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당신은 어떻게 마주합니까

너를 그리기(정은혜, 2014, 캔버스에 유화, 73 x 91 cm)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라고 부른다. 너를 가르키는 게 나를 가리키는 말인 ‘자기’. 나의 모습을 가장 잘 보는 것도 내가 볼 수 있는 유일한 ‘자기’인 당신을 잘 보는 것일 수도”

뷰파인더 속의 아이가 그를 보고 부끄럽게 웃습니다.
인민군 아빠와 손잡고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 갓 결혼식을 올린 설렌 신부, 얼큰하게 취한 소풍 나온 어른, 그리고 수줍은 김일성종합대생 장류진. 사진 찍는 임종진은 그들을 알아차리고 말을 겁니다. 대화가 오갑니다. 그들과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함부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삶의 공감, 감정의 교감이 있어야 셔터를 누릅니다. 임종진에게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나중의 일입니다. 세상과 사람과의 이야기가 우선입니다. 그래서 ‘찍는 사진’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인 사진’입니다.

고단하고 아픈 삶이지만, 아름다운 순간도 있다고 말합니다. 임종진의 사진 속 인물은 나와 다른 ‘타자’가 아닙니다. 나와 다를 바 없는, 나와 생을 함께 살아가는, 어쩌면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이념으로 무장한 ‘늠름한 장교 동무’는 어릴 적부터 알고 있던 ‘동네 아저씨처럼’ 찍힙니다. “림선생, 사는 것이 뭐 다 똑같디요. 무엇이래 좋아서 그리 찍습네까?”

1965년 자갈치시장, 질펀한 사투리와 물씬 나는 비린내.
길 구석에 쪼그려 국수를 먹고 있는 네댓 살쯤 되는 아이, 시커먼 포대기로 동생을 업고 있는 누나, 찢어진 신문지를 깔고 누운 거지 소년, 그리고 지게꾼의 시리도록 깊은 시름. 사진예술가 최민식은 ‘인간’이 거기 있기에 셔터를 누릅니다. 그가 카메라를 들었을 때, 뷰파인더에 투영된 것은 상처 입은 동족의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서민들의 거칠지만 정직한 삶이었습니다. 살아 내기 버겁지만 삶을 대하는 진실이 있기에 지게꾼의 모습은 슬퍼도 아름답습니다. 시대와 정신의 깊이를 읽습니다. “사진작가의 눈은 무엇이 핵심인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꿰뚫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흑백사진의 인물은 과거의 유물이 아닌,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최민식은 사진 속 피사체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담은 시선과 얼굴은 아직도 울림이 강합니다. “최민식 선생님, 지저분한 걸 뭘 그렇게 찍으세요.”

J 씨는 ‘천하걸작 영송’, 한국 금강소나무를 발견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경북 울진의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금강소나무 사진을 찍었습니다. 삼각대를 세우고 구도를 잡는데, 아무래도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다. 맘에 들지 않습니다. 촬영에 방해가 된다며 220년 된 금강소나무를 베어냅니다. 아름드리나무 수십 그루도 잘랐습니다. 깊은 숲 이른 아침, 운무도 적당히 머금었습니다. 셔터를 누릅니다. 우리민족의정서가담긴멋진소나무풍경사진이 완성됩니다. 소나무 사진작가 J 씨의 사진은 국내외 전시회에 출품돼 수백만 원에 거래되었습니다. 그에게 사진 속 피사체는 어떤 의미입니까. “사진가 J 씨, 나무의 손발을 잘라버리는 그 마음은 무엇입니까?” 동강할미꽃을 온전히 찍기 위해 주변을 걷어버리고, 버둥대는 어린 새의 다리에 강력 접착제를 바릅니다. 솜다리를 찍은 뒤 다른 이가 찾지 못하도록 짓밟습니다. 두루미와 점박이물범의 쉼 자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시선, 당신은 삶을 그리고 자연을 어떻게 마주합니까.
사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생명의 죽음을 전시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삶을 부정하는 탐미주의는 필연, 잘못입니다. 임종진의 똑딱이 사진이든, 최민식의 속사에 의한 순간 포착이든, 그들은 바닥에 엎드려 시간을 기다리고 빛을 기다리며 사람과 자연과 관계를 소중히 받아들입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아름답고 다양한 시선.
삭막하고 메마른 나의 마음이 걱정이지만 당신과 함께 괜찮은, 살만한 세상 속에 마주하고 싶습니다.

글 · 윤상훈(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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