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벗하기

한 해의 마지막 밤, 서울 종로의 보신각 주변은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간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빕니다. 보내는 아쉬움과 맞이하는 설렘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여느 때와 달리 순간과 순간의 흐름을 느끼며 시간에 마음을 쏟습니다. 분주히 돌아가던 거리가 차분해지고, 무심히 봐 넘기던 주변 사람들이 정겨워집니다. 추운 겨울이지만 내 안에서 한 줄기 따스함이 번집니다. 일상과 다른, 새로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잠시일 뿐입니다. 새로움과 설렘은 이내 빛이 바래고, 차분함과 정겨움은 분주함과 무심함에 자리를 내줍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일상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 지배합니다. 우리는 공간에 익숙합니다. 공간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곳입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곳, 힘으로 무언가를 자꾸 내 것으로 만드는 곳입니다.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뽑아내어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입니다. 이 모두가 공간에서 벌어지는 풍경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은 소리 없는 싸움터가 됩니다. 시간은 공간을 위해 필요할 뿐 그 자체의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것으로 여기고 그렇게 소비합니다. 언제나 ‘더’를 쫓는 우리에게 시간은 늘 모자랍니다. 이동수단과 소통수단이 발달할수록 시간은 더 모자랍니다. 아무리 시간을 아껴 써도 우리는 늘 바쁩니다. 아니, 아낄수록 더 바빠집니다.

우리가 무심코 써버리는 시간이 공간보다 더 근원적인 삶의 토대입니다. 공간은 시간이 허락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잘 모릅니다. 공간과 달리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은 언제나 낯설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시간의 낯설음을 피해 공간의 익숙함으로 달아나고, 두려움을 피해 편안함 속으로 숨어듭니다. 시간을 외면한 채 공간의 삶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외면하는 한 우리의 삶은 온전한 평화에 이르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앗아갈 마지막 순간까지 외면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공간에 더 집착해보지만,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는다고 시간의 문제를 풀 수는 없습니다. 공간에서 만든 것은 덧없이 소멸하지만 시간은 영원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안식’은 공간의 분주함에 가려져 온 시간의 의미를 드러내줍니다(아브라함 헤셸, <안식>). 성서는 하느님이 창조하던 일을 모두 마치고 이렛날에 쉬었다고 알려줍니다. 안식의 기원입니다. 히브리어로 안식의 어원은 ‘멈춤’입니다. 하느님이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바라보는 멈춤의 시간이 바로 안식입니다. 안식은 우리도 공간에서 몰두하던 일을 멈추도록 초대합니다. 안식이라는 멈춤의 시간으로 들어서면, 우리의 관심은 소유에서 존재로 향합니다. 공간 속에는 ‘자기 것’이 있지만, 시간 속에는 ‘자기’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물보다 삶을 생각하고, 어떻게 더 많이 소유할지보다 어떻게 살지 고민합니다.

안식으로 분주함에서 벗어나 고요함을 되찾으며, 그동안 앞만 보며 달려온 자신의 삶을 비로소 마주봅니다. 관조하는 안식은 세상을 일구고 돌보는 노동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삶을 성찰하게 합니다. 끝없이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강요하고 끝없이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세상의 정체를 밝혀줍니다. 오늘날 세상이 약속하는 풍요는 다수의 희생을 전제하는 수탈입니다. 평화는 힘의 지배로 강제하는 침묵입니다. 안식으로 세상의 비윤리적이고 반생태적인 거센 흐름에서 벗어나 멈추어 설 때, 우리는 서로 맞서 꺾어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이며 세상 만물은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벗어나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식은 배타적으로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탐욕과 단절과 무관심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가 됩니다. 이제, 시간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영원의 안내자가 됩니다. 안식은 우리에게 축복이자 거룩한 시간입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한 해의 평화, 나 자신의 평화와 이웃의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향한 간절한 바람과 달리, 우리가 끊임없는 생산과 소유와 소비에 몰두하는 한 자원은 유한하고 욕구는 무한한 세상에서 갈등과 분쟁은 불가피합니다. 간디의 말대로,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는 충족시킬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은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아니,단 한사람의 탐욕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탐욕이 아닌 필요에 만족하려면 공간을 벗어나 시간으로 들어가 머무는 때가 필요합니다.

바쁜 삶이지만, 아니 바쁜 삶일수록, 자주 안식의 때를 누리기 바랍니다. 잠시라도 좋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시간과 벗하며,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서도 시간 저편, 영원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우리 자신이 되고 세상은 더 풍요롭고 평화롭게 될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복음의 기쁨>).

 

글 · 조현철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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