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우리는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있다.

2015.04.16 | 환경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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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있다.

시간은 계속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다.
그날 이후 한번 진 꽃들은 봄이 되었지만 다시 피어나지 않았다.
4월 한가운데의 아름다웠던 봄날은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4월 16일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항해 중 급변침하며 서서히 침몰했다. 172명이 구조되었고 304명은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이들 중 9명은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상태다. 304명 중 250명은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열여덟 살의 아이들이었다. 맞다. 어쩌면 이것은 불행한 사고였을지도 모른다.

바다에 띄워 져서는 안 될 낡은 선박이 항해를 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던 평행수는 없었다. 돈 때문이었다. 그 낡은 배는 숙련되지 않은 비정규직 인력에 의해 하루하루 위험천만한 곡예항해를 해 왔다. 낡은 선박의 불안전한 보수를 눈감고 운행을 허가해 준 선박관계자와 행정기관은 그들의 무책임한 사인으로 예상되는 결과를 애써 모른 척 했다. 승객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해양경찰은 눈 앞에서 침몰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구조하지 않았다. 구조된 이들은 사실 탈출했다 말하는 것이 맞고, 구조는 진도 어민들의 몫이었다. 정부 관료들은 망자와 가족들을 모욕하고 거짓행위로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하루아침에 말 바꾸기를 하는 파렴치한 정치인들, 악의적인 보도와 왜곡을 일삼는 언론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의 끝판을 장식하는 ‘나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한 대통령이 있었다. 사고가 참사가 되는 순간들이었다.

이 사회, 이 국가의 거대한 모순, 불합리, 부조리, 무책임이 세월호를 통해 드러났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세월호 참사’로 부르게 되었다. 세월호의 참사이고, 이 사회의 참사이며, 대한민국의 참사가 되었다. 그리고 참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모든 의혹을 명명백백 밝혀주길 기대 속에 6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서명으로 만들어진 세월호 특별법은 지금 어처구니없는 시행령에 가로 막혀있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희생자를 위해 애도하고 가족을 잃은 이들과 함께 슬퍼하며 반성과 성찰을 이야기해야 할 때에, 우리는 최소한의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진상규명’을 외치며 일 년을 보냈다. 일년이 지났지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생명보다 이윤, 생명보다 권력을 중시하는 세상의 흐름, 생명을 모독하는 몰염치와 무지, 몰인정, 무감각.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그 모든 원인과 결과가 지금도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 일년, 팽목항에서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국가, 정치, 정부를 대신한 것은 시민들이었다. 오직 시민만이 자기의 역할을 해 왔다. 세월호에서 사람들을 구조했던, 언론이나 정부보다 더 빠르게 진실에 접근해 갔던, 유가족의 곁에서 슬픔과 분노를 함께 겪어왔던, 600만 명의 특별법 서명을 받았던, 노란 리본을 달고 광화문과 팽목항을 오갔던, 잊지 않겠다고 날마다 다짐하는 시민들. 가슴에 각인된 슬픔과 비통함을 안고 세월호 이전과는 다른 삶, 다른 세상을 살겠다고 생각하는 시민들만이 우리가 새로운 4월을 맞이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믿는다.

2015년 4월 16일 우리는 더이상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이 사회를 용납해선 안된다.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돈보다 생명이 중시되는 사회, 안전한 사회, 각자도생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한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유가족들과 함께, 시민들과 함께 할 것을 다짐한다. 생명존중. 녹색연합의 첫 번째 강령을 다시 새긴다.

2015년 4월 16일
녹색연합

2015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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