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세시에 찾아오세요.

2014.11.13 | 행사/교육/공지

나른한 오후 세시에 찾아오세요.

8월 땡볕에 찻집 간판을 달았다. 자리 잡은 곳은 큰 길도 아닌 한적한 골목이다. 그런데 에어컨도 없고, 종이컵도 안 쓰고, 그 흔한 커피마저 안 판다. 게다가 요일마다 주인이 바뀌는 희한한 찻집이다. 이 특별한 녹색연합 회원 보문찻집의 목요일 주인, 심흥아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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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카페는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친환경 카페를 만든 것 같아요. 가게 준비부터 문 열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텐데 그 파란만장 했던 과정이 궁금해요. 
찻집을 준비하면서 결심했던 한 가지는 기계를 덜 쓰는 찻집을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대형 냉장고와 냉동고, 커피 머신, 제빙기 같은 기계에서 나오는 열이 만만치 않아요. 그러다보니 에어컨도 더 세게 틀어야 하죠. 10평 남짓 시원하게 쓰자고 바깥으로 쏟아 내놓는 어마어마한 열이 마치 배설 같았어요.
에어컨과 종이컵 안 쓰는 것은 친구들도 열렬한 지지를 해줬는데 커피는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메뉴에요. 기계 없이 핸드드립만 해볼까도 생각하다 기왕 환경에 해가 덜 가는 가게를 만들자 했으니 과감히 커피도 없앴죠. 제가 커피를 안 마시기 때문에 커피 안 마시는 주인이 만드는 커피도 이상하고요. 하하.
커피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면 대량소비가 대량생산으로 이어지고 결국 대량파괴로도 이어질 것 같아 지구를 위해 조금 다른 일을 한다 위로 하고 있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은 가게를 고치면서 쓰레기만 한 차 가득 나왔어요. 친환경 카페는 없다고 한 건 바로 이런 이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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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이야기를 들으니 오래오래 운영하셔야겠네요. 하하. 올 여름 많이 덥지 않아 에어컨 없이도 잘 났을 것 같아요. 이제 겨울날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요?
바람이 잘 통해 여름은 제법 시원하게 보냈어요. 그런데 겨울에도 바람이 잘 통할 것 같아 걱정이에요. 단열이 잘 안되고,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아 환경과 친한 난방방식을 녹색연합에 문의도 했었죠. 난로 위에 따뜻한 물이 늘 끓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곤 해요.
(이 대목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에너지 전환 전문가인 녹색연합 에너지기후국 신근정 팀장 전화번호를 쓱쓱 적어주고 인터뷰 내내 생색을 냈다. :D)

이 특별한 찻집을 이용했던 손님 중 기억나는 손님이 있을 것 같아요.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커피도 없고, 종이컵이 없다고 하면 그냥 나가는 분들이 많아요. 조심스레 “혹시 가까운 곳이면 텀블러 빌려 드릴까요?” 이렇게 물어보지만 누구하나 해달라는 사람이 없었죠. 그날도 한 손님께 종이컵이 없어 차는 포장이 어렵다 했더니 “그럼 집에 가서 텀블러 가져올게요.” 하며 너무도 흔쾌히 다시 다녀 오신거에요. 모험같은 꿈이 가능하다 믿게 만들어준 첫 손님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찻집지기가 바뀌는 이유가 있나요? 새로운 협동의 형태인 것 같기도 하네요.
몇 년 카페를 운영하다 접고, 다시 카페를 계획하면서 몇 가지 다짐을 했어요. 장사를 하기보다 하고 싶은 것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공간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여러 내용을 담는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차는 매개일 뿐이죠. 다행히도 유별난 운영방식을 지지해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어 요일마다 다른 내용을 담는 공간이 되어갑니다. 여럿이 운영하면 운영비 부담을 나눌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지요. 아직 자리를 잡는 중이라 올해 말까지는 요일마다 주인이 바뀌는 운영을 해보려 합니다.
또 하나는 마을 속에 있는 찻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고 파는 곳보다도 아무 때나 편하게 들릴 수 있는 이웃 같은 곳이길 바랬거든요. 3개월 정도 지나니 오후 세시쯤이면 동네 길고양이도 편하게 들러 밥을 먹고 가요. 아직 곁을 내주지는 않지만요. 곧 친해지겠죠?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쉬운 실천 팁을 하나 알려주세요.
실천하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팁이에요.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죠. 삶을 전환하려면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큰 고통이 한번 와야 해요. 아니면 사서 고생을 하던지. 하하. 저도 큰 굴곡을 한번 겪고,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삶의 방식을 바꾼 케이스죠.
지금은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친구가 있어 꾸준하고 재미있게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만약 이런 친구가 없다면 녹색연합 활동이라도 하셔야 해요.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이 특별한 찻집이 주변 수십 개의 찻집 틈바구니에서 보란 듯이 살아남아 동네 옆집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진다. 한 달에 한번 어느 저녁에는 동네사람들과 함께 보는 영화방으로, 명절 연휴 오후에는 가사노동의 고충을 토로하는 동네 주부들의 수다방으로 만들고 싶다는 목요일지기의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이 보문찻집은 서울 성북구 삼선동 주민센터 건너편 골목에 있다. 요일마다 찻집지기가 바뀌어 때마다 색다른 일주일을 맞볼 수 있다. 화요일에는 화풀이 상담사를, 수요일에는 맛있는 소복소복 밥상을, 목요일에는 만화가 심흥아님을 만날 수 있다.
종이상자를 꼼꼼하게 이어 붙여 반듯반듯 쓴 메뉴는 잎차, 꽃차, 과일차, 미숫가루, 온갖 건강차 등등이다. 커피만큼 향기롭다는 깨알같은 설명도 있다. 단, 텀블러나 그릇을 가져가지 않으면 포장판매는 절대 안되니 아름다운 지구인답게 조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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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른한 오후 세시, 보문찻집 찾아가기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로35길 25 (삼선동4가) 1층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도보 10분거리)

* 정리:  윤소영/  사진 : 심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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