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마을에 ‘판사님 오신 날’

2015.08.13 | 탈핵

비가 올 것 같은 날이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모두가 비라도 시원하게 내리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은 밀양 송전탑 주민들 재판을 맡은 담당 판사의 현장검증이 있는 날. 현장검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검증이 끝나기 전까진 비가 와선 안된다. 서울을 출발하면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비야 오지 마라.

밀양 고답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지붕 위로 송전탑이 군데군데 보였는데 마치 뿔이 난 것처럼 보였다. 마을 전체가 화가 났을 법하다. 하지만 이 날은 여기에 귀하신 손님이 찾아오기 때문에 묘한 설렘과 긴장도 흐르고 있었다. 바로 재판을 받고 있는 주민 18명의 담당 판사가 그 주인공이다. 현장검증이 주된 방문 목적이지만 밀양 송전탑에 관한 사건 수가 하도 많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 사건의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도 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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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답마을은 밀양 철탑이 지나가는 다섯 개 마을 중 유일하게 합의를 하지 않은 곳이다.

 

현장검증을 하는 동안 마을주민들은 하나같이 판사 뒤를 따라다녔다. 마을을 구원하러 오신 분 마냥 판사를 바라보는 눈에는 기대감이 차 있었다. 사실 기대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러 온 중립의 권력자이기 때문에 숨통이 트였을 것이다. 두 사건의 현장검증을 마치고 마을 주민들과 판사일행은 다섯 마을에 세워진 송전탑을 둘러보기로 했다. 시민불복종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서이다. 주민들의 얘기는 여기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 한전과 밀양시에 대한 분노 등 그 상처들을 꺼내는 입은 화가 나 있었지만, 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퍼보였다. 첫 번째로 간 곳은 고답마을의 115번 송전탑이었다. 과수원 중간에 위치한 송전탑 주위에는 이미 마을주민들의 대부분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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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번 송전탑 근처 천막 앞에서 주민들이 판사에게 호소하고 있다

 

“115번과 116번이 저기 밑에 보이는 고정리 1반과 2, 3반의 한가운데에서 마을을 갈라놓는 것도 문제인데, 121번은 하우스 논농사를 짓고 있는 가운데에 세워져 있어요. 거기는 농민들이 그 하우스에서 먹고 자고 상주하면서 농사를 짓고 살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공사를 하는 것은 너거들 죽으라고 하는 것 밖에 더 됩니까?”

밀양대책위 김영자 총무가 판사에게 호소했다. 이어서 밀양 송전탑 담당 변호사가 말했다.

“이미 2013년도에 4mG 기준으로 했을 때 지속적인 전자파가 인체의 암발생률을 3배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고, 한국 전력공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피해에 대해서 지금까지 주민 분들이 하신 말씀이 경로를 바꿔달라는 얘기가 상당수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지금 현장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실제로 평생을 농사를 지어왔던 주민들 머리 위로 전자파가 흐르고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도시에서 일하는 사무실 머리 위로 전자파가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분들은 이 철탑이 세워져서 평생 가꿔온 땅의 지가가 0원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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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번 송전탑

변호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민들은 아무도 땅을 살 사람이 없다, 그래도 어떻게 여기를 떠나 나가나 등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주위의 주민들은 바로 보이는 115번 철탑 밑에까지만 갔다가 이동해 달라고 부탁했다. 실제로 송전되는 와중에 콩 볶는 것 같은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는 것이다. 송전탑 밑으로 이동했을 때 정말 그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지지직 지직 직직 따닥 지지직 딱 지직 지지직 따따닥….’

<송전탑 151번 소리>

이정도 소리를 잠시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쌓이고 불안감이 드는데 보통은 이것보다 더 크게 들린다고 하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소리가 큰 날은 밑에 있는 마을까지 들린다고 하니 정말 어찌 이 마을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다른 어느 마을을 가도 송전탑이 항상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머리는 지끈거리는 것 같았고,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송전탑이 가까이 보이는 축사에 있던 한 어미 소는 새끼를 가졌다가 유산했다고 한다. 주위에 그러한 가축들이 적지 않아 보였다. 송전탑은 주민들의 건강과 재산권 모든 것에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일하러 가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대문을 열 때, 열자마자 보이는 저 송전탑들 때문에 얼마나 큰 상처가 날마다 가슴에 새겨질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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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중심에 있는 마을회관 앞에 765kw 송전탑이 떡하니 위용을 과시한다. 765kw 송전탑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경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재산권 피해에도 막대한 영향을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765kw에서
나오는 지속적인 전자파가 어떻게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며, 더 나아가 밀양 3대 악법
중 하나인 송주법으로 인해 제대로 되지 않는 보상이 더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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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에서 쉬려면 항상 송전탑을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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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더라도 항상 볼 수밖에 없고, 소리가 큰 날에는 귀가 멍멍해진다고 한다.
실제로 아직은 시험 송전을 하고 있을 뿐이라서, 실제 가동이 된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지
상상이 안 간다고 한 주민은 말했다.

 

마지막으로 평밭마을에 도착을 했다. 한 주민은 판사를 보자마자 절을 하며 살려달라고 연신 애원했다. 평밭 마을에는 공무원을 퇴직하신 분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도 있었다. 이 마을은 좀 더 산 깊숙이 위치해 있었는데, 몸이 아프신 분이나 노후를 편하게 보내고 싶어 귀농하신 주민도 여럿 있었다. 이 마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마을을 들어올 때나 나갈 때는 항상 송전탑 바로 밑으로 거쳐 가야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잘못 된 노선이지만, 지을 때 몇 십 미터라도 더 안쪽으로만 했어도 덜 분통이 터졌을 거라고 한 주민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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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밭 마을 하나뿐인 입구이자 출구인 산길

 

오후 1시부터 시작된 검증과 방문은 오후 6시가 다 되어서 끝이 났다. 판사가 가는 곳마다 주민들은 차를 타고 이동하며 뒤를 쫒아왔고, 연신 ‘판사님이 오셔서 너무 숨통이 트인다.’고 주민들은 얘기했다. 판사가 차를 타고 가는 길에도 주민들은 계속해서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하고 이젠 옷처럼 입고 들고 다니는 피켓을 들고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내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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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내내 판사와 같이 동행하느라 힘들었을 텐데도 가는 마지막까지도 호소를 하고 있다

누가 이 분들을 이렇게까지 내몰았을까. 밀양 3대 악법도 악법이지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윤리나 인간다움 마저 포기한 정부와 한전관계자들의 행태에 정말 치가 떨린다. 전기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인간이 전기를 만들기 위해 삶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계적으로 탈핵을 외치는 와중에 신규원전을 더 건설하겠다는 정부와 관계자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국민들에게 상처를 줄 것인가. 원전건설의 대기업과의 유착관계, 핵 발전의 여러 가지 비리들을 감추고 계속해서 원자력 발전에 대해 얘기하는 몇몇 이익 핵 마피아들을 위해 한마디 하고 싶다.

“ 핵.노.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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