들의 팔을 다치지 않게 떼어내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체된다. 게다가 영하의 기온에서 이들의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따뜻한 바람과 담요로 보살펴주기까지 해야 한다 – 맥주수송을 위장한 콘테이너 차량을 철로에 쇠사슬로 고정시키고 콘크리트 붓기 등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 수송 방해에 나선다. 추운 날씨지만, 죽음의 화물열차를 막기 위해 수천에서 수만의 사람들은 수송로에 운집해서 시위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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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ld: dpa   11개의 핵폐기물 특수용기를 싣은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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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d: dapd  그러나 경찰은 핵폐기물 수송 반대자들이 철로에 단단히 부착해놓은 쇠파이프를 먼저 제거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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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ld: dpa 환경단체 로빈우드 회원이 수송철로위에서 자일을 타고 원전가동 즉각 중단 현수막을 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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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ld: AFP 이미 수송로는 시위대가 먼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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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ld: AFP 이젠 양과 염소들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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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ld: dpa 농기구들도! 지역 농부들은 핵폐기장 반대의 중심에 서있다.

후쿠시마에서 방출된 방사선의 44배 – 고준위핵폐기물을 담은 차량이 주거지역을 가로질러도 안녕하시겠습니까?

2013년 3월 라이프치히 연방행정재판소는 핵폐기물 수송사고와 테러 공격에 대해 주민들이 법적으로 규정된 보호를 받고 있는지 검토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다넨베르크  Dannenberg 와 고어레벤 간 (20분거리-도로구간)핵폐기물 수송 허가와 관련, 주민들의 소송권을 인정한 이 판결은 그동안 무책임하게 진행되어 온 위험물질 수송을 둘러싼 주민들의  문제제기를 인정한 첫 판결로 평가된다.  10년 전 이 지역 주민들은 핵폐기물수송차량 방사선 보호 업무를 맡은 환경청의 수송허가에 대해 행정심판을 제기한 바 있다. 
이 판결을 두고 그린피스 원자력전문가 마티아스 에들러Matias Edler 씨는 시민의 승리이자 핵폐기물 발생자 (E.ON, RWE, EnBW und Vattenfall  – 원전사업자들)들의 패배라고 논평했다.  그동안 니더작센 행정재판소는 니더작센 내 중간저장소 고어레벤으로 향하는 핵폐기물 수송구간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25년간 소송권이 없다며 기각해왔다.

지난 2011년12월 주거지역을 가로지르는 철로나 도로로 수송, 고어레벤으로 향했던 고준위 핵폐기물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시 방출된 것보다 44배나 많은 양을 싣고 있었다고 한다.  다넨베르크에서 철로에서 도로로 수송로가 바뀌기 때문에 카스토어 용기를 옮겨 싣게 되는데, 이 때 측정된 방사선 수치는 보통 방사선 세기에 비해 600배 높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화재나 테러 시 발생할 수 있는 수송사고 위험 역시 그동안 부주의하게 방치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2015년 영국과 프랑스의 플루토늄공장에서 재처리된 26개의 핵폐기물 용기가 독일로 다시 반입되어야 한다.

벤트란트로 집결!이란 포스터와 함께  또 한번의 수송과 저지작전이 벌어질 판이다.

핵폐기장 반대시위 : 고어레벤은 끝나지 않았다.

고어레벤은 현재 저.중준위 핵폐기물을 위한 중간저장소이기도 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플루토늄 공장에서 재처리된  핵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 고준위폐기물 3,800톤이 저장되어 있다.  고어레벤은 40여년 전 최종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되었지만, 이 선정과정은 암염광산의 적합성에 대한 과학적 조사의 부재, 결정과정의 투명성 부재 라는 멍에를 걸친 채 수 십 년간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왔다.  결국 지난 2013년 7월 연방의회는 (기민당,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 찬성. 좌파당은 반대) 핵폐기장부지선정법 StandAG 제정을 통해 재선정 절차를 거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순조롭지 않다.  독일정부는 이 법안의 제정을 <역사적 타결>, 핵폐기정책의 <전환점> <새로운 접근>이란 표현을 쓰며 자축하듯 공표했지만, 환경단체들의 반응은 꽤나 냉담하다.  핵폐기물문제의 사회 전반적인 합의는커녕 의회 내 다수 정당들간의 정치적 합작의 산물이라는 것.  핵폐기장부지선정법 제정을 통한 부지재선정절차를 이제껏 번번히 자행된 주민참여 배제란 서막과 함께 열린 광대극으로 보기 때문이다. (법제정 과정에서 좌파당이나 환경단체, 주민들의 의견은 고려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의회는 부지선정 포럼을 구성했지만, 반핵운동단체나 환경단체들은 이 포럼 역시 존중할 필요 없는 형식적 어릿광대 놀이에 불과하다며, 참여를 거부했다. 
이들이 근본적인 반대입장을 취하기 때문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은 부지선정과정에 책임있게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누누히 밝혀왔다.  현세대와 미래세대들에게 핵폐기물 문제는 대단히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핵폐기장 물색을 위한 새로운 출발이란 말잔치를 벌이지만,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핵심적 전제가 간과되고 있다는데 있다.  요식적 행위로 너무도 늦게 너무도 적은 규모로 시민과 단체들을 논의 과정에 초대한 것, 과학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명된 고어레벤을 후보대상지에서 제외시키지 않고 있는 것 – 전문적 견해에 대한 정치적 전횡과 무시는 수많은 물결을 형성한 시민들의 항의를 무시하는 것과 동일한 연장선에 있다는 비판이다.

핵폐기장 문제는 단지 새롭게 착수한다고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껏 독일 내 핵폐기물을 둘러싸고 노정되었던 문제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새로운 시작, 새로운 접근이란 없다. 독일 정부가 투명성과 참여란 개념을 공허한 개념으로 만들고 있는 한, 새로운 법률에 의거하여, 새로운 법률의 이름으로 고어레벤= 핵폐기장 등식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에 들러리 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 연방 의회  „성장, 복지, 삶의 질“에 관한 앙케이트위원회는 거대 프로젝트는 시민들이 이에대한 정보에서 소외되거나, 만족스러운 참여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 늘 실패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독일 정부는 자신의 말을 지켜야 한다.

그칠 없는 싸움

독일에서 핵발전소를 둘러싼 싸움은 끝이 없는 싸움이라 불리운다.   이 그칠 수 없는 싸움을 유발한 자가 누구인가.  여전히이 싸움의 불씨를 끄지 않는 자는 누구인가.  독일 내 반핵운동은 대단히 완강해 보인다.  그러나 이 반핵운동은 환경운동그룹 중 이른바 근본주의적이거나 급진적인 소수 세력에 의해 벌어지는 분쟁이 아니다.  자발적인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시위이고, 손녀 손자, 부모, 할아버지 3세대가 함께 벌이는, 현재와 미래를 안전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저항이다.  독일국민들의 과반수 이상이 2022년 탈핵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보수당으로 분류되는 기민당 지지자들에서부터 녹색당 지지자들까지, 정당끼리 합의한 늦디 느린 탈핵 일정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너무나 위험한 시설이기에 이들은 더욱더 엄격하게, 전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친 탈핵과 핵폐기원칙을 요구한다.  무기로 쓰이는 물질! 평화적 이용이란 타이틀을 내세웠지만,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무기가 되는, 처리과정에서도 갈등을 유발하는 물질, 핵!  이를 만들고 이용하고 이익을 보려는 그룹이  분쟁을 만들었고, 그들에 의해 이 싸움은 계속 그칠 수 없는 싸움으로 전개되는 것 아닌가.

 

독일에서 녹색연합 전문위원 임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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