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사는 동안 행복하게

2019.07.01 | 행사/교육/공지

대한민국 연평균 1인당 육류소비량이 2014년을 지나며 50kg을 넘겼다. 돼지고기가 가장 많고, 닭고기와 소고기가 뒤를 잇는다. OECD 평균은 63kg 정도, 미국 등 일부 국가는 90kg에 육박한다. 돼지, 닭, 소를 이해하기 쉽게 ‘돼지’로 묶어 계산해보자. 돼지는 100kg 언저리가 됐을 때 도축을 한다. 정육점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상태로 만들고 나면 약 45kg 정도의 고기가 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1인당 연간 돼지 한 마리를 소비하는 셈이고, 미국은 두 마리를 소비한다. 놀랍지 않은가? 대한민국 인구는 2017년 기준 5147만 명이다. 돼지, 닭, 소 등의 육류를 돼지로 환산했을 때 우리는 매년 최소 5147만 마리 이상의 ‘돼지’를 먹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징글징글하게 많다고 생각하는 수도권의 인구가 2500만 명이다. 대체 그 많은 ‘돼지’는 어디에 있나? 무얼 먹고 사나?

다시 돼지만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약 천 백만 마리 정도 된다. 이들 대부분은 창이 없는 무창돈사에서 태어나 일생을 보낸다. 창이 없다는 얘기는 평생동안 ‘직사광선’을 한 번도 쐬어보지 못한다는 얘기다. 또, 자연스럽게 불어오는 바람도 느껴볼 일이 없다. 히터와 에어컨, 환풍기로 조절되는 인위적인 공기흐름 뿐이다. 좁은 공간 때문에 돼지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원인으로 서로를 물어뜯는다. 사람들은 물어뜯는 부분인 이빨을 자르고, 물어뜯기는 부분인 꼬리도 자른다. 인간사회에서 비슷한 장면을 떠올려보면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이 아닐까 한다. 햇볕 대신 인공조명, 애매한 에어컨이나 히터, 편히 움직일 수 없는 좁은 공간 등 여러모로 비슷하다. 한가지, 모두가 자기 자리 아래에 변을 본다면 조금 더 비슷해질 것 같고, 스트레스에 못 이겨 공격이라도 하게 되면, 공격하는신체와 공격받는 신체 부위를 잘라내면 더 똑같을 것 같긴 하다.

나는 그런 축산업이 너무 싫었다. 고기를 좋아했었기에 배신감도 들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처음 현실을 마주하고는 짧게나마 채식을 했었다. 나름대로의 바꾸고자 하는 행동이었다. 채식은 엄청나게 의식적인 행동이 필요했다. 힘들었고, 결국엔 포기했다. 그 때도 그랬고, 지금은 더 그렇지만 채식을 유지하는 분들을 정말 존경한다.

광우병 사태 이후에도 충격적인 사건이 여러번 있었다. 구제역으로 돼지와 소를 살처분하고, A.I.로 닭과 오리를 생매장했다. 수백만 수천만의 생명이 일순간에 날아갔다. 저런 방법밖에 없을까 고민이 많았다. 고기를 끊는 방법만을 생각했던 나였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대안적인 축산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걸 알았다. 시골에 살고 있었고, 작지만 땅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흑돼지를 ‘자연양돈’의 방식으로 키우고 있는 분과 친하게 된 상태였다.

아무런 인위적인 조치없이 어미의 힘, 자연의 힘만으로 낳은 건강한 새끼들이 힘차게 젖을 빨고 있다.

몇 년간의 준비 끝에 올해 초 축사를 준공했고, 축산업 허가도 받았다. 우리 농장의 컨셉을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행복하게’로 정했다. 고통 속에서 살다
가는 게 아니라 짧은 시간 약간의 행복이라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게 지붕의 반을 투명으로 시공했다. 바람이 불어오면 방해받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게 지붕을 매우 높였다. 오는 사람마다 ‘지붕을 왜 이렇게 높게 했어요?’다.

축사 내에 방사해 키우는 돼지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바닥은 일단 톱밥을 45cm가 조금 넘게 깔아두었다. 최종적인 목표는 숲의 부엽토처럼 만들어주는 것이다. 야생돼지는 하루 7시간 정도를 땅을 파며 먹이활동을 한다. 땅을 파야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빨이나 꼬리를 자르는 일도 없다. 필수 예방접종(구제역과 열병)을 제외하고는 예방적 치료를 하지 않는다.

사료도 중요한 문제다. 일반농장에서는 옥수수가 주재료인 사료를 먹인다. 대부분 수입이고, 당연하게도 GMO가 원료다. 대량생산을 위한 제초제 저항성 GMO라 어마어마한 제초제를 견디고 왔음이 분명하다. 영양은 어떨지 몰라도 건강할 리가 없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위적 유전자를 갖고 있기에 언제 어디서 문제를 일으킬 지 모르는 일이다.

가축, 그 중에서도 돼지는 전통적으로 집에서 나오는 잔반, 곡물을 가공하며 나오는 강피류(미강 등), 들판의 풀들을 먹여서 키웠다. 사람 입장에서는 못 먹는 음식들을 먹이고, 고영양의 고기를 얻은 셈이다. 또, 돼지 똥은 밭으로 논으로 나가 거름이 되었다. 나름 돌고 도는 순환의 고리가 살아 있었다.
돼지를 위한, 즉 고기를 위한 농사를 따로 짓지 않았다. 농사 부산물이 나온 만큼 돼지들을 키웠고, 딱 그만큼만 고기를 먹었다.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만큼은 그랬다.

우리 농장도 그 뜻을 최대한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쌀을 도정하면 나오는 가루인 미강이 사료의 주재료다. 다만, 미강은 소화하기 힘든 재료라 발효를 한 뒤 먹인다. 계절에 따라 밭에 난 들풀들을 먹기도 하고, 과수원의 낙과를 가져와 먹이기도 하고, 배추 껍질을 얻어다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영양 상태를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유기농 사료를 구입하여 섞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축들의 열악한 환경이 이슈화 된 지는 1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크게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값싼 육류가
수입되며 가축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나는 광우병 사태, 구제역 사태 등을 겪으며 무언가 크게 변할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하농장은 꿈꾼다. 가축을 동물로 여기는 소규모의 농장들이 많아지고, 고기 소비량이 줄고 줄어, 고통 속에서 살다 가는 가축들이 적어지기를. 우리 같은 농장을 응원하는 이들도 많아져 힘을 낼 수 있기를!

 

글. 김성만(하하농장 농부)
김성만 님은 녹색연합 전 활동가로 금강소나무 숲길, 4대강 사업 반대 활동에 참여했다. 2012년에 생태적인 삶을 꿈꾸며 경북 봉화로 이주해, 직접 흙부대집을 짓고, 부부의 힘만으로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하는 등 모험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hahafar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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