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랩 대신 ‘밀랍랩’

30년 전 즈음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놀라운 광고를 보았습니다. ‘랩’이었습니다.

당시엔 밀폐 용기라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음식을 보관할 때 뚜껑이 없으면 접시로 덮어두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땐 학교에서 급식하던 시절도 아니라 모두 도시락을 갖고 다녔는데, 도시락통을 조금만 흔들면 반찬 국물이 다 새버렸습니다. 중국음식점에 짬뽕을 시키면 어떤 날은 국물이 반정도는 사라진 채 배달되어 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랩’이 등장한 것입니다. 신세계였습니다. 먹다 남은 음식은 그대로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으면 되고, 뚜껑이 좀 헐거워도 랩으로 싸면 샐 염려도 없었습니다. 채소도 랩으로 싸놓으면 수분 증발을 막아주니 오래 보관되고요. 전자레인지가 많이 보급되던 시절인데,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때도 랩은 필수품이었습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가게에선 진열해놓은 신발에도 랩을 싸 놓았던 게 기억납니다. 어떤 요리사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랩에 달걀을 깨어 넣고 동그랗게 말아서 끓는 물에 넣다 꺼내 수란을 만드는 요리를 선보이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랩을 활용한 생활의 지혜는 무궁무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랩이 건강에 해롭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당시 시판되고 있던 랩 대부분은 PVC 소재였습니다. 딱딱한 PVC를 랩으로 만들기 위해선 부드럽게 해 주는 가소제 프탈레이트가 들어가는데 프탈레이트에는 환경호르몬 물질인 다이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A)가 검출됩니다. 이후에 PVC가 아닌 폴리에틸렌을 소재로 한 랩도 시판되긴 하였지만, 더는 랩을 생활의 ‘지혜’로 쓸 수 없었습니다. 아마 그때 즈음부터 우리 집에서 비닐 랩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밀폐 용기도 좋아져서 국물이 샐 염려도 없고, 전자레인지 유해성도 논란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아무리 안전한 플라스틱이라고 말해도 유해성을 파악하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유해성도 추가됩니다. 그리고 이젠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을 ‘편리’로만 바라볼 수 없는 세상입니다. 플라스틱은 썩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태워도 유해물질을 만들고, 분해되어도 결국 미세플라스틱이 되는 거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굴에도, 수돗물에도, 새우에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는 세상입니다. 사람의 몸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나왔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집단이든 플라스틱을 덜 생산하고 덜 쓰지 않으면 안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플라스틱을 쓰지 말자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데, 막상 쓰지 않으려면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어떤 이에겐 여전히 비닐 랩이 생활의 필수품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대안 제품을 소개합니다. 먼저 퀴즈부터 풀어보시죠?

“아주 작은 곤충입니다. 그런데 이 곤충이 없으면 지구별 모든 생명에게 큰 문제가 생깁니다. 이 곤충이 없으면 열매가 열리지 않아 지구별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위기에 빠집니다. 지구별 모든 생명의 생사가 이 곤충에게 달려있습니다. 또 우리는 이 곤충으로부터 귀한 걸 많이 얻습니다. 달콤한 꿀도 얻고, 약도 얻고, 또 이것도 얻습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것을 다양한 용도로 생활에 사용해 왔습니다. 초, 접착제, 항균제, 화장품, 코팅이나 광택제 등등. 이 곤충은, 또 이 곤충에서 얻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꿀벌’이고 꿀벌에서 얻는 ‘밀랍’입니다. 모든 생명이 서로 기대어 살고 있는 지구별이지만 알면 알수록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은 꿀벌에 기대어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식량이나 꿀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대안’ 용품들을 꿀벌이 내어 준 밀랍을 이용해 만들기도 합니다. 밀랍은 일벌의 배 부분에서 나오는 물질인데 일벌은 이걸로 튼튼하고 안전한 벌집을 만듭니다. 비가 새지도 않고 외부의 감염도 막아주는 밀랍으로 만든 벌집, 상상이 가시죠? 그래서 사람들도 밀랍을 이용해 파라핀 초를 대용하는 밀랍 초나 합성향료가 들어가지 않는 대안 화장품, 아로마 오일로 만드는 연고를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 더, 요즘엔 밀랍랩도 만듭니다.

밀랍랩은 비닐랩이나 호일, 지퍼백 같은 걸 대용하는 물건입니다. 밀랍은 밀랍왁스라고도 부르는데 수분을 막아줍니다. 그 방수력을 이용해 천에 밀랍을 입혀 그릇을 감싸거나 음식을 싸는 겁니다. 밀랍이 굳으면 단단하지만 천에 얇게 입힌 밀랍은 따뜻한 손으로 만지면 적당히 부드러워져서 원하는 모양이 되기 때문에 어떤 모양의 어떤 물건이든감쌀 수 있습니다. 몇 년전까진 외국의 대안 용품 파는 홈페이지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집에서 만들어 쓸 수 있도록 유튜브 동영상도 많이 나오고, 우리나라에서도 판매되는 제품들이 있습니다.

저도 밀랍랩을 사용합니다. 시판되는 제품을 하나 갖고 있는데 사용하기에 크기가 작아 집에 밀랍 초도 있던 차에 한 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먼저 신문지를 넉넉히 바닥에 두고, 유산지를 깝니다. 안 쓰지만 예쁘고 성글지 않는, 조금 톡톡한 손수건을 펼치고 성근 강판으로 밀랍을 갈아 손수건을 덮어줍니다. 호호바 오일 같은 천연오일이 있으면 3~4방울 뿌려 줍니다.

 


그런 뒤 손수건 위를 유산지로 덮고 다리미로 다려 줍니다. 밀랍이 녹아서 손수건에 빠진 곳 없이 잘 스며들도록요. 그런 뒤 손수건을 말려주면 금방 꾸덕꾸덕한 밀랍랩이 됩니다. 처음엔 밀랍이 손에 조금씩 묻어나는데 계속 사용하다보면 괜찮습니다. 그리고 손에 묻어도, 음식에 묻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건 밀랍일 뿐이니까요. 혹시 밀랍을 사용한 것이 불편한 채식주의자라면, 밀랍 대신 소이왁스를 이용해 만드셔도 됩니다.

이젠 새로운 생활의 지혜 ‘밀랍랩’을 사용해 보세요. 음식이 담긴 그릇을 덮어둘 때, 가볍게 음식을 포장해야 할 때, 채소나 과일을 냉장고에 보관할 때, 장바구니에 물기 있는 것을 담을 때 장바구니 바닥에 깔아서 물기가 새는 걸 막을 때 두루두루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글 · 정명희(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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