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링 위로 올린 0.02g

2014.10.20 | 행사/교육/공지

먹고 사는 일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밥을 떠올립니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밀려왔던 걱정과 속상했던 마음이 달래지는 경험을 살면서 몇 번씩 하게 됩니다. 다양한 별미를 찾으며 살고, 면 종류를 많이 먹기도 하지만 밥은 먹고 다니느냐 서로를 토닥이는 우리에게 먹는 것의 중심은 여전히 밥이고 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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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관세화는 쌀을 수입할 때 내야 하는 세금의 수준을 정하는 일입니다. 정부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된다고 하지만 쌀을 수출하려는 나라들은 당연히 낮은 세금을 요구할 겁니다. 한미·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이 쌀에 대한 높은 관세율을 내리기 위한 국제조약이 준비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쌀관세화가 유예되었던 지금까지처럼, 외국쌀 약 41만톤을 수입해야 하는 의무는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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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쌀 관세화라는 이 어려운 말은 쉽게 풀면,쌀시장이 완전히 개방된다는 겁니다.
쌀이 완전히 개방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우리집은 지난 2010년부터 열마지기(이천평) 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사실 쌀농사는 우리처럼 적게 지으면 손해지만, 많이 짓는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논을 갈 때에는 트랙터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모내기를 할 때에는 이양기를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돈을 드리고 일을 맡겨야 합니다. 추수를 할 때에는 콤바인을 가진 분들을 불러야 하며, 도정할 때에도 도정비를 내야 합니다. 이 모든 비용이 쌀을 팔아서 충당이 되고 남으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쌀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저는 쌀농사를 짓고 있지만 돈이 되어서 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추수를 마치고 나면 쌀을 팔아도 남는 돈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우리는 다시 논으로 향합니다. 우리 먹을거리의 기본은 쌀이기 때문입니다. 쌀은 단순히 우리의 기본 먹거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이며, 우리의 문화이기도 합니다. 쌀 시장 개방은 수입쌀이 우리 밥상에 오르는 것 이상의 일입니다. 우리 역사와 우리 식문화, 농촌 구조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어느 기업의 씨리얼을 먹는 것처럼 어느 농부의 쌀이 아니라 외국 어느 기업의 쌀을 먹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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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의 무게는 0.02g입니다. 이 작은 쌀 한 톨에 우주가 고스란히 담겨있지요. 저와 같은 농부들과 이 0.02g의 쌀이 지금 링 위에 함께 올라가 있습니다. 링위에서 강펀치를 날릴 수 있도록 여러분이 숟가락으로 함께 해주세요. 밥상 위 밥그릇마다 우리 쌀이 담겨질 수 있도록, 숟가락마다 우리 쌀이 담겨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내가 점심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는 메뉴의 선택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어떤 쌀을 먹을 것인가는 우리 농업의 문제, 국가의 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진희 님은 녹색연합에서 활동하다 2009년 전라남도 장수군 하늘소마을에서 가족들과 함께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짓기를 시작해 2012년부터는 ‘먹거리 정의’ 실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 최고 관심사는 고추 말리기에 좋은 가을볕이 언제 들까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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