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보고싶은 영화」 허공에의 질주

허공에의 질주 Running on empty 
1988년 ‧ 드라마/범죄 영화 ‧ 116분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더러워요’
‘17살 땐 다 그런거야’
‘그래요? 거울을 보면 다른 사람이 서있고, 6개월마다 이름을 바꿔야 하는데도요?’

 

첩보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삶을 사는 이 소년의 이름은 대니이다. 그의 가족은 FBI에 쫓겨 15년째 수배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대니가 2살 때, 강성활동가인 그의 부모 아서 포프, 애니 포프가 네이팜탄 투하 반대 시위의 일환으로 군사실험실을 폭파했고,
그 과정에서 실수로 경비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느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대니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자신을 뒤따르는 수상한 차량을 감지하면서 막이 오른다. FBI가 부모님을 잡으려고 학교에서부터 자신을 추적해왔음을 직감한 대니는 능숙하게 그들을 따돌리고, 곧 우리는 15년간 갈고 닦아온 이 가족의 도피체계가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지 목격하게 된다.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정들었던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외모와 신분으로 자리를 잡는 가족. 매우 덤덤하게 진행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은, 대니와 동생 스탠리에게는 보이는 것만큼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결코 무뎌지지 않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FBI에게 잡히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상황에서 이 아이들이 달리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감독인 시드니 루멧은 ‘부모의 열정과 헌신의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라는 질문에서 이 영화의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릴까 봐, 눈부신 개성과 꿈을 억누르며 ‘튀지 않게’ 살아오는 데만 전력을 다해온 대니의 측은한 모습에서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여실히 볼 수 있다.하지만 이 영화를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게 하는 것은, 부모가 치르고 있는 대가에 대해서도 공정한 시선을 배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아서와 애니의 결단을 단순히 이해 불가능한 독선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들에게 이 괴상한 삶을 선물한 반전조직의 대의는 이미 변질되어가는 중이며, 이제 그들에게 있어 삶을 지탱할 유일한 목적이자 이유는 가족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을 영영 잃게 된다면? 부모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생기고, 대니의 천부적인 피아노 실력을 알아본 교사로부터 줄리아드 음대 입학권유까지 받게 되면서 대니는 비로소 또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에 눈을 뜬다. 하지만 반전조직 동료의 일탈 때문에 가족의 위치가 FBI에 발각될 처지에 놓이고, 이제 가족은 지금껏 방 안의 코끼리처럼 애써 무시하고 있던 문제에 대해 대답을 할 때가 왔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과연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까?

정답이 없는 상황에 직면한 이 가족들이 표현해내는 감정들은 매 순간 진실하고 감동적이다. 곳곳에서 눈물샘이 폭발하지만, 특히 각자의 결정을 내린 가족들이 마주하는 엔딩에서는 아무리 메마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굴을 붉히지 않을 재간이 없다.형언할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리버 피닉스의 얼굴과 James Taylor의 Fire & Rain이 배경으로 흐르는 그 유명한 롱숏 시퀀스는 관객들에게 깊은 잔상을 남긴다. 미국의 명감독 하워드 혹스는 잘 만든 영화에 대해 “훌륭한장면이 세 장면 들어있고, 잘못된 장면은 하나도 없는 영화”라고 했다. 훌륭한 장면의 숫자에 대해서는 관객마다 이견이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잘 만든 영화란 바로 이런 영화다.

글 · 권희철

권희철 님은 상업영화 조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다. 뭔가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잘 알려고 노력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되었건, 친구가 되었건, 환경이 되었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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