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녹색통신 14 – 더 나은 농업은 가능하다

농촌에서 만나는 살고 싶은 주택들

독일엔 녹지가 많다. 울창한 숲과 강을 끼고 있는 도심 내 옥상 녹화된 건물 사이사이에도 나무들이 즐비하다. 도심을 벗어나면 이내 너른 평야가 펼쳐진다. 그곳에는 밀이나 보리, 유채, 감자 등 각종 곡식과 야채들이 번갈아 경작되거나 방목된 소들이 풀을 뜯는다. 8천만 명에 이르는 독일의 인구는 우리처럼 서울이나 수도권에 몰려 있지 않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시설이 지역별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쪽에 있는 수도 베를린의 인구는 300만 명이고, 수백 킬로미터 거리의 중부에 있는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의 인구는 70만 명에 불과하다. 유명한 다른 도시들, 남부의 뮌휀이나 북부의 함부르크 등도 제각각 자리하고 있다. 지역을 이동할 때 창밖의 익숙한 경치 중 하나는, 꽃들이 수북한 3층짜리 주택들이 탁 트인 평원가운데 옹기종기 놓인 모습이다. 대체로 1층은 현관, 거실, 부엌으로 사용되고, 2층은 침실이나 공부방, 3층은 다락방 구조로 지어져 있다. 큰 방이 다섯 개 이상씩은 되어 보이는 꽤 넓은, 그러나 구석 곳곳에 아기자기한 손길로 갖추어진 농가주택. 허술해 보이는 집이 있다면 그건 곁달린 오두막 혹은 창고라고 보면 확실하다. 도시의 주택이건 농촌의 주택이건,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크기와 품격 면에서 차이가 없다. 독일 농부들의 집은 살고 싶은, 혹은 갖고 싶은 집이다. 그들의 집이 부러움을 사는 이유는, 그들이 가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도·농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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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집. 때마침 트랙터를 타고 도착한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니 직업이 농부인 자신의 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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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전통가옥 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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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주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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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마을

산업국가이지만 농업강국이기도 한 독일

독일 국토 면적의 47%는 농경지(경작지 및 초지)고, 임야는 30%이다. 나무가 너무 높고 빽빽하여 온 주변이 어둡다 하여 흑림으로 불리는 지역이 있듯, 독일의 숲 관리 정책은 역사가 깊고, 숲은 환경과 경제 모든 면에서 높은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독일은 대표적인 산업선진국이지만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이유로 농업을 경시하는 정책을 펴온 적은 없다. 농업은 2차, 3차 산업이 아무리 발전해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나라의 근간임을 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업 분야는 전체 독일국민총생산 GDP의 0.8%를 차지하며, 종사자들은 약 1백만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6%이다. 많지 않은 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독일사회에서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인데,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식량을 이들이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식량자급율은 85%이고, (우리나라는 20% 대에 머물고 있음) 유럽에서 네 번째 농업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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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이삭이 잘 영글었는지 관찰하는 중.
사진 출처: 연방농림식품부 자료 Landwirtschaft verstehen – Fakten und Hintergründe

전체 28만5천 농가 중 90%는 가족단위로 운영되는 농가이고, 전체 농경지의 70%가 이에 해당한다. 나머지 10%는 협동조합이나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고, 농경지의 30%가 여기에 속한다. 농가당 평균 경작면적은 평균 58.6헥타르로 넓은 편이다(2013년). 농가의 주요일감은 농사일이지만, 46%의 농가는 부업도 겸하고 있어서, 치즈나 소시지, 야채 등을 직접 판매하거나, 임업을 겸하거나, 펜션·민박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독일의 바이오에너지는 2013년 전체 에너지 수요의 7.6%를 담당하는데, 부업으로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참여하는 농가수도 많다. 농업을 통해 식량을 생산하는 것만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몫 역시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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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한 아스파라거스를 직접 판매하는 농부
사진 출처: 연방농림식품부 자료 Landwirtschaft verstehen – Fakten und Hintergründe

 

농가소득보다 많은 농가지원금

이들의 소득은 얼마나 될까? 농가당 평균 소득은 51,600유로 (7천만 원)이다. 농부 1인당 소득으로 계산하면 34,400유로. (2014년 세금 공제 전 1인당 평균 임금노동자 연봉은 약 44,200유로이고 1인당 평균 소득은 31,000유로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대목은, 농가수입의 주요 원천이 생산물 수확에 의한 농가소득이 아니라는 점이다. 농가수입의 중요한 부분은 유럽연합, 정부, 주정부에 의한 농업지원금으로, 평균 년 간 지원금은 농가당 31,225유로 (4천만 원)나 된다. 지원금 중 가장 큰 항목을 이루는 것은 ‘직접지불금’으로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에 따라 지불되는 금액이다.
농부는 경작 농지의 규모에 따라 직접지불형태의 보조금으로 1헥타르당 318유로를 받는데, 이는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는가에 관계없다. 여기에 농업환경프로그램에 따라 약 30%가 가산되고, 조건이 불리한 농경지는 보상지불, 친환경농업을 위한 녹색(Greening) 지불, 소농을 위한 지불 등이 있다. 물론 독일연방정부나 주정부로부터 투자금 지원도 있다. 개정된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프로그램은 (시행년도 2014-2020) ‘젊은 농업인 지원’항목을 신설했는데, 40세 이하 신규농업종사자에게 기존 직불금의 25%를 추가 지불하는 내용이다. 젊은 농업인에게는 직불금 지원 방식 외에도 독일 주정부 별로 공유지를 임대하거나, 농업 시설물 설비 관련 보조금의 10% 추가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유럽연합과 독일정부의 농업, 농민 지원 정책 아래에서 농민들은 결코 가난하지도 않고, 자식들의 대학등록금 걱정을 할 필요도(교육비는 무료이므로) 없고, 당연하게도 독일 내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회보장시스템에서 (재해보험, 의료보험, 간병인보험, 노령보험 등) 노후에 대한 걱정 또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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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농부가 젊은 농부 지망자들에게 농업관련 일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연방농림식품부 자료 Landwirtschaft verstehen – Fakten und Hintergründe

 

지켜야 할 미래를 위한 공동의 약속

직불금 형태의 보조금이 누가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는가에 관계없이 면적당 지불되는 것이지만,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경작지나 축사를 운영할 수는 없다. 까다로운 유럽연합 규정에 따라 환경보호, 동물보호, 노동보호, 소비자 보호 규정을 충족해야 한다. 유해한 암모니아 배출을 줄이기 위해 똥거름류는 곧바로 토양에 뿌려져야 한다든지, 토양 침식을 막기 위해 특정 경사지 이상은 경작이 허용되지 않는다거나, 농경지의 1/3은 생물종 다양성과 자연보호 대책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 축산의 경우 성장촉진용 항생제 사용은 2006년부터 유럽연합 차원에서 금지되어 있다. 알 낳는 기계로 사육되는 공장식 양계장은 독일의 경우 2010년부터 운영할 수 없다(유럽연합은 2012년부터 금지). 동물들이 움직임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육장 면적, 축사 내 빛과 온도의 적절한 유지, 바닥시설과 사료, 음료 규정 등 동물이 불필요한 고통이나 환경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 또한 어떤 조건하에서 거세 같은 특정 수술이 허용되는지 등 모든 법적 규정은 모든 농가가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

 

친환경농업지원

화학비료나 농약, 제초제를 쓰지 않고 건강하게 작물을 재배하는 친환경농법은 그 수확량이 관행농법에 비해 현저히 낮다. 밀이나 감자는 수확량이 절반밖에 미치지 못하고, 우유생산량은 90% 정도이다. 친환경농업 지원을 위해 추가로 유럽연합과 독일 주정부는 평균 1헥타르당 142유로를 지원한다. 2013년 독일 내 친환경농가 수는 23,300으로(8%), 전체 농경지의 6%가 친환경농경지이다. 지난 10년간 친환경농업 농가 수는 30% 증가했고, 친환경농법에 의한 농경지 역시 43%나 증가했다. 친환경식품의 매출 또한 전체 식료품 중 4%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유럽 내에서 독일의 친환경농업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는 친환경농가의 비율이 18.6%, 스웨덴의 경우 15.8%, 이탈리아 8.9%, 스페인이 7.5%에 비하면 유럽 내에서 평균을 조금 넘어선 정도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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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사진 출처: 연방농림식품부 자료 Landwirtschaft verstehen – Fakten und Hintergründe

 

우리에게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다른 농업은 가능하다.

기계화 덕분에 농사일은 과거에 비해 수월해졌고, 수확량 역시 크게 늘었다. 2차 대전 직후 한 명의 농부가 열 명의 식량을 생산했다면, 현재는 142명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농경지 절반 이상이 100헥타르 이상을 소유한 농가에 의해 경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농민단체와 환경단체는 점차 기업화되고 있는 농업에 제동을 걸고 소농에 의한 농업을 강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데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를 위해 특히 첫 소유농지 (1헥타르)에 대한 지불금을 65%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농(기업농) 지원금 상한제 – 직접지불금 상한제를 도입, 농사에 불리한 조건을 가진 지역에 대한 보조금을 늘려서 지불금 재분배를 꾀하고, 콩과식물 재배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함과 아울러 친환경농업과 동물복지를 유념한 축산농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거대 기업농보다는 농민에 의한 생태적 농업을 확대하는데 농업의 미래가 있다는 것에 판단을 주저하지 않는다.

 

식량을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손으로 책임져서, 먹을거리에 예속되지 않게 하는 것, 먹을 것을 생산해주는 농민들의 농사가 자신들과 자식들의 현재와 미래까지도 안전하게 보장하는 생업이 되게 하는 것, 그래서 땅과 생명을 살리는 농사일이 누구나 선뜻 지을만한 농사가 되게 하는 것. 그래야만 우리의 농업도 미래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녹색연합 전문위원 임성희

1 Comment
  • 김기홍

    2016년 11월 5일 at 8:07 오후 응답

    우리나라 농민 1인당 경지면적보다 50배나 많은데 직접 생산 소득은 꼴랑 3배 많다는게 이해가 안되네요.
    한국농민 1인당 경지면적 1헥타르에 천만원인데
    독일은 58헥타르에 3천만원이라니 믿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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