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녹색통신 19]마지막회 – 가능하냐가 아닌, 진정 원하느냐?

기부와 참여를 즐기는 사람들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는데 내 작은 힘을 보태고 싶어요.” 라고 말했을 때, 76세 된 독일 할머니는 “사람들이 도통 정의롭지 않은 세상일에, 다른 이들의 부당한 불행에, 그것을 변화시키는 데에 관심이 없다.” 며 한숨을 자아냈다.

그는 그가 가진 나이가 보여주듯,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젊은 날엔 유럽 68운동에 함께 하느라 분주했으며, 프랑스에서 독일어 교사로 일하다가 만난 프랑스 남자와 결혼했으나, 환멸을 느끼고 이혼했다. 자신이 몸으로 낳은 아이는 없지만, 아내와 엄마를 잃은 가족, 아이 넷 중 한 아이는 지체장애아인 가족과 함께 막내 아이가 군에 입대하기까지,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아이들을 돌보며 직장 일을 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학교에서 선생이란 직함으로, 기독교교육센터에서는 교육 책임자로 일을 했고, 지금은 심리상담 자원 활동을 한다. 외국인에게 무료 독일어 과외도 해준다. 자신의 어머니와 언니가 그랬듯이, 불필요하고 부당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의식 강한 여성이다. 회화를 전공하거나 교육받은 적은 없지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가 당당히 마부르크 예술가 협회 회원이 되었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담은 조금은 추상성이 담긴 그림을 그리는데, 화보집도 발행했고 전시회도 가끔 한다. <나무>를 주제로 한 전시회 오프닝에 나보다 조금 늦게 <지구의 날> 조직위원회 위원장이 왔었다며, 내게 그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신다.
그리고 내게 이제 다 큰 아이와 남편은 떼어두고, 홀로, 먼저, 한국으로, 원하는 단체 활동으로 돌아가길 종용하신다. 그녀를 독일에서 뒤늦게 알게 된 건 큰 위안이었다. 그런데 그녀 말대로 ‘사람들이 도통 정의롭지 않은 세상일에, 다른 이들의 불행에, 그것을 변화시키는 데’에 관심을 갖지 않는 걸까? 그런데도 독일이 이만큼 진보한 걸까?

68 x 베를린공대건물

68운동당시 비상조치법에 반대하는 베를린공대 학생들의 수업거부
출처: „TU Berlin 1968a“ von Holger.Ellgaard, 위키페디아 CC BY 3.0


떡대만큼 겁나게 활동적인 회원들

독일의 분트 BUND라고 하는 환경단체는 회원수가 50만 명이 넘고 풀뿌리 마을 단위 및 지역에 2,200개의 그룹이 있다. 나부 NABU라는 환경 단체도 회원이 54만 명이나 되며 35,000명의 적극적인 활동회원이 2,000곳에 그룹을 만들어 지역의 환경을 감시하며 가꾸고 있다. 독일그린피스 회원 역시 58만 명이고, 105개의 지역조직을 두고 있다. 이들은 몇 년 새에 회원 수 50만명을 훌쩍 훌쩍 넘긴 이른바 대형 단체들이고, 매년 회원 수를 갱신하며 엎치락 뒤치락 하며 서로 가장 회원 수가 많다고 자부한다(참고로 집권당인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민주당 당원은 각각 50만 명이 채 안 된다). 이렇게 회원 50만 명을 가뿐히 넘어버린 큰 단체 외에도 대안교통클럽, 그뤼네 리가, 로빈우드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단체 규모를 월등히 능가하는 단체들이 수도 없이 많다. 독일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15세 이상 독일인 중 1천2백9십만 명이 무보수로 시민단체나 주민대책위, 클럽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참고로 독일 전체 인구는 8천만 명이다).

큰 환경단체에는 100명, 200명씩 되는 전업 상근활동가들이 있지만, 이들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하지는 않는다. 이론과 대안, 법률적 검토는 수백 명에 이르는 자원활동 전문가의 몫이다. 조사활동도 해당 전문가나 관심 있는 회원들이 맡아서 한다. 관심 주제별로 활동 그룹을 만들고, 스스로들 연락하고 조직해서 유전자조작 식품이나 유해물질 조사를 위한 샘플 수거 및 표기 검사, 조류조사등 동식물상 조사를 벌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캠페인을 진행한다. 큰 단체는 각각 수천 명씩의 활동회원이 전국에 포진한 채로, 조금 규모가 작은 단체는 작은 대로 (그러나 절대 작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을 조직하고 벌인다. 연령대도 다양해서 13세 어린이 그룹에서부터, 청년그룹, 그리고 18세 이상 거의 80세까지의 일반그룹이 테마 별로 활동영역을 나눈다. 75세의 연금수령 퇴직자와 19세의 젊은 아이가 함께, 가까운 사이임이 입증되면 통하는, 존칭이 생략된 호칭 너!를 써가며 의논하고, 역할 나누고, 일이 제대로 되었는지 평등하게 확인한다.

박사학위소지자 100명을 포함해서 150명이 상근연구원으로 활동하는 생태연구소를 비롯해 생태경제, 생태사회, 지속가능한 사회 등을 연구하는 연구소 역시 전국에 포진해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이며,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이나 기관, 혹은 기업연구소 외부에 존재하는 민간연구소이며 정부나 환경단체들에서 위임한 연구들을 진행하는데, 그 연구가 가지는 권위는 논쟁의 강력한 무기로, 논문의 숱한 인용에서 빈번히 입증된다.

단체나 연구소 외에 특정 사안을 둘러싸고 모이는 주민대책위는 정부나 개발사업주의 주요 고려대상이다.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했다가는 사업의 진척도도 늦고, 사업에 오히려 유리하고도 필요하다는 교훈에 따른 것이다. 주민의 알 권리, 사전협의, 의사 참여 권리를 배제하지 않으며,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민간단체도 있다.

원전반대 인간띠잇기

슈트트가르트에서 네카베스트하임 원자력발전소 사이를 이은 인간 띠잇기
출처: „Menschenkette stuttgart 12032011“ von Michael Miess 위키페디아 CC BY-SA 3.0

Protest gegen Erweiterung des Tagebaus Cospuden

콘서트

1991년 생명의 소리 합창단의 걸프전 반대콘서트. 프랑크푸르트 미공군기지 앞
출처: „LebenLaute“ von Yann Forget 위키페디아 CC BY-SA 3.0

 

민들의 후원금이 년간 10조원에 이른다!

야생동물보호기금(WWF)의 재력과 활동력도 왕성하다. 독일에 재단이 많은 것은 이른 바 갑부가 많았던 탓이기도 하다. 그 액수를 상상하기 힘든 부자 중엔 재산 상속을 자식에게 하지 않거나, 그 비율을 줄여서 재단의 종자돈으로 선뜻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부자 부모로부터 상속을 포기하는 가난한 활동가도 있다. 많이 벌수록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쯤은 일반지성에 속하듯이,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단체에 후원금을 내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단체들의 사업비는 그린피스를 제외하곤 정부의 프로젝트로 보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단체의 재정규모가 큰 것은 시민들로부터 받은 후원금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단체에서 신입 상근활동가 급여가 세금과 사회보장세를 빼고 200만원을 훌쩍 넘을 수 있는 것은, 단체들이 어느 정도 안정된 재정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상근활동가는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추어야 뽑히는데, 캠페인 담당자 모집공고를 보면, 독어(국어)와 영어 구사에 막힘이 없어야 하며, 로비활동경험, 언론활동경험, 소셜 미디어, 온라인, 모바일에 익숙하고, 전략적 사고 및 정치적 감각, 복잡한 상황에서 빠른 판단력과 적응력을 가지고, 체계적 업무능력, 성실성, 원활한 소통능력을 가진 사람, 화학물질 및 나노테크놀로지, 살충제 등에 관한 유럽연합 규정에 능통한 사람을 우대한다고 적혀있다. 물론 이런 능력들은 대체로 다년간의 자원활동을 통해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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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원전홍보활동중인 환경단체 분트 회원
출처: „BUND-Infostand, Minden (2011)“ von Oliver Hallmann (ohallmann) 위키페디아 CC BY 2.0

사람들이 기부에 적극적인 것은 자신의 소득을 반드시 자신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유도 있고, 자신의 소득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에도 기초한다. 자신에게 크게 부담되지 않는 만큼의 돈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기부하는 것만큼 손쉬운 보람이 없다는 생각도 바탕에 있다. 개별 단체별 후원금 액수는 파악이 되지만, 독일 전체 액수로 집계하는 것은 정확한 데이터를 내기 어렵다고 한다. 독일통계청 조사를 신뢰한다면, 2012년 연간 60억 유로 규모로 집계되고 있고, 매년 5.5%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세금정산과 관계없이 현금으로 기부되는 금액까지 합하면 연간 70억유로 (약 10조원)로 예측한다. 독일인 중 35%는 후원금을 내고 있고, 젊은 층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후원을 많이 한다. 직업경력이 길수록 소득이 높고, 또 사회보장의 하나인 퇴직연금으로 노후보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소득이 많은 층과 낮은 층의 경우 자신의 가처분 소득 중 2% 를 후원금으로 기부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데, 중산층은 평균 0.7%에 머물고 있는 점이다.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하나 이상의 단체를 후원하고 있었고, 26%는 4군데보다 많은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환경단체에 회원으로 활동하거나 후원회원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은 생활 역시 자신의 생각에 따라 설계하고 바꾸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채식을 즐겨하며, 지역 먹거리를 찾고, 공정무역을 선호한다. 인구 수가 많지 않은 지역에서도 이들 유기농가게나 공정무역, 지역먹거리운동이 장사가 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사고와 생활을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은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함께 성장한 시민운동

독일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당이 현재 기독교 민주당과 집권을 하고 있는 상태이고, 녹색당, 좌파당이 나란히 국회에서 활동하는 국가이다. 보수로 통하는 기독교민주당의 정책공약은 우리나라 진보적 정당들의 공약보다 더 진보적이고 급진적이다. 한 사회의 진보 수준에 따라, 그 사회에서 보수라 통하는 세력이나 당의 정책적 수위는 다르기 마련이다.
우리에겐 부럽기 그지없고, 따라잡아야 할 것 같은 현 독일의 환경정책이 이 사회 속에서는 하루빨리 넘어서야 할,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낡은 정책일 뿐이다. 환경단체는 반세계화단체, 민주주의 네트워크, 빈곤퇴치, 질병퇴치, 여성, 성소수자 및 이민자 권리 향상을 위한 단체, 종자특허반대단체 등 갖가지 주제를 담은 무수히 많은 단체들과 함께 가며 성장해 왔다. 독일 내 환경정책의 월등함은 그 하나만 독보적일 수도 없고, 여러 사회 진보적 운동이 함께 동력을 만들어내면서 성장한 영역중의 하나일 뿐이다. 환경운동 역시 부조리와 부정의, 부패, 인간과 자연을 해치는 요소들이 하나로 엮인 채 상부상조했던 구조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시민사회의 축으로서 민주사회를 성숙시키는 여정 일부였듯, 환경문제 역시 환경과 자연, 녹색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지 않은 단체들도 함께 주력하고 지원하는 공동의 과제이며 테마 이기도 하다.
여전히 독일의 환경단체나 시민단체들도 어떻게 하면 회원 수를 더욱 증대시키고,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게 하고, 소통을 늘릴 것인가가 고민이다. 많은 이들의 발상과 지혜를 모으고 내부의 의사결정구조를 보다 민주적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전문가 부족을 호소하며, 보다 많은 후원금을 확보하기 위해 고민한다. 그리고 스스로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질문한다.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야

사회정의 실현이 먼저다.
출처: „Hessisches Sozialforum“. 위키페디아 CC BY-SA 3.0

중요한 건 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느냐의 문제

독일을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회로만 소개하게 되는 균형 없는 시각의 위험을 굳이 경계하지는 않았다.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통신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러운 사회, 독일로의 이민 혹은 거주에 대한 유혹을 일게 했다면 그것은 의도가 아니었다. 부러운 사회라는 상은 이민의 대상이라기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의 중간 기착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며, 우리가 원하는 정책이 실제로 의지만 있으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델, 살아있는 지표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독일이 그나마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괜찮은 나라 축에 속하게 된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조금 앞질러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그 싸움의 작은 결과가 그들의 현재일 뿐이다.
우리가 보기엔 탁월해 보이나, 그들이 보기엔 미흡하기 짝이 없는 그 성과를 두고 그들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며 한 걸음 더 가기를 지금도 주저하지 않을 뿐이다.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고 낭패감에 젖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이 클수록 더 큰 이상에 다다를 수 있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여정을 자신의 삶의 여정과 같은 길이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수가 많다는 것이 다르면 크게 다른 것이다. 또한 후진국의 자원과 노동을 바탕으로 한 선진국 복지의 기만성을 부끄러움으로 안고 늘 나라 안과 밖에서 연대하려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이곳에서 나는 후진 아시아에서 온 외국인이며 이방인이자 타자였다. 외국인으로서의 생활이 내겐 선택이었지만, 내전과 정치적 탄압, 환경재해로, 가난으로 제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피난해 온, 그러고도 난민자격을 획득하지 못해 다시 추방되는 사람들이 있다. 선진국가란 그렇게 모진 것이며 가면을 하나 벗기면 또 다른 얼굴로서의 잔혹한 표정이 도사리고 있다. 내 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돌아가서 우리나라를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 것이 길다면 긴 내 외국 생활의 교훈이다.

이제 내 따뜻한 동료, 이웃들과 함께, 다른 나라 사람들의 귀감이 될만한, 그래서 통신거리가 될 만한 일들을 할 순서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지치지 않고 일궈야 할 일이 있으므로. 내가 한국의 환경단체에서 일했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반원전 단체에서 나온 월간 리플렛을 건네주셨던 76세의 할머니. 카페에서 “네가 가진 이상의 크기만큼 가장 푸짐한 아이스크림”을 고르라던, “사람들이 도통 정의롭지 않은 세상일에, 다른 이들의 부당한 불행에, 그것을 변화시키는 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여기는 76세의 할머니는 사실 아직도 허기를 느끼는, 여전히 희망을 품은, 펄펄한 젊은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는 못 뵐 그 할머니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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