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마을의 소박한 발자국

2009.01.19 | 재생에너지

아담한 마을의 소박한 발자국
영국 1인당 평균 에너지 소비의 3분의 1만 쓰고사는 베드제드 사람들

런던 시내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50여 분을 달리면 지붕 위에 닭볏 모양의 환기구를 달고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베드제드에 도착한다. 약 70여 가구, 22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베드제드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도록 만들어진 주택단지다.

30cm 두께 벽, 삼중창, 경보 계량기
이곳의 집들은 ‘생태발자국’ 개념을 반영해 지었다. 생태발자국은 인간이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의식주에 들어가는 자원을 생산하고 그것을 폐기하는 데 드는 비용을 땅 넓이로 환산한 지수를 말한다. 즉, 인간이 자연에 남긴 발자국을 뜻한다. 베드제드 주민들의 생태발자국은 1.8ha다. 영국은 1명당 생태발자국이 5.03ha로, 그 3분의 1 수준인 것이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이 평균적인 영국 사람처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 지구는 3개가 있어야 한다. 베드제드는 지구가 하나만 있어도 될 정도의 삶을 살도록 만든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에선 겨울철 난방이 거의 필요 없다. 벽 두께가 무려 30cm, 창문은 모두 삼중창이다. 단열 수준은 건축물 구조체를 고단열화하는 패시브 하우스에 가깝다. 지붕에 있는 닭볏 모양의 환기구도 연료가 필요 없는 난방을 한다. 열교환기 덕분이다. 바깥에 있는 찬 공기가 실내로 들어올 때, 실내에서 밖으로 나가는 더운 공기와 만난다. 이때 열교환기는 찬 공기가 더운 공기의 열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장치들로 베드제드 집들은 화석연료 없이도 난방을 해결한다.

부엌에는 똑똑한 계량기가 달려 있다. 이 계량기는 집 안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의 전력 사용 총량, 가스 사용량 등을 보여준다. 전기 사용량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경보가 울린다. 이 때문에 대형 냉장고나 대형 텔레비전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경보를 막으려면 집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 수를 가급적 줄여야 한다.
변기와 세면대는 아담 사이즈다. 일반 변기와 세면대 크기의 절반으로, 물을 적게 쓰도록 제작됐다. 주민들의 교통수단은 자전거, 카셰어링(자동차 함께 쓰기), 전기자동차다.
지붕에는 태양광발전기와 태양열온수기를 설치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집인 셈이다. 영국 정부는 2020년까지 베드제드와 같은 ‘에코타운’ 10개를 건설할 예정이다. 짓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정부는 앞으로 에코타운에 살게 되는 거주자들의 교통수단, 실내 난방, 음식물 쓰레기 등을 구체적으로 모니터링해 정말로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는지를 관찰할 계획이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라는 ‘빅브러더’(감시·통제 권력) 논쟁을 일으키고 있지만, 재생 가능 에너지 시설 자체보다 사는 사람들의 생활습관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절약’ 대책 없이 ‘그린홈’ 이라고?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하며 짓겠다고 이야기한 ‘그린홈’ 100만 가구. 주택 경기 부양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한 ‘그린빌리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린빌리지는 정부가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을 위해 30~50가구로 구성된 마을의 주택 지붕 위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해주는 사업이다. 에너지 절감에서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 못지않게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린빌리지 사업에는 공짜나 다름없는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방식만 있을 뿐, 에너지 절약과 관련한 대책은 아무것도 없다. 만약 주민들이 값싼 전기를 펑펑 쓰게 된다면, 이를 과연 그린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글·사진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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