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녹색통신 5] 반대정당인 정당, ‘독일 녹색당’의 어제와 오늘

2014.05.26 | 행사/교육/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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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녹색당. 정식명칭 Bundnis 90/die Grünen

<반대정당으로서의 정당 Anti Parteien Partei>을 표방하며 의회에 뛰어들었던 독일녹색당. 새로운 정치적 의제들을 던지며 의회 의석수와 지지율을 확대했고,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 (이른바 적녹연정)의 한 축을 형성했다. 지금 다시 연방정부에서는 야당으로서, 일부 주정부와 시에서는 집권당으로서 활약하면서 이들이 이룬 성과와 한계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많은 희망을 안고 또 벽에 부딪치면서 여전히 녹색이란 이름의 깃발을 들고 분투하는 독일녹색당은 어떤 모습이었고, 지금은 또 어떨까?

해바라기를 들고 의회에서의 반란을 꿈꾸다.1980년 창당된 독일녹색당 (이하 녹색당)은 환경운동, 평화운동, 여성운동, 제3세계운동, 대안운동, 소수자운동, 신좌파그룹 등 이른바 신사회운동그룹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운동의 다양함만큼이나 사회생태주의에서 자연보호주의자까지,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이념적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녹색당의 초기 강령은 생태, 사회적 공공성, 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을 근간으로 했다. 늘 당원들의 다수 의사를 바탕으로 기나긴 토론을 통해 당론을 결정하려 했고, 명망가 중심의 정치와 소수에게 결정권이 집중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에 일부 인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도 제어장치를 두었다. 그럼에도 녹색당의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사람이 있다.

대표적 인물은 초기 녹색당의 페트라 켈리와 집권녹색당의 요쉬카 피셔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 (애인과 동반자살 한 것으로 공식발표된) 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페트라 켈리.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녹색당은 초기 구상은 <반대정당으로서의 정당>이었다. 정당을 반대하는 정당. 보수적인 기독교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민주당으로서는 도저히 만족할 수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세력들은 <사회운동의 의회영역으로의 확장>이란 새로운 전략을 택했고, 그와 똑같이 기성정치질서에 대한 염증과 관료주의, 비민주주의적 행태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은 새로운 대안으로 녹색당을 선택했다. 녹색당은 창당 3년 만에 의회진출을 위한 5% 이상 득표 장벽을 돌파, 29인의 대표를 연방의회에 입성시킨다.

0526gp-2다른 인물 요쉬카 피셔. 우리나라 복지부장관을 지냈던 모 전 국회의원이 등원 첫날 운동화와 재킷차림을 해서 파란을 일으켰던 적이 있는 이 사건의 원조는 요쉬카 피셔이다. 적녹연정 시절 (1998년 -2005년) 외무부장관 겸 부수상을 지낸 요쉬카 피셔는 인문계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안)했으며, 따라서 대학을 다니지 못한 푸주간 집 아들이다. (이 두 가지는 그를 소개하는 글 한 켠에 늘 빠지지 않은 채 언급되는 사항이고, 이런 그의 학력과 출신배경은 사실상 녹색당 내부에서 그의 활동에 하나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요쉬카 피셔가 1985년 헤센 주 환경부장관 임무수행 선서 때 신었던 나이키운동화는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물론 요쉬카 피셔만의 의상이 방자했던 것은 아니다. 엄숙한 양복에 넥타이, 단아한 스커트 양장만을 암묵적으로 허용하던 국회는 녹색당의 상징꽃인 해바라기를 손에 든 장발에 수염, 스웨터와 운동화 차림의 녹색당의원들, 미화된 표현이나, 타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쏘아대는 거침없고 도전적인 언설로 조금은 자주 소란스러웠다. 물론 기존 정당 국회의원들과 업계와의 부도덕한 유착관계를 폭로하거나 기존 질서를 흔드는 신선한 정책제안은 국회와 사회를 놀라게 하는 녹색당만의 주된 활약이기도 했다. (사진 : 요쉬카 피셔의 1985년 헤센주 환경부장관직 선서 장면 /  Foto: dpa)

원칙을 둘러싼 당 내부의 첨예한 갈등과 현실주의노선의 승리

의회 내 새로운 대안세력으로서 부상한 녹색당은 다양한 운동그룹들의 집합장이었고, 또 당내 민주주의를 주요 원리로 작동시키는 당이었기 때문에, 사안마다 당의 입장을 결정할 때 적잖은 시간과 진통을 동반했다. 크게 분류해서 이른바 근본주의자들과 현실주의자들간의 대립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이 대립 속에서 당의 입장과 방향을 결정할 때마다 수많은 당내 인사와 당원들의 탈당이 줄을 잇고, 그 중 일부는 좌파당으로 가거나, 새로운 당이나 조직을 건설한다. 내부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는 코소보 파병문제였다. 세르비아 (구 유고슬라비아) 내에서 코소보를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세르비아의 코소보 내 알바니아 인들에 대한 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한다는, 이른바 인도적 개입이란 명분으로 나토군이 세르비아를 폭격하려 했을 때, 나토군의 일원인 독일군을 이 전투에 파병하는 것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했다. 즉 녹색당은 파병에 찬성할 것인가! 를 결정해야 했다.

1999년 초, 녹색당이 사민당과 집권한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을 때이고, 요쉬카 피셔가 외무부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녹색당이 독일군의 전쟁참여에 반대한다면, 연립정부가 깨지고, 집권정당에서 다시 야당으로 물러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녹색당은 코소보 전쟁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에 동의할 것인가! 비폭력이란 당의 강령을 저버리고? 이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당대회는 군대 파견에 반대하는 당원들의 예측 되는 사태(?)에 대비, 녹색당 지도부의 요청으로 경찰력의 삼엄한 엄호와 경비 아래 치르게 된다. 그러나 끝내 군대파견에 동의를 구하는 연설을 준비하던 요쉬카 피셔의 귀 언저리에 붉은 물감풍선이 투척된다. 우리나라 국회 법안 날치기 사건 때 흔히 보는 막가는 장면이나, 이른바 진보정당 폭력사태는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 결국 군대파견 안은 녹색당내에서 가결되었고, 평화를 전면에 내세웠던 녹색당에 실망한 많은 수가 당을 떠난다. 파병승인은 이에 그치지 않고2001년 아프가니스탄에 독일군의 파견 역시 동의하고 만다. (이라크전쟁에는 파병 하지 않는다)

의원직 순환원칙 (2인이 4년 의원임기를 2년씩 나누어서 맡는 것, 권력집중을 방지하기 위함)과 공직과 당직 겸직금지 원칙을 폐기했을 때에도, 당내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사회민주당과 주정부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문제를 둘러싼 근본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간의 대립은 창당 직후부터 존재했던 첨예한 논쟁거리였으며, 기성정당에 대한 반대정당으로 출발했던, 집권이 목적이 아닌 사회운동의 의회 내 확장이란 전략이 중심에 있었던 세력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결국 여러 차례 대립을 겪으며 근본주의자들은 대부분 탈당하고, 당내 지도부에서 세력이 약화되면서 녹색당은 현실주의적 노선으로 정리된다. 이제 ‘ 집권과 정부 참여’가 녹색당의 전략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다. 적녹연정을 통해 집권당의 한 축이 되기 위해 탈핵 시기를 2022년까지로 사회민주당과 협약했을 때에도, 녹색당은 반원전 운동단체들로부터 서슬 퍼런 비판 앞에 서야 했다. 집권당이었을 때는 핵폐기물 운송반대시위를 막기 위해 행정력을 동원하는 권력의 주체가 된다. 녹색당은 2002년 새로운 강령을 채택하는데, 비폭력과 풀뿌리 민주주의는 더 이상 명시되지 않는다. 이젠 사회민주당뿐만 아니라 보수 세력인 기독교민주당, 자민당과의 연립정부 협상도 가능하고 실제로 사회민주당이나 좌파당이 아닌 기독교민주당과 정부를 구성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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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페트라켈리의 글과 연설을 모은 책 <희망을 위한 싸움> 그녀에게 녹색당은 희망을 위한, 녹색미래로 가는 폭력없는, 평화를 위한 당이었다.

(오른쪽) 녹색당이 이른바 현실정치노선으로 전환하자, 녹색당을 탈당, <생태적 좌파>당을 결성한 생태사회주의자 유타 디트푸르트. 그가 발간한 이 책은 녹색당이 어떻게 자신의 이념을 배신해왔는지를 고발하고 있으며, 부제에서처럼 그는 녹색당을 ‘희망과의 결별’이라 일컫고 있다.

기성정당으로의 안착.

독일녹색당은 저항운동세력에서 기성정당이 되었다. 녹색당-희망과의 결별! 이란 낙인과 비판을 감내해야 했고, 특히 집권기간 동안엔 더더욱 녹색당에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은 배신감으로 상처받은 자신을 추슬러야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녹색당은 집권하려 했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녹색당은 주정부나 연방정부 선거에서 단 한번도 1위를 차지한 적이 없다. 3 년 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기독교민주당의 아성이었던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정부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자 크레츠만이 주지사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가 선거에서 1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3등을 예상했던 그는 근소한 차이로 사민당을 앞질러 2위를 했고, 1위를 한 기민당 후보는 눈물을 머금고 그에게 주지사자리를 내주어야 했던 것. 기민당, 사민당, 녹색당 어느 당도 과반수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연합정부를 구성해야 했다. 1위를 한 기민당은 과반을 넘지 못했다. 사민당과 녹색당의 득표율을 더하면 과반이상이 되므로 양당간의 연정협상이 성공하면, 정부 구성이 가능하게 되며, 더 높은 득표율 얻은 정당에게 주지사 자리가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녹색당 크레츠만은 주지사가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가 된 것이다. 즉 이런 배경에는 우리와 다른 독일의 선거제도가 존재한다. 독일은 비례대표 비율이 50%이고, 5% 득표율을 넘겨야 의회에 진입하는 이른바 5% 장벽이 있는다. 독일 역사상 단 한번을 제외하곤, 어느 당도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정당 간의 연립정부협상 후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1998년과 2002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의 득표율은 각각 6,7%와 8,6%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사민당과 연정협약을 체결, 집권당이 된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민주정권 창출을 위해 후보를 사퇴할 필요도 없고, 남의 표를 깎아 먹는 격이다, 또는 쓸모없는 사표를 만드는 꼴이다는 얼토당토않은 협박도 필요 없다. 5% 득표율만 넘으면 본인이 얻은 득표로 다른 당과 협상, 정부를 함께 구성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야당으로 남으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00 당을 찍으면 사표를 만드는 일, 결국 00를 도와주는 꼴이라는 모 전의원의 기의식 조장 역시 독일 사민당의원들이 <녹색당을 찍으면 사표처리되고 기민당을 도와주는 꼴>이라는 말의 재인용에 불과하다. 이런 표현의 출처는 창당 직후 5%를 얻지 못하던 녹색당이 자신의 표를 갉아먹는 것에 대처해 나온 사민당의 악선전이었다. 이젠 사민당도 녹색당을 향해 그런 말을 하진 못한다.

 

녹색당의 괄목할만한 성과

녹색당의 성과는 없었던 걸까. 그건 그렇지 않다! 우선 녹색당은 새로운, 기존 정당들로부터는 기대할 수 없었던, 아니 상상할 수도 없었던 당내민주주의 문제와 환경정책들을 의제화하고 제도화 해냈다. 당직과 공직에서 여성할당제 50%는 녹색당이 초기부터 원칙으로 했던, 지금도 여전히 자산으로 갖고 있는 제도이다. 사민당과 기민당 내부에서나, 또는 고위직 여성할당제도를 고민하게 되는 것도, 지속가능한 정책, 지속가능한 독일이란 말은 사용하지 않는 당이 없는 것 역시 녹색당에 의한 것이다. 또한 녹색당이 집권기간 동안 뒤집어 쓴 오명만큼,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독일의 환경정책은 사실 사민당과 함께 한 녹색당의 적녹연정 기간 중 펼쳐진 것들이다. 정치적 의제를 선도해가는 역할에서 집권당으로서 의제를 정책적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해낸 것. 의회에서 협잡하고 있다는 외부로부터의 비난의 화살을 맞아가면서, 소수당이었던 녹색당은 거대한 벽처럼 꿈쩍도 하지 않으려 했던 사회민주당과 야당의 반대와 방해를 뚫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녹색당이 집권 중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에너지 전환>이었고, 그 결실이 재생에너지법의 제정이다. 태양에너지와 풍력, 바이오 가스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통해 재생에너지 비율이 급속히 상승하게 된 것은 이 재생에너지법 덕분이라는 점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에너지 절약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환경세제를 도입, 휘발유와 전력, 가스의 세금을 점차적으로 인상하고, 이를 재원으로 복지기금으로 사용, 연금보험분담금을 인하시킨 것. 원전 추가 건설에 종지부를 찍고, 제한이 없던 발전소가동 수명에 기한을 정하며 독일의 탈핵결정을 끌어낸 것, 그리고 2003년 첫 슈타데 원전을 폐쇄한 것도 녹색당이 한 일이다. 기후보호를 위한 CO2 감축프로그램을 가동한 것, 자원의 재활용을 위해 플라스틱 그리고 알루미늄 캔에까지 보증금 제도를 시행 한 것(캔맥주를 사마시려면 그의 절반에까지 달하는 캔 보증금을 내야 한다..) 연방자연보호법을 개정, 각 주별로 10%의 면적을 생태축으로 확보하도록 의무화 하고 환경단체의 단체 소송권을 보장한 것, 동서독 경계지역을 그뤼네스 반트로 조성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한 것, 광우병 사태 이후 이른바 <농업전환>이란 구호아래 친환경농업을 지원하고, 친환경마크를 부여하고, 소비자권리를 강화하고, 유전자조작식품 표시제도를 도입한 것, 동물의 권리를 헌법에서 보장한 것, 개발사업계획 수립 시 주민참여를 강화시킨 것 등등 지금 들으면 다소 진부해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정계와 업계가 발칵 뒤집힐 만한, 다른 정당들은 결코 염두에 두고 있지 않던 정책들이었다.

혈통을 골간으로 했던 국적법이 개정되어 독일 출생 외국인에게 국적을 허용한 것. 동성간 결혼이 가능해진 것도 소수자 운동을 외면하지 않은 적녹정부 시절의 성과이다. (지난 독일정부에서 외무부장관이었던 자유민주당 FDP베스트벨레는 동성애자이다.) 환경수도, 녹색도시로 저명한 프라이부르크나 튀빙엔은 녹색당 시장이 있는 곳이다. 적.녹연정 시절 펼쳐진 독일의 선진적 환경정책으로 독일은 환경국가라는 아름다운 별칭을 얻게 된 것이고, 독일이 기후보호를 위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온 것도 녹색당의 노력과 성과임엔 분명하다. 이 가운데 여러 정책들은 다른 나라들이 모범사례로 밴치마킹했으며, 재생에너지법은 50개국 이상에서 모범답안 삼아 적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집권정당내의 소수정당으로서 녹색당이 야당의 반대를 뚫어내고 실현시킨 업적들은 적지 않다. 현재 녹색당은 평균 10% 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연방의회 안에서는 여당인 기독교민주당, 사회민주당, 야당인 좌파당, 녹색당 4당 구도 안에 자리하고 있다.

환경단체는 녹색당을 지지하는가?

독일의 환경단체들은 특정정당과 어떠한 관계도 없다. 이 말의 의미는 환경단체는 특정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고, 환경단체 활동가나 회원이 특정정당에 가입, 활동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중당적 금지규정에 적용되는 사항도 아니고, 단체와 당은 전혀 다른 성질의 조직이기 때문에, 서로 금지의 대상이 아니다. 축구단체 회원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이 부적절하듯. 또한 바이에른 축구 팬이 기독교사회당을 지지해야 한다? 가 부적절하듯.

환경단체가 녹색당을 선거에서 지지한다? 이건 상상하기 힘들다. 환경단체의 논리와 역할은 정당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인 것. 녹색당을 지지하고 싶으면, 녹색당원이 되면 되고, 녹색당 선거운동과 녹색당 활동을 하면 된다. 서로 같은 조직의 위상이 아니기 때문에 녹색당으로서는 이중당원원칙에 위배될 사항도 아니고, 환경단체 역시 다른 단체에 가입, 활동하는 것을 금지할 이유나 권한이 전혀 없다. 독일 환경단체의 수는 독일 녹색당 지구당의 수보다 몇 배나 많고, 환경단체 회원 수는 독일 녹색당의 당원 수보다 몇 배를 넘어 수십 배가 넘는다. 그러나 결코 무시하지 못할 이 숫자가 고스란히 녹색당 유권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환경단체 회원 수는 녹색당이 투표에서 얻는 득표수보다 많다. 녹색당은 다양한 그룹의 당이었고, 30년의 역사를 넘기고 분열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된 당이다. 녹색당만이 녹색의 가치를 대변하는 유일한 당도 아니고, 녹색당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여긴 그룹들은 새로이 자신들의 당을 창당해서 자신의 이념에 맞는 다른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녹색당보다 사회적 영향력이나 지지도가 높진 않지만, 이를 지지하는 단체회원들도 있고, 또한 의회정치에 회의를 품고 있는 회원들도 존재한다. 다양한 정당을 지지하는 회원으로 구성된 환경단체가 자신의 일이 아닌 특정정당지지 문제를 두고 내부 분열을 만들 필요는 없다.

환경단체는 녹색당뿐만 아니라, 사회민주당, 기독교민주당, 기타 등등의 당에게 환경정책의제를 제안하고, 질의답변 내용과 각 당들의 정책공약을 평가해서 유권자들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사안마다 정치인과 당이 어떤 의도와 계획과 또는 수작을 부리려 드는지 알리고 지지해줘야 할 땐 지지를, 비판해야 할 땐 비판을 호소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에게 선거에 반드시 참여할 것을, 미래를 위한 녹색을 위한 투표를 해 줄 것을 독려하고 호소한다. 이 가운데 녹색당 역시 환경단체로부터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며, 다른 정당들처럼 정책 협력을 할 수도 있는 당이다. 녹색당은 다른 당과 적당히 타협하고 싶어도 환경단체와 유권자의 비판과 외면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혹은 비판과 외면을 무기로 삼아 타협할 수 없는 명분으로 삼기도 할 것이다. 당에게 의제를 제공하고, 압박수단을 행사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하는 환경단체. 독일 내 환경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의회 밖의 강한 목소리로 의회 내 활동을 줄기차게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 하는 그 역할, 그 힘없이는 독일녹색당의 활동은 성과와 파괴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나 당을 압박하고 끌어내는 역할. 그건 역시, 여전히 시민단체와 유권자의 몫이다.

 

독일에서 녹색연합 전문위원 임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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