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좋아하세요?

2010.01.14 | 행사/교육/공지

커피 좋아하세요? 저는 커피를 아주 좋아합니다. 저의 하루는 한 잔의 진한 커피로 시작됩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몽롱한 제 눈은 사물을 찾지 못하고 몸에는 활기가 돌지 않습니다. 하루 2잔 이상은 꼭 마셔야 생활을 할 수가 있답니다. 한마디로 커피 중독자인 거죠. 스타벅스와 같은 유명한 커피 전문점을 자주 가시나요?

전 스타벅스는 절대 안 가려고 합니다. 자꾸 슬픈 생각이 들어서요. 나비효과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아주 작은 변화가 큰 일을 불러온다는 속뜻처럼 주인공 에쉬튼 커쳐의 행동이 걷잡을 수 없는 큰 변화를 일으키죠. 혹시 미국 범죄 수사 드라마 CSI도 좋아하시나요? 충실한 미드 팬이라면 라스베가스3 시리즈에서 포커 도중에 초코알을 먹고 죽은 도박꾼을 기억하실 겁니다. 불법도박 중에 갑자기 죽어버린 그의 사망 원인을 찾아서 멋진 주인공들이 고군분투하죠.

뜬금없이 이상한 질문들을 하는 것 같나요? 다 이유가 있답니다. 저에게 저 세가지는 하나의 문제와 연관되거든요. 혹시 공정무역(Fair Trade)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요사이 화두로 떠오른 무역 형태인데 말 그대로 ‘공정한 무역’이 그 뜻입니다. 특히 생산자에게 공정하게 이윤을 제공하는 상품을 파는 무역을 지칭합니다. 공정무역은 1989년 네덜란드에서 ‘막스 하벨라르’라는 이름으로 팔린 공정무역커피에서부터 시작되었답니다. 지금은 커피 외에도 코코아, 바나나, 옷, 각종 수공예품 등등 수많은 상품들이 공정무역상품마크 (FLO)를 달고 전 세계에서 팔립니다. 이 중에서 제가 오늘 여러분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 세계 무역량의 2위를 차지하는 커피 중에서 1%를 점유하고 있는 공정무역 커피에 관한 겁니다.

제가 처음에 공정무역 커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 제목도 생각이 안 나는, CSI의 라스베가스3 시리즈 편의 알록달록한 초코볼 때문이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한 도박꾼이 갑자기 죽습니다. 18년 동안 먹어온 초코볼 때문이었죠. 전 세계의 대기오염과 초코볼 생산지의 산업화로 인한 오염물질 방출이 빚어낸 결과였죠. 잘 만든 드라마라 그런지 오염된 땅과 공기로 인해 카카오가 오염되고 잔류 독극물이 남은 열매로 만든 초코볼을 장기간 섭취한 결과로 한 사람이 죽었다는 결론이 실감났습니다. 저는 초코볼을 안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머릿속에 카카오의 생산지와 저의 생필품인 커피 생산지가 비슷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요새는 킬리만자로산에도 산성비가 내린다던 뉴스 화면이 번개 같이 떠오르면서 저의 건강이 걱정되기 시작했죠.

그런데 때마침 커피와 에티오피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제일의 수출품으로 다국적기업이 전략적으로 진출한 10년 동안 극빈층이 10배가 늘어났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좋아라하면서 커피를 사 마실수록 배고픈 아이들이 늘어나는 현실 앞에서 제 몸만 걱정하던 게 부끄럽고 슬펐습니다. 내 돈 주고는 절대 다국적기업의 커피를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했죠. 한 통의 커피 가격은 보통 재배자에게 10%, 수출업자에게 10%, 배송업자와 커피 볶기 공정 측에게 55%, 소매업자에게 25% 돌아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커피 전문점에서 비공정 무역 커피를 한 잔 마실 때 커피 재배 농민들이 얻는 수입은 커피 가격의 1%에도 못 미친다고 합니다. 어차피 써야 하는 돈이라면, 저와 커피재배 농민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공정무역 커피를 찾았습니다.

미카라과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여성 농민 블랑카 로사 몰리나는 공정 무역 체계로 판매하는 것이 기존의 방식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아주 간결하고 인상 깊은 대답을 했다. “우리 식구가 밥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요.”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공정무역」중에서 –

공정무역으로 판매되는 커피는 공정무역 사항을 준수하는 농민에게 공정하고 안정된 가격과 잉여수익(수입업자가 지불하는 가격의 평균 10%)을 보장합니다. 소비자로서 제가 관심이 갔던 부분은 국제공정무역협회에서 정한 공정무역상품 생산자의 준수사항이었습니다. 전 세계 빈곤 문제에 기여하는 일이라 해도 안전하고 맛있는 커피가 아니라면 사먹기가 싫었으니까요. 현대 식품에서 안전성은 재배지의 환경문제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음료가 되는 커피콩은 커피열매의 씨 부분입니다. 커피열매는 커피나무에서 열립니다. 커피나무는 고지대 식물로 연 강수량이 1500~2000mm, 해발 1000~3000mm에 위치한 습윤 열대 고산지역에서 자랍니다. 상품성이 좋아 전체 커피 생산량의 90%에 달하는 아라비카 종은 부슬부슬하고 부드러우며 영양분이 풍부한 화산 침적토에서 충분한 햇볕을 받아야 열매를 잘 맺기 때문에 대부분 고지대 능선에서 재배가 됩니다. 다 자란 커피나무는 3~4.5m로 20~40m까지 자라는 열대우림 나무들에 비해 매우 작은 편입니다. 따라서 커피나무의 일조량을 확보하기 위해 커피농장을 대규모로 만들고 산림밀도를 낮추는 솎아베기가 횡횡합니다. 이 두 가지 재배 방식으로 인해 재앙에 가까운 환경문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선 커피 단일 재배를 위해 다른 나무들을 제거한 결과 다양한 동식물이 살던 열대 우림이 사라졌습니다. 영양가가 많고 부드러운 흙은 폭우가 오면 쉽게 쓸려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농지가 유실되면서 축적되어야 하는 유기물은 우기 때마다 쓸려 내려가 토양은 황폐화 되었습니다. 열대 지방의 토양은 표토층이 파괴되기 쉬워 일단 숲이 파괴되면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장이 있는 땅은 척박해졌습니다. 척박한 땅은 생산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새로 땅을 개간하고 커피 농장을 만듭니다. 농장이 있던 자리는 사막화가 되었고, 엘살바도르는 1950년대 대규모 커피 농장이 들어온 이후 자연림의 95%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병충해에 약한 아라비카 종을 단일 재배하려면 많은 농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사람과 환경에 모두 해를 입힙니다. 커피에는 알드린, 디엘드린, 엔드린 같은 살충제를 뿌리는데 너무 독성이 강해서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72년부터 맹독성으로 분류하고 제조와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다수확 품종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땅에 뿌린 화학비료는 부드러운 땅을 딱딱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나무들이 말라죽기도 합니다.

향기로운 한 잔의 커피는 이런 재배 과정을 거쳐 우리 앞으로 옵니다. 당장 마시기에 안전한 음료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커피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미친 영향은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 혹은 적도에서 주변에는 일어나는 산림 훼손, 생태 파괴, 토양 유실, 대지 오염, 사막화, 발암 농약의 사용, 유전자변형커피 등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삶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공정무역커피는 생산자를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처음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사회/환경 문제를 개선하는 역할도 합니다. 공정무역커피는 까다로운 환경기준을 통화해야 하며 전통 재배 방식인 ‘저투입 농법(비료와 농약을 최소로 사용하는 농사법)’ 같이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자라납니다. 공정무역기구에서 커피 공정무역의 조건으로 그늘재배와 유기재배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늘재배를 위해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나 다른 품종의 나무와 사이짓기를 하면 그늘이 지고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불어도 표토가 씻겨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구의 허파역할을 하는 열대우림을 보호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최저가격이 보장된 공정무역커피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생활이 안정되고, 그들에게 제공되는 잉여수익으로 공동체를 위한 각종 사업을 할 수가 있습니다. 공정무역의 혜택을 보는 생산자 협동조합과 대농장 노동자들은 학교와 병원, 지역공동체센터를 세우고 시설을 설치하는 것에서 교육비와 의료비 지원, 대출, 상수도 시설과 화장실, 전기 시설을 구축하는 것에서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비용을 지원하는 데까지 지역사회의 개발 계획에 사회적 초과 이익을 투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득원 다변화를 위한 소규모 창업대출과 노동자 연금 기금마련, 토양 복원과 조림, 환경교육, 여성권리 확대 프로그램에도 이 자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전 세계 커피 교역량의 단 2%에 불과한 공정무역커피에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 의해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관심과 소비가 지구를 살리고 생산자를 살리는 진짜 안전한 커피를 만드는 거죠. 기왕에 마시는 커피, 공정무역단체에서 공정무역커피를 사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저의 소비가 커피를 생산한 농민에게 직접적인 혜택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니까요. 한국의 공정무역커피단체들, 혹은 생산 농장과 일대일 계약을 통해 커피를 소매로 판매 하시는 분들은 다른 나라의 공정무역단체들과 마찬가지로 각자와 계약한 지역농민조합을 직접 지원합니다. 그리고 농민들을 지속적인 소비가 가능하도록 품질 좋은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자연친화적인 재배방식을 확대합니다. 생산자, 소비자, 환경에 모두 좋은 커피 생산이 확대되는 겁니다.

앞서 제가 나비효과라는 영화를 보셨냐고 물어 봤었지요? 지금 우리가 어떤 커피를 마시느냐에 따라 지구를 살릴 수도 있답니다. 오늘, 모두에게 향기로운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면 어떨까요?

** 공정무역커피를 살 수 있는 곳 **

글 : 이정민 (녹색연합 회원)
일러스트 : 엄정애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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