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칼럼] 에너지자립마을의 성공조건

2009.05.12 | 재생에너지

지방자치단체에 에너지자립마을 만들기 바람이 불고 있다. 에너지자립마을은 석유나 핵에너지에 의존하지 않고 마을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마을이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가 ‘그린빌리지’ 조성사업에 발 벗고 나섰다. ‘그린빌리지’는 정부가 보조금을 들여 마을단위로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해주는 사업이다. 그런데 ‘그린빌리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공짜’나 다름없는 전기를 더 많이 쓰게 된다고 한다. 마을 이름은 ‘그린’인데 주민들의 생활은 ‘그린’이 아니다. 이처럼 에너지자립마을은 지붕 위에 태양광발전기만 설치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오스트리아 무레크는 인구 1700명이 사는 시골 마을로 에너지 자립도가 무려 170%이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유채와 폐식용유를 이용한 바이오디젤 생산 공장, 잡목과 돼지 똥을 이용한 열병합발전소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에너지 회사에서 에너지를 구입하고, 일자리도 얻었다. 독일 작센주에 위치한 다르데스하임 마을도 풍력에너지 회사를 설립했다. 주민들이 20%의 출자금을 부담하고, 지방정부가 20%를 지원했다. 나머지는 지역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현재 풍력발전기는 마을 주민 1000명이 사용하는 전기의 45배를 생산하고 있고, 전기를 판매해 얻은 수익을 주민들에게 배분하고 있다.

성공적인 에너지자립마을의 한결같은 특징은 주인공이 ‘재생가능에너지’ 시설 자체가 아니라 ‘주민’이라는 점이다. 주민들이 ‘에너지협동조합’이나 ‘시민발전소’를 만들어 에너지 생산에 직접 참여한다. 이것은 정부가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통해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비싸게 구매해주거나, 초기 투자비를 지원하고, 저리로 융자대출을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도 에너지자립마을을 만들 때, 주민들이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에 투자하고, 스스로 운영하며,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을 농촌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경제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주민참여 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발전차액지원제도’이다.

강원 인제군 남면마을, 주민들이 마을발전기금 27억원을 투자해 태양광발전기 300㎾를 설치했다. 지난해부터 마을주민들은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팔기 시작해 앞으로 15년 동안 매년 3억~4억원의 고정 수익을 얻게 된다. 마을 사람들에겐 태양광발전기가 ‘보물단지’인 셈이다. 정부도 남면마을을 ‘산골마을이 전기를 팔아 부촌’이 된 녹색성장 사례로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정부에서 정반대의 정책이 추진된다. 지식경제부는 발전차액지원 대상 태양광발전 용량을 50㎿로 제한하고, 2012년에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아예 폐지한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2012년 이후에는 정부에서도 성공사례로 꼽는 남면마을 같은 사례가 나올 수 없다. 주민들이 참여하는 에너지자립마을 만들기도 불가능해진다. ‘에너지협동조합’이나 ‘시민발전’, ‘에너지영농법인’은 싹을 틔워보기도 전에 꺾이고 만다. 재생가능에너지 확산을 막고, 풀뿌리 공동체의 에너지 생산도 가로막는 지식경제부의 ‘발전차액지원제도’ 폐지는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유진|녹색연합 기후에너지 국장>

2009년 5월 13일 경향신문 생태칼럼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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