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남길 것인가

오랫동안 인간의 삶은 근대 유럽의 경험적 세계관과 자본주의적 효율성에 지배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은 인간의 물질적 풍요와 안락한 생활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며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인간은 모든 것이 과잉 생산되고 과잉 소비되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제조업에 종사하며 사업체를 이끌어 가고 있는 저에게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 그리고 사회적 이슈들은 언제나 묵직한 화두와 고민을 안겨줍니다. 브랜드를 창립한 2013년 이른 봄부터, 저는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에서 비롯하여 ‘무엇을 남길 것인가’로 귀결되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세우던 과정에서 가장 큰 줄기를 관통한 주제는 ‘소멸’에 대한 사유였습니다. 소멸은 향기가 지닌 가장 매혹적인 속성일 것입니다. 좋은 향기는, 감각의 세계에서 자취를 감춘 뒤에도 기억과 시간의 영역에 오래도록 머물며 깊은 여운을 남기지요. 저는 향기의 본질이라 표현해도 좋을 이 속성을 브랜드에, 제품 하나하나에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화려한 치장을 위한 물건이 아닌, 인간의 숙명인 소멸을 향한 여정을 함께하는 벗과 같은 물건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향기의 근원인 자연을 오랜 지배와 착취의 대상에서 상생과 협력의 존재로 다시 끌어올리고자 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적에 대한 고마움을 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쓰레기로 되돌려주는 어리석은 짓은 우리 세대에서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생산해서는 안 되는 것과 남겨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분명한 하나의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6년 동안, 브랜드가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중심을 지키며 건강한 속도로 성장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우선 ‘자연을 적게 빌어 크게 쓰자’는 생각을 바탕으로, 향기로운 일상을 영위하는 데에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최소한의 제품을 생산합니다. 향기의품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분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느리고 단순한 유통 구조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또한 환경을 오염시키는 원료와 포장재 사용을 지양하는 제로 웨이스트 정책과 함께, 쓰레기가 아닌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소멸할 수 있는 삶의 길을 탐색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세상을 바꾸는 일에 기꺼이 앞장서는 것과는 달리, 저의 고민과 실천들은 스스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고자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 그러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되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수토메 아포테케리에 따라붙는 ‘제로 웨이스트 브랜드’라는 수식어가 다소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들,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작은 것에서부터 실현해 나가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저희 브랜드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고자 합니다.

1. 소품종 소량생산
기업이 주도하는 공장제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산업과 불합리한 유통구조가 초래한 부작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개선하는 길은,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 익숙한 패러다임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일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발상에 기초하여 수토메 아포테케리는 최대한의 이익과 정확히 반비례하는 최대한의 품질을 생각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주인공이 되는 유통구조인 직거래 방식을 고집합니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제품군 개발이 아닌 기존 제품의 품질을 지속해서 높이는 데에 예산을 투자하며, 재고율을 낮추기 위해거의 모든 제품을 주문제작 방식으로 생산합니다. 자본주의적 편의성에 길든 소비자의 ‘더 많이, 더 싸게, 더 빨리’와 같은 사고방식이 노동의 질과 지역경제를 흔들고 자원을 고갈시켜 왔습니다. 아주 작은 번거로움도 감수하지 않으려 하다가, 찰나의 시간을 앞당기려 하다가 우리의 삶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고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수토메 아포테케리는 경제적이면서도 효율성이 큰 룸 스프레이와 문명의 역사 속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초의 재료인 밀랍을 사용하여 제작하는 캔들로 구성된 미니멀한 제품군,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답게 숙성되는 자연의 향기를 통해 단순하고 느린 템포의 일상을 제안합니다.

2. 제로 웨이스트 정책
수토메 아포테케리는 플라스틱 용기와 스티로폼, 일회용 비닐 등 환경과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포장재 대신 습자지만을 사용합니다. 유리 용기에 담긴 룸 스프레이와 캔들을 종이만으로 포장하는 것이 안전한지를 우려하는 분들을 가끔 만나기도 하지만, 운송 중의 사고로 택배 상자 자체가 손상되었던 두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껏 배송 과정에서 제품이 파손된 일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습자지를 여러 장 겹쳐 두툼하고 견고하게 포장합니다. 물론, 더 큰 비용과 정성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택배 상자를 여는 순간 에어캡과 비닐 대신 정갈한 종이 포장을 마주했을 때, 소비자가 경험하고 인지하게 되는 가치들은 단 몇백 원의 비용 차이로는 비교할 수 없는 효용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친환경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고객님들은 이 습자지를 단정하게 접어 향을 먹인 뒤 옷장이나 신발장에 넣어 두기도 하고, 선물을 포장할 때 재사용하면서 저희의 철학도 함께 전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주요 거래처에서는 작년부터 시향지나 명함 용지로 쓰기에 용이한 종이 완충재 등을 잘 모아 두었다가 보내 주시기도 합니다. 국가 차원의 환경 정책이 실효성을 갖고, 관련된 이슈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는 속도는 언제나 더딥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연대하는 것으로 우리는 견고해 보이기만 하는 세상에 작은 균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3. 향기로운 삶을 위하여
수토메 아포테케리는 역사와 철학, 예술, 과학 등의 분야에 걸친 다양한 형식의 세미나와 캠페인을 기획하고 심리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한 향기 명상과 퍼스널 조향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향기로움’에 대한 논의를 감각의 영역에서 사유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기 위한 연구와 실험을 지속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물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인류 문명을 지배해 온 근대 유럽의 경험적 세계관과 자본주의는 인간이 지닌 그 고유의 본성을 폄하하고 짓밟았습니다. 수토메 아포테케리는 인간성을 회복하고 상생의 지혜를 되찾기 위한 단서들을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우리 안에 내면화된 낡은 인식 체계를 함께 극복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향기로운 삶을 가꾸어 나가는 여정에 좋은 동반자가 되고자 합니다.

 글 · 홍윤경(수토메 아포테케리 대표)

홍윤경 님은 삶과 일상의 영역에서 지속 가능한 자연주의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천연 향기 브랜드 수토메 아포테케리를 운영하고 있다. 소비의 대상으로써가 아닌, 아름답게 소멸하는 과정으로써의 삶을 사유하게 하는 향기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브랜드 운영의 목표로 삼는다.

 

No Comments

Sorry, the comment form is closed at this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